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월 당사에서 현판을 떼내 천막당사로 옮기는 박근혜 대표와 당직자들. | ||
박 대표는 당초 총선 승리 후 2선으로 후퇴했다가 대선 전에 복귀하는 방안을 깊이 검토해왔다. 하지만 박 대표는 최근 이같은 전술을 완전 백지화하고 오는 6월 전당대회에서 대표에 연임된 후 한나라당을 장악, 대권에 도전하는 시나리오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의 이같은 구상은 자신을 보고 표를 던진 유권자들에게 한나라당 변신의 책임을 지겠다는 ‘결자해지’적 측면과 더불어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지사 등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주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박 대표는 어느 때보다 당을 자신의 색깔에 맞게 바꾸는 당 개혁 작업을 강도 높게 벌여갈 계획을 갖고 있다. 박 대표는 이미 여의도연구소장인 윤여준 의원에게 당 개혁의 상당부분을 위탁했으며, 윤 의원의 미국 방문을 만류시키며 참모 역할을 해줄 것을 각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윤 의원은 당초 총선이 끝나는 대로 미국으로 건너가 휴식을 취하면서 쉬엄쉬엄 한나라당 개편 방안을 연구할 작정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는 당장 당 안팎의 도전을 물리쳐야 하고, 6월 전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절박감 때문에 윤 의원을 전대 때까지 국내에 있도록 부탁했다.
박 대표는 일단 한나라당의 투쟁노선과 정체성 등을 완전히 개혁할 생각이다. 한나라당이 크게 변해야 다음 대선에서 최소한의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박 대표가 추진할 한나라당 개혁작업은 예상보다 큰 폭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우선 여권의 공세에 일절 맞대응하지 않는 ‘무대응’ 전략은 여권을 상당히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손바닥이 맞부딪혀야 소리가 나듯 싸움을 받아줘야 싸움이 된다. 박 대표는 검찰의 출구조사, 노무현 대통령의 재신임 인정 발언 및 식탁 정치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해 일절 대응을 삼가왔다. 오로지 민생행보에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여야 대표회담의 경우도 열린우리당이 매달리는 형국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연한 대여 정책은 거꾸로 열린우리당을 ‘안달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또 홍준표 이재오 정형근 의원 등 이른바 ‘저격수’들에 대해서도 변신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는 등 의원들 개개인의 근본적 변화도 주문하고 있다. 이는 향후 부딪힐 당내 노선투쟁에서 원칙을 버리지 않겠다는 뜻으로 박 대표의 당 개혁 의지를 읽게 하는 부분이다.
여권에선 박 대표가 유연한 이미지 창출에다 대북정책에서 획기적 발상전환까지 해간다면 다음 대선에서 벅찬 상대로 떠오를 수 있다며 긴장하는 기류가 강하다. 대북정책은 박 대표가 히든카드로 준비하고 있는 분야다.
박 대표의 이른바 ‘생활정치’와 획기적 대북정책 등이 성공을 거둘지 여부는 여권과의 관계 설정, 당내의 도전 등 여러 변수가 남아 있지만 일단 시작은 성공적이란 평가다.
박 대표는 이같은 구상의 일단을 최근 기자들과 만나 조금 드러냈다. 박 대표의 사고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문일답을 소개한다.
─6월 대표 경선에 나서나.
▲개인적인 판단보다 당과 국가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하겠다(개인적인 판단이란 계속 대표에 있을 경우 여권의 흠집내기가 심해져 2007년 대선 이전에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6월 대표경선 출마를 만류한 측근들의 판단을 일컫는 말이다).
─대북 상호주의 정책을 바꾸고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대화하는 등 대북정책에 변화를 고려하는가.
▲집권당이든 야당이든 북한문제와 담쌓을 수 있는 당은 없다. 합리적으로 국민공감을 얻는 방법이 문제다. 북한 노동당과도 대화창구가 필요하다.
─국보법도 철폐할 수 있나.
▲철폐는 안되고…, 보완은 생각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한나라당 대표가 국보법 개정 의사를 피력한 것은 처음이다. 이회창 총재 시절에도 국보법 개정은 당론화되지 못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총선 과반 획득으로 재신임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재신임은 노 대통령이 스스로 정치적으로 던진 것이다. 총선이 끝났으니 대통령 스스로 재신임 받았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전적으로 노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다.
─노 대통령의 열린우리당 입당도 문제삼지 않나.
▲노 대통령 입당 문제도 열린우리당과의 얘기이고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다.
박 대표는 시종일관 여권과 대립하지 않겠다는 뜻을 피력한 반면, 당내 개혁 및 대북정책 등에선 상당한 변화 의지를 보였다. ‘정면돌파’의 뜻을 내비친 박 대표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는 이유다.
이필지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