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검 브리핑룸의 검찰 상징과 법전. 현재 검찰의 상황처럼 초점이 흐릿하다. | ||
<일요신문>이 확보한 2003년 이후 올해 9월까지 검찰을 그만둔 검사 명단을 확인한 결과, 무려 1백74명이 법복을 벗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YS정권 5년 동안 약 1백20명, DJ정권 5년간의 약 1백50명에 비춰볼 때 엄청나게 증가한 숫자다.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옷을 벗는 검사는 3백 명을 훌쩍 넘길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퇴직자 명단에서 확인된 사퇴 검사들의 성향을 분석한 결과, 대비되는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전에는 좀체로 사퇴하는 법이 없던 평검사들이 대거 이탈 움직임을 보인 것이 대표적인 특징. 부장급검사들의 사퇴도 해가 갈수록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공안통’의 몰락도 눈에 두드러진다. 무엇보다 검찰 내부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특수통’ 등 촉망받던 검사들이 미련 없이 조직을 떠나려 한다는 점이다.
지난 9월 국정감사에서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최근 6년간의 검찰 퇴직 인사 숫자를 처음으로 공개한 바 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DJ정권 때인 2000년과 2001년, 2002년에는 퇴직 검사의 수가 각각 56명, 42명, 41명이었으나 현 정권 들어서는 2003년 63명, 2004년 62명, 그리고 2005년 9월까지 72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에 비한다면 <일요신문>이 최근 대한변호사협회 등 법조계로부터 입수한 자료의 명단은 검찰이 밝힌 숫자보다 약간 적다. 2003년이 52명, 2004년 56명, 2005년 9월까지 66명이었다. 평균 7~8명 가량 차이가 나는 셈이다. 이에 대해 변협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검사가 사퇴했을 경우 곧바로 변호사 자격을 획득하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전원 변협에 가입되지만 일부 인사의 경우 검찰은 떠났지만 공공기관 등에 계속 몸담거나 또는 해외 유학 등의 개인 사정으로 변호사 신고를 일정기간 미루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관계자의 설명대로라면 <일요신문>이 확보한 명단이 공직 임명이나 유학 등의 특수한 사정에 의해 검찰을 떠난 일부 경우를 제외한 순수 자발적 퇴직자가 되는 셈이다.
이 명단에 따른 사퇴 검사들의 성향을 분석해 보면 네 가지의 뚜렷한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는 평검사의 퇴직이 예년에 비해 무려 2~3배 가까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예년의 경우 평균 약 20~25명에 이르는 검찰 퇴직자 가운데 절반 정도는 대부분 검사장급이었다. 사시 후배 및 동기들의 승진에 따라 자연스럽게 옷을 벗는 사퇴가 인사 때마다 관행처럼 있었던 탓이다. 그 나머지 절반 역시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옷을 벗는 부장검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평검사들의 사직은 한 자리 숫자도 안 될 정도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참여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에만 사퇴한 평검사의 숫자는 16명이었다. 2003년 6월 법무부 검사로 활약하다 옷을 벗은 박아무개 변호사는 “예년만 해도 평검사들이 검찰을 떠난다는 것은 매년 두 차례 정기인사에서 각각 서너 명씩 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아무개 검사가 사직했다고 하면 우리들 사이에서도 왜 사퇴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화제가 될 정도였다”고 예년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현 정권들어 평검사들의 사퇴가 크게 늘어난 것에 대해 “검찰은 결국 준사법기관으로서 검사 역시 행정 공무원이다. 따라서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과 뜻이 맞지 않으면 검사가 옷을 벗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 취임 직후 불어 닥친 ‘검란’ 파동과 함께 ‘검사와의 대화’ 등으로 인해 평검사들의 반발이 고조된 탓도 있고 그만큼 검찰에 대한 위기감과 자각이 커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평검사들의 검찰청 이탈 현상은 해마다 증가해서 지난해에는 22명이었고 올해는 현재까지만 16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두 번째로 부장검사급의 사퇴도 현 정권 중반부터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과 2004년에는 각각 24명과 23명 선이었다. 이 숫자도 예년의 10명 선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더욱 심각하다. 9월 현재까지만 부장검사급의 사퇴는 무려 42명이나 된다.
단순히 수치만 높은 것이 아니라 그 내용면에서도 눈에 띄는 특색이 있다. 과거의 전례처럼 검사장 승진에서 누락된 자연 사퇴 현상은 줄어든 반면, 오히려 승진 가능성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부장검사급 가운데서도 비교적 낮은 기수의 이탈 현상이 많다는 점이다.
지난 3년간 부장검사급의 사시 기수는 14회에서 30회 정도가 된다. 이 가운데 25회 이하 기수로 이제 막 부장검사급으로 진입한 인사들 가운데 옷을 벗은 검사들도 약 30% 가까이에 이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검사장급 사직 인사는 2003년 9명, 2004년 7명, 2005년 9명으로 예년과 별 차이가 없었다. 결국 피라미드 구조로 볼 때 검찰 조직을 지탱하는 중추적 역할을 하는 중하층의 검사들이 급격하게 이탈한 셈이다.
세 번째로 두드러진 특징은 공안부 검사들의 급격한 몰락 현상이다. 대검과 각 지검 등에서 공안과장 및 공안부장을 역임하는 등 대표적 공안통으로 알려진 인사들의 퇴직자 수는 부장검사급 가운데서만 지난 3년간 무려 12명에 달했다.
▲ 서울중앙지검 전경. 왼쪽으로 대검찰청도 보인다. | ||
검사장급 가운데서도 공안통으로 알려진 인사의 퇴직 수는 확연히 두드러졌다. 최근 3년간 전체 25명 가운데 무려 절반에 이르렀다. 이 밖에도 자신의 경력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평검사들 중 공안수사 경력를 합친다면 참여정부 들어 퇴직한 검찰 숫자에서 공안통 검사들이 20% 가까이 될 것이라는 게 전직 검찰 인사들의 예상이다.
네 번째 특징은 비교적 전도가 유망하다고 평가받던 소위 잘나가는 검사들의 전격적인 사퇴가 많았다는 점이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원래 역대 정권에서 옷 벗은 검사들의 대체적인 특징은 사실상 대기발령이나 다름없는 고검 검사로 있거나 지방의 검찰청에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법무부나 특수부 출신의 소위 잘 나간다는 검사들, 그리고 평검사들 가운데서도 서울지검 출신들이 많이 옷을 벗고 있다”고 소개했다.
실제 최아무개 전 부장검사는 서울지검총무부장직에서 전격 사퇴했고, 김아무개 전 법무부기획관리실장도 차기 법무부 검찰국장감으로까지 거론됐으나 전격 사퇴했다.
특수통으로 알려진 김아무개, 서아무개 전 서울지검 특수부장, 김아무개 전 대검중수3과장, 김아무개 전 광주지검 특수부장, 조아무개 전 대구지검 특수부장, 박아무개 전 수원지검특수부장, 김아무개 전 수원지검 특수부장, 이아무개 전 대전지검 특수부장 등도 지난해와 올해들어 잇따라 사표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서 전 부장과 박 전 부장은 각각 재벌기업의 법무팀에 스카우트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차기 특수부장감’으로 촉망받던 특수통 평검사들의 이탈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2004년에 사직서를 낸 유아무개 전 검사와 김아무개 전 검사 등은 대검 중수부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등에서 명성을 날린 대표적인 특수통이었다. 이들은 모두 재벌기업으로 스카우트됐다. 올해 들어서는 대북송금사건을 수사했던 이아무개 전 검사, 병풍사건을 수사했던 노아무개 전 검사, 행담도 의혹을 수사했던 김아무개 전 검사 등 ‘특수통’들이 모두 옷을 벗었다.
이 같은 검사들의 이탈은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검찰의 개혁과 궤도를 같이하는 것이며 검찰 주류 세력의 물갈이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급격한 물갈이가 검찰 핵심 세대의 공동화 현상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검찰개혁의 고삐를 늦출 생각이 전혀 없는 노 대통령과 천정배 법무장관의 강성 기류로 볼 때 현 정권 전반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검사들의 줄사퇴 현상은 오히려 후반기 들어 더욱 늘어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