박근혜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와의 회동에서 야당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왼쪽부터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 박 대통령,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사진제공=청와대
“민심을 가감 없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국민 불안, 고통받는 민생, 뒤틀린 정의에 대해 국민의 목소리를 전하는 게 이번 회동의 의미였다고 본다. 앞으로 국정운영 기조 변화에 어떻게 반영될지 지켜봐야 하지만, 가감 없이 할 말은 다 하고 왔다고 생각한다.”(박영선 원내대표)
지난 7월 11일 오전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에서 당 지도부가 전날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지도부 간의 회동에 대해 평가하며 내놓은 말들이다. 지난해 9월 16일 박 대통령이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국회 사랑재에서 만났을 때 나왔던 반응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당시 김 대표는 박 대통령과의 회동을 마치고 나온 뒤 납덩이처럼 굳은 표정으로 “얘기는 많았지만 정답은 하나도 없었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었다. 적어도 이번에는 박 대통령이 야당과의 소통에서 첫 걸음을 제대로 뗐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약 10개월의 터울을 놓고 이뤄진 박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의 만남이 야당 내에서 이처럼 상반된 반응을 낳은 이유는 이번 회동을 통해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 스타일의 변화를 예고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원칙과 신뢰의 박근혜’라는 슬로건의 이면에 있던 독선과 오기, 불통 등 부정적인 요소들을 걷어내고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에 나서기 시작했고, 이런 변화가 야당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인사 참사가 이어지면서 곤혹스러운 상황에 놓였던 새누리당 인사들 역시 박 대통령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환영하고 있다.
이런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이 이번 회동에서 가장 주목하는 점은 박 대통령이 야당과의 정례적인 소통 의지를 밝혔다는 것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두 원내대표가 매주 한 차례씩 만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는 데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이 원내대표로부터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에 만나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박 대통령은 “참 잘하신 일”이라며 “국민을 위한 상생의 국회로 상(像)을 잘 만들어 가면 국민들께서 크게 박수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스스로 “여야 원내지도부와의 만남을 정례화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통령선거 때부터 야당 지도부가 참여하는 국가지도자연석회의 추진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취임 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야당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게 그 이유였지만, 박 대통령 역시 야당이 참여할 여지를 주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번 회동을 앞두고 야당 지도부와의 만남을 정례화할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청와대 핵심 참모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박 대통령의 변화를 보여주는 또 다른 점은 이번 회동에서 박 대통령이 야당을 향해 ‘요구’만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이전에는 야당을 대할 때마다 민생·경제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초당적인 협조를 부탁했었다. 지난해 취임 초기 정부조직 개편안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을 때도, 잇단 인사 참사로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질 때도 그랬다. 야당 내에서 박 대통령에 대해 “양보는 하지 않고 요구만 한다”는 비판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 활성화 관련 법안, 국가개조 관련 법안 등의 신속한 처리를 당부하면서 야당의 요구도 일정 부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췄다. 김명수 교육부총리 후보자와 정성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를 ‘부적격자’로 지목, 임명을 재고해 달라는 야당의 요구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잘 알았고, 참고하겠다”고 답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에 대해 인사 참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박영선 원내대표의 말에 박 대통령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김·정 후보자와 관련한 박 대통령의 반응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힌 것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심지어 박 대통령은 “국가개조라는 말에서는 군국주의의 냄새가 난다. 국가혁신이라는 말로 바꿔 썼으면 좋겠다”는 박 원내대표의 제안에 대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새정치연합 원내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강변했던 박 대통령이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를 시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통치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정치를 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에 여야 정책위의장의 참여를 제안한 것도 의미 있는 변화라는 평가도 나온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통일준비위원회는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을 실현하기 위한 핵심 조직인데, 여기에 야당의 참여를 당부한 것은 의미심장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며 “경제 살리기와 남북관계, 국가안보 등에서는 야당의 초당적인 협력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야당의 초당적인 참여도 보장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일정 부분의 협치(協治)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런 긍정적인 평가들은 그러나 아직까지는 기대와 희망 수준이라는 냉정한 반응도 있다. 변화는 말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 정치평론가는 “여야 원내지도부와 소통에 나선 박 대통령이 새정치연합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의 회동 제안에는 아무 답도 없었다는 점도 무시해선 안 된다”면서 “정책 현안에 대해서는 야당과 소통하되 정치적으로 야당이 대통령을 만나 담판하는 식의 구조는 만들지 않겠다는 의미로도 읽힌다”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