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신옥 창당기획단장, 민창기 홍보위원장, 정몽준 의원, 박진원 대선기획단장, 이철 조직위원장. | ||
정 의원의 정치사상이나 행태 등은 유권자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비록 4선 의원이지만 그간 정치휴업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중앙정치 무대에서 활동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연말 대선에서 유권자의 판단을 돕기 위해 정 의원이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 정 의원을 밀착 취재해온 기자들의 눈을 통해 나타난 정 의원의 숨겨진 모습을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각종 의문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핵심 3인방이 좌지우지?
국민통합21이 지난주 당 로고를 발표했다. 파란색(중앙)과 빨간색, 노란색으로 표현된 3명이 함께 팔을 들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자실에서는 로고를 보고 농반진반으로 “통합21에는 세 사람밖에 없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해 로고 발표차 기자실로 내려온 정미홍 홍보단장을 당혹케했다.
기자들이 말하는 3명은 바로 국민통합 21의 정몽준 의원과 강신옥 창당기획단장 그리고 박진원 대선기획단장을 지칭한다. 로고 색깔도 세 사람에게 각각 어울린다. 이념적 성향보다는 실용을 중시하는 정 의원은 파란색에, 정치적 성향과 입장이 분명한 강 단장은 빨간색에, 그리고 서구식 합리주의로 무장된 정치초년병 박 단장은 노란색에 부합한다.
국민통합21의 핵심전략은 사실상 정 의원과 강 단장 박 단장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것이 출입기자들의 분석이다. 사실 국민통합21 출범초기에는 ‘4+알파’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정 의원, 강 단장, 박 단장에 이철 조직위원장을 포함, 4인방으로 불렀고 여기에 박범진 기획위원장과 정상용 전 의원, 정종문 오철호 정광철 특보, 이달희 보좌관 등이 사안에 따라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국민통합21의 실질적 오너가 정몽준 의원임을 감안하면 결국 정 의원과의 정치적 인간적 신뢰관계가 당내의 핵심인사를 가리는 주요 기준이 된다. 정 의원은 국민통합21을 오너가 없는 정당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출범부터 창당준비위, 발기인대회, 창당대회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소요된 모든 비용을 정 의원 개인 돈으로 부담한 점이나 창당전당대회에서 정 의원이 대선후보로 만장일치 추대된 점을 감안하면 정 의원이 당내에서 갖는 위상과 영향력은 재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런 점에서 박 단장과 강 단장이 정 의원과 쌓아온 인간적 정치적 신뢰는 왜 3인방을 국민통합21의 핵심이라고 지칭하는지를 잘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박 단장이 정 의원을 처음 만난 것은 78년 미국 컬럼비아대학 유학시절이었다. 박 단장은 결혼을 한 뒤 늦게 미국 유학길에 올라 어려운 형편으로 단칸방 살이를 했다. 뒤이어 유학 온 정 의원은 미혼이었고 박 단장이 서울대 상대 선배라는 이유로 박 단장 집으로 찾아가 밥을 얻어먹곤 했다.
정 의원은 컬럼비아대학을 다니다 MIT로 학교를 옮겼다. 박 단장에 따르면 경기고를 가지 못하고 중앙고를 다녔던 것에 대한 약간의 콤플렉스를 느끼고 있던 정 의원이 학교의 네임밸류에 민감했기에 MIT가 더 유명하다는 이유로 학교를 옮겼다고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헤어졌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정 의원은 박 단장과 연락을 유지했다.
박 단장은 변호사 자격을 획득한 뒤 능력을 인정받아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서부 최대 로펌(미국 내 10대 로펌)에서 근무를 하던 중 한국의 세종로펌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자리를 옮기게 된다. 정 의원은 박 단장이 귀국하자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박 단장을 임명했다.
박 단장은 정 의원이 이번 창당과정에서 정치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자신을 대선기획단장에 임명한 배경에 대해 오랜 친분도 있지만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재직할 당시 자신이 보여준 ‘활약’이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자평한다. 박 단장에 따르면 자신이 현대중공업 사외이사로 재직할 때 이사회가 결정한 중요한 2가지 사안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안에 대한 이사회 결정과정에서 박 단장은 사외이사임에도 불구하고 반대의사를 굽히지 않았다. 현대상선에 대한 증자가 현대중공업 주주의 이익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원칙적인 문제를 제기한 박 단장 앞에서 계열사 개념에서 투자를 결정해온 현대중공업 임원진은 당황했다. 이사회는 하루를 끌었고 결국 박 단장은 다른 조건을 붙여 이 안건에 동의했다.
그 조건은 당시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의 전결 금액을 매출액(6조원대) 10%인 6천억원대에서 2백억원대로 대폭 낮추는 파격적인 것이었지만 임원진들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자에 대한 지급보증 지불문제에 대해서는 박 단장은 더욱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이 지불보증의 계약체결은 지난 97년 현대전자가 캐나다 금융기관인 CIBC에 현대투신 주식을 1억7천5백달러에 넘기는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이 현대전자와 현대증권으로부터 손해보전 각서를 받고 CICB와 풋옵션(일정기간 후 주식을 정해진 가격에 되사주는 계약)을 맺으면서 비롯됐다. 이 계약에 따라 CIBC는 풋옵션 만기일인 2000년 3월 현대증권과 현대전자에 주식 재매수를 요구했으나 두 회사가 자금난을 이유로 거절하자 현대중공업에 이를 대신 요구해 현대중공업이 2천4백억원대의 돈을 고스란히 물어주게 된 것이다.
이 지급 보증안은 이미 전임 이사들이 지불을 의결한 만큼 당시 이사들이 다시 지불을 의결할 필요 없이 자동 집행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 대표이사는 거액의 지불에 부담을 느껴 현 이사진이 재결의해줄 것을 요구했고 박 단장은 이를 거부한 것이다.
결국 박 단장은 엄청난 양의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한 뒤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현대중공업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는 각서를 발견, 이를 근거로 현대증권과 현대전자, 이익치 전 회장을 상대로 2천7백여억원을 물어달라는 소송을 제기할 것을 주장했고 이를 관철시켰다. 그리고 소송 결과 지난 1월 1심 재판부는 이 전 회장과 현대증권, 현대전자가 연대해 현대중공업에 1천7백18억원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 지난 9월25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 참석한 정몽준 의원 | ||
“어느날 모 여성지 기자가 변호사 사무실로 찾아와 ‘연예인 K씨가 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젊은 시절 관계 때문에 이혼을 당했다는데 사실이냐’며 확인을 요청했다. 그래서 내가 김재규 전 중정부장 변호 때 사용한 수첩을 꺼내 박 전 대통령과 관계가 있었던 연예인 명단을 찾아보니 K씨는 X표라고 돼 있어 ‘아니다’고 했다.
그런데 그 기자가 수첩을 잠깐 보여달라고 해 건네준 뒤 다른 일을 잠깐 하고 왔더니 ‘잘 봤다’며 돌려주더라. 그런데 며칠 있으니까 신문에 ‘강신옥 변호사, 20년 만에 박정희의 여자들 공개’라고 대문짝만하게 쓴 여성지의 광고와 함께 내 수첩 사진이 나왔다. 그래서 즉각 그 기자에 전화해 욕설을 퍼붓고 항의했다. 그런데 정 의원이 그 사건과 관련, 자꾸 박 의원에게 사과를 하라고 했다. 나는 계속 거부했는데 스페인에서인가 다섯 번째 사과를 계속 하라고 해 ‘아니 안한다는데 이 사람이 왜이래’라며 신경질을 냈다. 그리고 나서 정 의원이 나에게 다신 사과하라는 말을 안하더라.” 두 사람이 전하는 이 같은 일화는 정 의원이 두 사람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우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렇게 박 단장은 국제변호사로서, 강 단장은 국내 변호사이자 소신 있는 정치인으로서 훌륭한 성품을 갖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현실정치에서도 그 장점이 그대로 통할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국민통합21은 원칙주의자 3명 때문에 실패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강 단장은 이념적 원칙주의자이고 박 단장은 서구식 합리주의가 체화된 원칙주의자며 정 의원은 서구식 합리주의와 기업인으로서의 효율주의, 여기에 기성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융합된 원칙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한 정치혁명은 결국 현실에 접목되지 못한 채 ‘꿈’으로 끝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기자들도 있다.
▲현역의원을 무시한다?
정 의원이 기성 정치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그가 ‘정치혁명’을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정 의원의 생각은 ‘부정적’ 수준을 넘어 ‘경멸’에 가깝다는 것이 출입기자들의 인식이다. 이 같은 인식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것은 지난 10월24일 춘천 기자간담회에서다. 정 의원은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대선후보간 면담과 관련, “(면담에 앞서) 대기실에서도 (후보들이) 서로 중간에 앉으려고 그러대. 들어갈 때도 좋은 자리 차지하기 위해 먼저 들어가려고 하고”라며 한심하다는 평가를 했다.
정 의원은 이밖에도 “지난 번 부산에 갔을 때 동아대 총장 등이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뒤 박관용 의장이 그런 모임 왜 만들었나고 압력을 넣었다고 그래, 나 참 국회의장이라는 사람이 왜 그래”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신협축구대회 할 때 한나라당 의원 6~7명이 서 있던데 나이가 60이나 된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한나라당은) 여당하다 야당한 사람들인데 피해의식으로 뭉쳐있는데… (중략) 표현하자면 어둠의 세력이지”
“(주변에서 엄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래도 나는 창자를 뽑는다(이회창 후보가 했다는 말로 알려짐)는 말은 안했지요” “(한나라당) 안에 국회의원이 1백42명인데 그중에 한 명은 생각을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해야지. 우리가 북한에 대해 그러는 것처럼 한나라당도 (반대가) 한 명도 없다는 게” “이회창 후보도 이제 마음 편히 먹고 느긋하게 선거운동 하시라, 나이도 많으신데” 등의 말을 쏟아냈다. 어조가 비판이라기보다는 경멸에 가깝게 들린다.
실제로 민주당과 자민련 등 정 의원이 영입대상으로 삼을 만한 의원들은 한결같이 정 의원이 현역의원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자민련의 한 의원은 자신이 국민당에도 몸을 담았는데 한 번도 정 의원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정 의원과 만나 1시간 가까이 현역의원을 무시하는 데 대한 비판을 했다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정 의원이 신뢰하는 사람은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돈 달라고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말 그대로 ‘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정 의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과 원칙을 분명히 하는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이다.
부잣집 여자가 자신에게 접근하는 남자들에 대해 ‘아버지 돈 보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듯이 정 의원 역시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은 자신에게 뭔가를 원하는 사람이고 당당한 사람은 그런 요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 의원과 끈끈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강 단장이나 박 단장이 정 의원에게 뭘 요구하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밝혀온 사람들이고 보면 상당히 설득력 있는 분석으로 보인다.
▲결국 중도 사퇴할 것이다?
정 의원 지지율이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오차범위 내로 좁혀지면서 11월 초순에 지지율이 역전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결국 정 의원이 사퇴할 것이라는 관측이 심심찮게 제기되고 있다. 정치권의 한 원로정치인은 “정 의원의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지면 정 의원의 가족들이 나서 정 의원의 사퇴를 종용할 것이고 정치권에서 인생의 승부를 걸 생각이 없는 정 의원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 의원이 민주당 박상천 의원과 통합신당 창당에 합의했을 때 사용한 장소가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택이었는데 이후 이를 안 정몽구 회장이 정 의원을 심하게 꾸짖었다는 소문이 있다. 정 의원 형제 등 가족들이 여전히 정 의원의 출마에 대해 탐탁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정 의원이 국민통합21의 실질적 오너이면서도 창당과정에서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것도 결국 중도 사퇴나 대선에 실패할 경우 당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정 의원이 세 확산이 긴요한 순간에도 이미지 훼손을 우려해 주춤거리는 모습을 보인 것 역시 대선 후에도 개인적 이미지를 관리하겠다는 생각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이와 관련, 정치권에서는 정 의원이 다른 대선후보들과 달리 대권에 도전한 것이 자신의 집안을 ‘한국의 케네디가’로 만들겠다는 개인적 명예욕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미 부와 명예를 누릴 만큼 누렸고 정치권에 인생을 걸지 않았던 정 의원이 굳이 대권에 도전한 것은 권력을 통해 뭔가를 이루겠다는 치열한 욕망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 의원의 측근은 정 의원이 중도사퇴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한다. 일반 국민과 친분이 있는 외국의 저명인사들이 출마를 권유했고 정 의원이 이를 받아들인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만을 이유로 중도 사퇴한다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불명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