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 수순을 밟고 있는 명동 우리금융플라자 전경. 1~3층에 입주해 있는 우리은행의 매각과정에 금융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지난 2005년 11월,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 명동 옛 상업은행 자리에 떠들썩한 제막식과 함께 낯선 빌딩이 하나 등장했다. 고풍스럽던 건물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리모델링한 이 자리에 들어선 것은 ‘우리금융플라자’라는 신개념 복합금융센터. 6층짜리 건물 전 층에 우리은행 명동지점과 명동종금지점, 우리투자증권 명동WMC 등 우리금융그룹 계열 금융사들이 입주했다.
은행에서는 예금과 대출 신용카드 외환 등을 취급하고, 증권사에서는 주식과 채권, 보험사에서는 저축성 보장성 건강보험 등을 팔았다. 또 종금사에서는 어음할인과 발행, CMA 등을 서비스해 말 그대로 ‘백화점식’ 영업이 가능토록 했다. 여기에 1층 은행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환전센터, 3층에는 프라이빗뱅킹(PB)까지 들어서는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로 시선을 모았다.
부지 역시 화제의 대상이었다. 우리금융플라자가 위치한 곳은 1990년부터 2003년까지 14년 연속 ‘한국에서 가장 비싼 땅’의 명성을 지켜온 금싸라기였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금융플라자가 문을 열던 2005년에는 전국 6위로 다소 순위가 밀렸지만 당시에도 3.3㎡(약 1평)당 1억 3223만 원을 기록했을 만큼 지가가 높은 곳. 이 땅은 이후에도 가치가 꾸준히 올라 10년째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서울 중구 명동8길 ‘네이처리퍼블릭’ 부지에 이어 전국 2위에 다시 등극한 상태다.
하지만 엄청난 땅값과 국내 최초 금융백화점이라는 명성은 곧 옛말이 될 전망이다. 명동 우리금융플라자가 사실상 해체작업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우리금융그룹의 민영화 작업에 따라 계열사들이 매각되거나 매각을 앞두면서 하나 둘 이곳을 떠나고 있다. 현재 우리금융플라자 건물 1~3층에는 우리은행이, 3~4층에는 우리투자증권이 여전히 영업 중이다.
그러나 5층과 6층에 올라가보면 사정이 다르다. 우리은행이 기업금융센터로 사용하던 5층은 임대공고를 내고 새로운 입주자를 찾고 있다. 또 6층에는 병원이 입점해 영업을 하고 있다. 누가 새 임차인으로 들어올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금융 전용이던 이 건물의 정체성은 사실상 이미 깨진 셈이다.
금융백화점으로서의 공식적인 ‘기능정지’는 오는 9월 말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농협금융지주로 주인이 바뀐 우리투자증권의 임대 계약기간이 이때 끝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투자증권 명동WMC는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이 건물을 떠나겠다고 우리금융 측에 통보한 상태다. 명동WMC가 있는 4층은 우리종금이 쓰기로 했지만 증권사가 떠난 자리를 채우기에는 다소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게다가 우리금융플라자의 해체는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핵심 계열사인 우리은행 매각이 마무리되면 그나마 남은 금융사들마저 뿔뿔이 흩어지거나 아예 회사가 사라지게 된다. 금융당국은 우리금융 민영화 계획을 발표하면서 우리카드와 우리종금, 우리금융연구소 등을 우리은행에 합병시키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이렇게 되면 우리금융플라자에는 우리은행 하나만 덜렁 남게 된다. ‘복합금융센터’ 혹은 ‘금융백화점’이라는 수식어는 더 이상 무의미해진다.
우리금융플라자의 해체 과정을 지켜보는 금융권의 속내는 착잡하기만 하다. 경쟁사이긴 했지만 국내 금융사들의 위상을 대표하던 상징적인 존재가 사라지는 것은 달가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명동은 예부터 은행업, 나아가 한국 금융업의 메카였던 곳이며 우리금융플라자는 상업은행 시절까지 포함하면 10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상징적 장소”라며 “금융인의 자부심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건물이 역사의 부침을 겪는 것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무겁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직 반전의 기회는 남아있다. 우리은행의 새 주인이 누가되느냐에 따라 우리금융플라자가 화려했던 옛 영광을 되찾을 가능성도 열려 있기 때문이다. 최근 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 등은 잇따라 복합금융센터 설립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특히 우리은행 인수후보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는 국민은행도 지난해부터 복합금융센터 설립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만약 이들이 우리은행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경우 간판에서 ‘우리’라는 두 글자만 바꿔달고 새 출발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지주사들은 은행과 증권, 보험, 카드사 등은 기본이고 저축은행까지 모두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보다 더 진보한 형태로의 재탄생도 가능하다. 유력한 후보로 꼽히는 교보생명의 경우도 금융지주사들만큼 다양하진 않지만 보험과 증권을 계열사로 두고 있어 은행과 묶으면 일정수준 이상의 복합금융센터 구축이 가능하다.
결국 우리금융플라자의 부활 여부는 모회사인 우리금융의 민영화가 끝난 뒤에야 최종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115년의 역사를 지닌 금융의 상징이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궁금해진다.
이영복 언론인
금융권 대세 ‘복합금융센터’ “뭉쳐야 잘 산다” 한화금융프라자 전경. 하나금융은 은행과 증권 보험 카드 등 계열사 지점을 한데 모은 복합 금융센터를 설립할 자리를 찾고 있고,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한 농협금융지주도 우리투자증권WM부문과 은행을 결합해 복합 점포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기업들도 복합 금융점포 설립을 타진하기 시작했다. 삼성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 금융 계열사들을 한 곳에 집중시킬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고, 한화그룹도 한화생명과 한화손보, 한화증권 등을 모은 ‘한화금융플라자’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또 동부그룹도 동부화재와 생명, 증권 등으로 복합 점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전해졌다. [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