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우석 교수 | ||
호소 효과는 단박에 나타났다. 네티즌들은 그에게 격려성 댓글을 잇달아 올렸고 국회 국정감사에서 황 교수측을 몰아붙였던 민주노동당에게는 “민노, 너나 잘하세요”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민노당측도 “일말의 의혹이라도 명쾌하게 해소돼야 한다”며 물러서지 않고 있어 양측의 대립은 여전히 팽팽하다.
한마디로 양측간 갈등의 최대 핵심은 ‘서울대 수의대 생명윤리위원회’(IRB)의 자료 열람 여부에 있다. 도대체 이 자료가 무엇이기에 민노당은 집요하게 열람을 요구하고 있으며 서울대측은 이를 거부하고 있는 것일까.
#1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0월5일)
“민노당 때문에 연구를 못할 지경입니다. 국감에 필요하다며 별별 자료를 다 요구하고 있어 연구원들이 국감용 자료 작성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연구에 엄청난 지장을 받고 있습니다.”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 빙모상 빈소에서의 황 교수 발언)
#2 서울대 국정감사장 (10월7일)
“본 의원은 서울대 수의대 줄기세포 관련연구에 대한 IRB의 심의서류 및 회의록을 요구했으나, 서울대측은 향후 상세한 연구계획 등이 포함되어 있는 대외비여서 서류 제출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보내왔습니다. 그렇다면 서울대의 입장을 십분 이해해서 관련 자료에 한해서 열람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이조차도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체적인 연구내용이나 향후 연구 계획을 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실험과정상의 난자 채취 과정에서 생명윤리 위반 여부를 알아보기 위한 것뿐입니다. IRB의 내부 규정에도 이를 미공개 한다는 아무런 규정이 없습니다.” (최순영 민노당 의원)
“비공개를 조건으로 자료를 의원님이 열람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정운찬 서울대 총장)
#3 강화도 전등사 (10월29일)
“가족도 포기하고 외길을 걷는데 이렇게 많은 시련에 부닥칠 수 있을까 하는 자괴감이 듭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목이 터져라 외쳐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내 연구 분야는) 아직도 열고 닦아야 할 문과 길이 많고, 도전과 장애 그리고 지뢰밭투성이입니다.” (‘2005 삼랑성 문화축제’의 황 교수 강연 중 일부)
지난 10월 한 달 동안 황 교수와 민노당측이 벌인 갈등의 장면들이다. 황 교수의 민노당을 향한 불만이 터진 이후에도 최 의원은 ‘IRB’ 자료 열람을 끝까지 고집했고, 끝내 “열람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정 총장의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서울대측은 자료 열람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최 의원실의 홍은광 보좌관은 “서울대에 거의 매일같이 전화를 해도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답변만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 최순영 의원 | ||
결국 IRB 회의록 열람 여부는 난자 채취에 대한 윤리성 의혹과 맥을 같이하고 있는 셈이다. 회의록이 규정대로 제대로 관리되고 있다면 연구팀이 난자 제공자로부터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이 반영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최 의원실의 주장이다. 관련 자료만 열람할 뿐이기 때문에 연구 내용이 유출될 염려도 없고 난자 제공자에 대한 신분이 공개될 리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거듭된 주장이다.
이에 대해 IRB의 이영순 위원장(서울대 수의대 교수)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내부규정상 원칙적으로 우리 위원들은 언론과 인터뷰할 수 없게 되어 있다”며 자세한 답변을 거부하면서도 공개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 이유로 “국회가 요구하는 자료에는 연구 활동에 관한 자세한 내용이 모두 들어 있다”는 점을 들었다. 기자가 ‘비공개를 원칙으로 의원에 한해서 열람을 허용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정 총장의 국회 답변을 전하자 그는 “내가 답변할 성질이 아닌 것 같다”며 전화를 끊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같은 실랑이는 지난해에도 한 차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현재 서울대의 IRB와 유사한 성격을 가진 한양대 임상시험심사위원회는 지난해 난자 채취 과정을 심의했던 기구. 이 기구 역시 국가인권위원회의 회의록 제출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국내 학계에서 현재까지 줄기세포연구를 위해 사용된 난자는 모두 4백27개이며, 그 모두가 황 교수 연구팀이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발표된 연구에서 모두 16명의 여성으로부터 2백42개의 난자를 제공받았고 올해 발표된 연구에서는 18명으로부터 1백85개의 난자를 제공받은 것으로 돼 있다.
한국여성민우회의 정은지 팀장은 “줄기세포연구에 필요한 난자는 18세 이상 20대의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이처럼 많은 난자가 필요로 된다는 점에서 과연 순수 기증자만으로도 합법적인 난자 확보가 가능한 건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런 차원에서도 연구팀의 심의 및 검증절차는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황 교수가 얼마 전 했던 부적절한 발언이 오히려 의혹을 부추겼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지난 5월말 황 교수는 서울대 특강에서 “(우리 연구팀의) 실험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생명윤리학자들이 공개질의서를 보내는 등 논란이 일고 있지만 우리는 아직 그 질문에 답할 준비가 돼있지 않으니 10년만 기다려 달라. 그때 가서도 국민들이 나의 연구를 용서하지 못할 일이라고 판단한다면 미련 없이 한국을 떠나겠다”고 한 것. 그는 지난달 5일에도 “우리 연구팀이 중국 연변 처녀들의 난자를 불법적으로 거래했다는 소문도 있다더라”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노당 정책실의 한재각 정책연구원은“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윤리적 논란 없이 국가적인 지원과 국민들의 성원 속에 훌륭히 진행됐으면 하는 마음은 우리도 간절하며 그런 차원에서라도 이 연구는 적절한 절차를 거쳐서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