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호의 배당촉진책으로 보유 현금이 가장 많은 삼성전자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 사옥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박은숙 기자
힘도 있다. 경제부총리는 재정과 금융을 총괄한다. 각종 공적기금은 물론 우리 증시에서 단일 기준으로 가장 큰 투자자인 국민연금도 결국엔 경제부총리의 입김 아래에 있다. 그리고 공적기금과 국민연금은 기관투자자들의 투자결정에도 막강한 영향을 미친다.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에도 국민연금의 의결권이 언급됐다. 국민연금을 움직여 기업들을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경제부총리가 이처럼 강하게 기업들을 압박할 때는 실력행사도 불사하겠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봐야한다”면서 “정부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단을 총동원한다면 기업들이 버티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보유 현금이 가장 많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 SK그룹 등은 지배구조와 관련해 정부 눈치를 봐야 할 처지다. 그 중에서도 삼성은 이건희 회장의 와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가 급하다. 후계구도에서 정부의 협조는 필수다. 당장 상속세를 최대한 절감해야 하고, 지배구조 재편을 위한 중간지주회사 도입 등의 제도변경도 필요하다. 현대차그룹 역시 정의선 부회장으로의 후계구도가,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조기 출소를 위해 정부에 눈도장을 찍을 필요가 크다.
외국인들 역시 우리 정부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기업들의 이익성장세가 정체하거나 뒷걸음질 치는 상황에서 배당을 통한 수익 기회를 높여야 한다. 6월 초 삼성전자의 2분기 실적발표에 앞서 미국 월스트리트의 기관투자자들은 삼성전자 최고경영진과 만났다. 이들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삼성전자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운용자산규모가 110조 원에 달하며 삼성전자와 애플에 동시에 투자하는 기관투자자 아르티잔파트너스 관계자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의 재무적 건전성과 사업역량을 높이 평가하지만, 기업구조에 대한 정보를 좀 더 공개하는 경영투명성을 개선해야 주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영투명성을 언급하며 주주를 위한 정책을 펼치라는 압력을 가한 셈이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50%가 넘는다. 삼성이 어떤 후계구도를 구상하든, 외국인 주주들이 반대한다면 이뤄질 수 없다.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월스트리트의 기관투자자들은 2년 전 애플을 무릎 꿇게 만들며 힘을 과시했다. 애플도 2년 전 1000억 달러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등 주주환원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 하지만 기업사냥꾼으로 알려진 칼 아이칸, 데이비드 아인혼의 펀드 등이 공개적으로 압력을 가했고, 결국 배당확대와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며 손을 들었다.
현대모비스 충주공장 외관. 현대모비스도 배당 확대로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이다.
그럼 대기업들이 배당 확대에 나서면 수혜를 볼 종목들은 어떤 것들일까?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역시 총수 일가의 지분이 많은 곳이다. 이론적으로 회사 밖으로의 현금유출을 최소화하면서, 동시에 배당금을 통해 경영권 강화를 위한 실탄까지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에서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이 거론된다. 현대차그룹에서는 현대모비스, 현대차, 현대글로비스 등이다. SK그룹은 SK C&C를, LG그룹은 (주)LG를 주목해야 한다.
이들 종목과 관련해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한 지배구조 재편작업이 예상보다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가능성도 크다. 삼성은 삼성생명과 삼성물산에 흩어져 있는 삼성전자 지분을 이 부회장에게 몰아주는 게 최대 관건이다. 현대차그룹도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에 대한 지배력을 현대차나 현대모비스에 대한 지배력으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SK그룹의 경우 ‘비공식 지주사’인 SK C&C를 공식 지주사로 전환해야 SK텔레콤이나 SK이노베이션의 잉여현금을 최태원 회장에게 전달하기 용이하다. 최 회장의 SKC&C 지분과 SKC&C의 SK(주) 지분의 맞교환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이미 지배구조가 지주사로 정비된 LG그룹의 경우 (주)LG의 지분가치가 빛을 발할 가능성이 높다.
한화증권은 최근 ‘배당투자 바로 알고 바로 하자’는 주제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 보고서에서 박성현 연구원은 2000년 이후 14년간의 잉여현금흐름과 배당성향을 고려해 두 가지 그룹으로 나눠 분석했다. 그 결과를 잉여현금흐름 대비 배당성향(당기순이익에 대한 현금배당액의 비율)이 높아 정책변화와 관계없이 배당의 지속 및 확대가 가능한 10개 종목, 잉여현금흐름에 비해 배당성향은 낮지만 외부 정책이나 내부 구조변화가 있으면 배당이 늘어날 수 있는 8개 종목을 가려냈다.
전자는 한국쉘석유, 신도리코, 에스원, KT&G, 퍼시스, 자화전자, 빙그레, SK텔레콤, KPX케미칼, 유한양행 등이 꼽혔다. 후자는 삼성전자, 고려아연, 삼성테크윈, 현대모비스, 세방전지, 대상, 롯데제과, 태광산업 등이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