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외환은행 노조가 기자회견을 갖고 합의를 위반한 합병추진은 전면무효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9일 외환은행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외환은행지부·위원장 김근용)는 하나금융지주 경영진의 하나·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논의를 반대하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노조는 이어 2012년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약속했던 ‘5년간 독립경영 보장’을 이행할 것을 촉구하고 총력투쟁에 나설 것임을 밝혔다.
외환은행 노조가 강경하게 나오는 까닭은 지난 3일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두 은행의 조기 통합을 언급하면서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 논의가 본격화할 태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노조는 즉각 반발했다. 노조는 김 회장의 발언 직후 성명서를 발표하고 “김정태 회장의 이번 발언은 가장 직접적이고 원천적인 도발 행위”라며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며칠간 시끄러웠던 이 문제는 지난 7일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노조와 합의를 전제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하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조기 통합 논의를 재점화한 장본인은 김한조 외환은행장이다. 김 행장은 7일 외환은행 사내 전산망을 통해 “현재의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서는 조기 통합 논의 개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통합은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인 것은 분명하다”고 역설했다. 김 행장은 32년 동안 외환은행과 함께한 선배임을 강조하며 “감정적 대응보다는 냉철한 이성으로 One Group(하나의 그룹)이라는 현실과 통합 논의에 대해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기 통합을 언급한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임준선 기자
이러한 상황에서 김한조 행장이 김정태 회장의 조기 통합 논의에 힘을 보탠 것이다. 외환은행 한 직원은 “김 행장의 글을 보고 나서 너무 심하지 않느냐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본인 말대로 직접 ‘선배’라고 강조했으면서 하나금융 편을 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외환은행 관계자는 “행장으로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조직과 구성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했다”며 “직원 모두의 뜻을 모아 공감대를 형성하고 노동조합과 성실한 협의를 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하나·외환은행의 조기 통합 논의가 전면전 양상을 띠는 까닭은 2012년 2월 발표된 이른바 ‘2·17 노사정합의서’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금융위원회가 이를 승인한 2012년 당시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김석동 금융위원장, 외환은행 노조가 서명한 이 합의서에는 외환은행의 법인 및 명칭 유지와 합병 여부는 ‘5년 경과 후 상호 합의를 통해 협의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다시 말해 하나금융과 금융위가 외환은행의 5년간 독립경영을 약속한 것이다.
합의서대로라면 두 은행의 통합 논의는 2017년에나 가능하고 그나마 무조건 통합이 아닌 상호 합의를 통해 협의할 수 있는 것이다. 김보헌 외환은행 노조 전문위원은 “조기 통합 논의는 2·17 노사정합의서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면서 “조기 통합은 협의 사항이 아닐 뿐더러 협의 자체가 합의서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 1조 6200억 원이었던 외환은행의 순이익은 하나금융에 인수된 후 줄곧 하락하더니 지난해에는 3600억 원에 그쳤다. 하나은행 역시 2011년 1조 원이 넘었던 순이익이 지난해 6550억 원으로 확 줄었지만 외환은행의 순이익 감소폭이 더 컸다. 반면 올해 초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을 통합해 새로운 법인으로 출발한 인도네시아 법인의 실적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김 회장도 인도네시아 법인을 예로 들며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보헌 전문위원은 “자회사 편입 때 이뤄진 포괄적 주식교환, 외환카드 분사 등 지난 2년간 하나금융 때문에 외환은행에서 빠져나간 돈이 2조 원에 이른다”며 “하나금융에 인수된 후 외환은행에 방해가 되면 됐지 도움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반박했다.
금융권 일부에서는 김정태 회장이 내년 연임을 위해 두 은행의 조기 통합을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실적 부진에다 KT ENS 협력업체 대출 사기사건 등 각종 악재에 시달리는 김 회장이 연임이 힘들어질 듯하자 대형 이슈를 만들어 연임에 성공하려는 계산이라는 것. 이 같은 의혹에 대해 하나금융 관계자는 “본인이 못하더라도 (두 은행의 통합이) 후임자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조기 통합과 김 회장의 연임에 선을 그었다.
김정태 회장과 김한조 행장이 모두 두 은행의 통합 필요성을 강조하긴 했지만 외환은행 노조를 설득하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신제윤 위원장이 노조와 합의를 전제로 한 만큼 노조와 대화가 절실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노조와 대화조차 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통합선언을 한 것도 아니고 이제부터 논의해보자는 얘기”라면서 “외환은행 노조 등 구성원들과 협의하고 대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외환은행 노조는 “대화할 사항도, 상대도 전혀 아니다”라며 아예 협의 테이블에 앉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