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희 | ||
결혼한 지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이제 40대의 중년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됐지만 오히려 그녀의 생활은 지금이 가장 최악의 상황이라는 것. 지인들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김씨는 현재 세 가지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남편 정씨와의 불화와 경제적 어려움, 현 정국에 대한 불안감 등이 그것이다.
실제 <일요신문> 취재 결과 김씨 부부가 현재 주소지상 별거중인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재 두 사람의 주소지는 각각 달랐다. 두 사람은 현재 각각 집을 비워둔 채 제 3의 장소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곳은 국정원 안가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김현희씨가 일반인의 눈에서 사라진 것은 97년 12월 결혼 이후였다. 당시 결혼식도 경주에서 가족들만 참석한 채 극비리에 치러졌다. 이로써 김씨는 약 10년간의 안기부 안가 생활을 접고 평범한 여인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상황은 김씨 부부의 바람과는 다른 쪽으로 치달았다. 97년 12월 대선을 통해 정권교체가 이뤄지며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고, ‘KAL 858기 사건은 군사정권의 정권 연장을 위한 조작’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참여정부가 들어서면서 이런 논란은 본격화됐다.
과거사 진상 규명 대상에 이 사건이 포함됐고 오충일 국정원 과거사 진상규명위원장은 “정확한 진상 파악을 위해 김씨에 대한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씨는 이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떳떳하게 왜 진상 조사에 나서지 못하느냐”며 의혹을 제기했고 또 다른 일각에서는 “이제 평범한 여성으로 살도록 해야 하지 않느냐”는 동정론도 제기하기도 한다.
김씨 부부가 숨어들면 들수록 갖가지 추측과 루머가 무성했다. 해외로 이미 나갔다는 얘기도 있고, 국정원이 극비리에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씨의 신변에 큰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의문도 튀어나왔다.
이런 가운데 <일요신문> 취재진은 김씨 부부를 직접 만나는 것만이 여러 추측성 소문들을 확인할 수 있는 길이라는 판단 하에 지난해 10월부터 서울의 자택과 경주의 시댁 등에 대한 취재를 계속했다. 하지만 김씨 부부는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현재 집에 살지 않는 것이 거의 확실했다.
어쩔 수 없이 최근 김씨의 근황과 심경 등을 전해 듣기 위해 가족들 및 주변 지인들을 탐문해 보기로 했다.
현재 국내에서 김씨의 유일한 가족 친척은 경주의 시댁 식구들 뿐이다. 지난해 10월 경주 본가를 방문한 <일요신문> 취재진에게 김씨 남편의 친형인 정아무개씨는 “2003년 10월 부친상을 당했을 때에도 동생만 잠깐 다녀갔을 뿐, 제수씨는 다녀간 기억이 없다”라며 “그나마 부친상 이후에는 전화도 거의 없고 또 기자들이 자주 찾아와 이쪽 나들이를 일절 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결혼 초기만 해도 경주 시댁을 자주 왕래했던 김씨 부부는 실제 지난 2001년 1월 시댁에서 성묘 나들이를 가던 모습이 한 언론사 카메라에 잡힌 이후로는 경주 방문을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의 현재 가족과 시댁 식구들을 제외한 그의 지인은 안가생활 10년동안 함께 지내며 가족처럼 믿고 의지했던 안기부 직원들과 자신의 변호인단 및 교회 관계자 등뿐이다. 취재진은 이들을 탐문하며 몇몇에게 김씨의 현재 근황을 어느 정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 김현희씨의 결혼식 때 모습. | ||
그에 따르면 김씨는 현재 세 가지 면에서 심한 마음고생을 하고 있다는 것. 첫 번째는 남편 정씨와의 불화설이었다. 다소 의외였다. 정씨가 결혼 직후 안기부를 그만두고 사업을 했는데 실패했다는 것. 다시 한번 더 사업을 벌였으나 다시 실패를 했고, 이런 와중에서 부부 간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전언이다.
A씨는 “당시 두 사람은 우리 집에 함께 오기도 했다. 그때 정씨는 김씨의 경호를 담당한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형적인 여성스러움을 갖고 있는 김씨에 비해 정씨는 좀 맞지 않았다”고 밝혔다.
87년 당시 안기부에서 수사 책임을 담당했던 B씨도 “두 사람은 성격적으로 너무 달랐다. 예를 들면 김씨는 뭔가를 만지면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할 정도로 아주 깔끔하고 여성스럽다. 반면 정씨는 투박한 스타일이다. 둘 다 서로 무뚝뚝하고 말도 없다. 그래서 처음엔 참 놀랐다. 아무래도 업무 관계상 두 사람이 같이 다닐 수밖에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던 것 같다”고 전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불화설을 뒷받침할 만한 정황을 한 가지 발견했다. 현재 두 사람의 주소지가 각각 따로 등록되어 있는 점이 그것. 즉 주소지 상으로만 본다면 별거중이었다는 말이 되는 셈이다.
김씨가 겪고 있는 또 하나의 마음고생은 경제적 어려움이라고 한다. 이는 남편과의 불화설과도 맥을 같이 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정씨는 최근까지 자신의 친형과 함께 S통상을 운영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실패했다는 것. 물론 김씨도 특별한 직업이 있을 리 없다.
국정원 등 국가에서도 김씨에 대한 재정적 지원은 일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직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국가가 김씨에게 재정적 지원을 해줄 명분이 없다”면서 “이미 김씨는 국정원의 조사를 마친 상태에서 법정에서 사형 선고와 함께 사면을 받고 자유인의 몸이 됐다. 그에게 무슨 명목으로 지원을 해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A씨가 전하는 김씨의 경제적 궁핍에 대한 이유는 이렇다. 그는 “나와 자주 왕래하고 연락할 때만 해도 김씨에게는 출판에 따른 인세와 강의료 및 기타 도움 등으로 수억원대의 제법 많은 재산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당시 유가족들에게 ‘잘못을 조금이라도 용서받을 수 있도록 희생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쓸 수 있게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이 돈은 장학재단도 만들지 못하고 그냥 유족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모두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B씨 역시 “김씨가 결혼 직후 갖고 있는 것 다 내놓을 때만 해도 이런 상황을 예상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김씨를 찾는 이들이 많았고 심지어 안기부 내부에서는 우리끼리 농담삼아 ‘냉면 장사만 해도 돈을 벌 것’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98년 정권이 바뀌면서 상황이 많이 바뀌지 않았나. 김씨는 전혀 외부에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고 숨어들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 변화가 남편인 정씨에게도 역시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김씨가 겪고 있는 세 번째 심적 고충은 현 정국에 대한 불안감과 현 정부 및 국정원에 대한 심한 불신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 결정적인 계기가 지난 2003년 10월경 한 방송사가 김씨 부부가 살고 있는 집에 카메라를 들고 기습적인 인터뷰를 시도한 사건이었다는 것. 최근 자신의 이름을 김현희에서 ‘김○○’로 개명까지 할 정도로 자신의 존재를 외부에 드러내기를 극도로 꺼려했던 김씨에게 이 사건은 대단히 큰 충격이었다는 전언이다.
A씨는 “당시 김씨 부부는 절대 자신의 집을 노출하지 않았음에도 기자들이 정확히 집 주소를 알고 찾아온 것에 대해 국정원을 강력히 의심했다고 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국정원에서 언론에 흘리지 않았다면 주소가 노출될 리가 없었다는 의심이다. 심지어 “국정원도 현 정부도 못 믿겠다”는 얘기도 나왔다는 것.
실제 당시 김씨를 한번 만나기로 했던 한 변호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이후 김씨가 일체의 연락을 끊고 꼭꼭 숨어들자 상당히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씨는 왜 이토록 자신의 신분 노출을 극도로 민감해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 A씨는 “김씨는 이제 정말 모든 것을 잊고 평범하게 살고 싶을 것이다. 아이들 때문이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할 정도로 아이들이 컸는데 자신의 어머니가 1백명 이상을 희생시킨 비행기 폭파범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충격이 얼마나 클까. 어머니로서 인간적인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87년 12월15일 입에 자해방지용 테이프를 붙인 김씨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를 옆에서 부축하고 내려온 바 있던 안기부 여수사관 C씨는 “수사 기간 동안은 물론 안가 생활 당시에도 김씨와는 정말 언니 동생처럼 지냈다”면서 김씨가 최근 들어 자신에게도 일절 연락하지 않는 것을 보면 얼마나 과거 김현희를 잊고 평범하게 숨어살고 싶은지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C씨는 “최근 김씨가 또다시 조작된 인물일 것이라는 의혹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을 정말 이해할 수 없다”며 “그가 살아 있다는 자체가 진짜라는 증거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