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제발 일본 와주오” 읍소
젠킨스 씨는 2002년 10월 아내 히토미 씨가 일본을 방문하러 떠난 이후 “다시 북한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편지를 접하고는 절망감에 빠졌다. 일본 정부가 당초 약속을 어기고 아내를 억류하고 있다고 믿었다. 두 딸들도 마찬가지였다.
북한 당국 역시 젠킨스 씨의 분노를 부추겼다. 북한의 한 지도원은 젠킨스 씨에게 “일본에서 당신을 데려가는 그 순간부터 당신은 미군법정에 의해 체포되어 평생을 감옥에서 지내야 할 것이다. 일본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고 겁을 주었다. 젠킨스 씨는 1965년 미군부대를 탈영, 월북한 범죄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젠킨스 씨와 두 딸이 일본행을 거부하며 계속 아내에게 “속히 북한으로 돌아와 줄 것”을 요구하는 상황이 2년 가까이 계속되자, 2004년 5월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가 직접 평양을 방문해서 젠킨스 씨 가족을 만났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젠킨스 씨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7~8명의 실무진과 함께 우리 가족이 있는 회의실로 들어왔다. 인사치레는 대충 끝내고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총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히토미가 우리에게 보낸 편지를 내밀었다. 편지를 펴 보지도 않은 채 나와 큰딸은 총리에게 ‘왜 아내를 일본에 억류하고 있느냐. 빨리 돌려보내 달라’고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에 고이즈미 총리는 “애초에 히토미 씨를 납치한 나라에 다시 돌려보낼 순 없다”며 직접 자신의 작은 메모장에서 한 장을 북 찢어 자필로 “여러분이 젠킨스 부인과 일본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온힘을 다할 것을 일본의 총리대신이 약속합니다”라고 써서 주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김정일 총서기도 여러분이 일본에 가도 좋다고 했다”고 밝혔다. 우리가 믿을 수 없다고 하자 총리는 직접 김정일의 서명이 있는 서류를 보여주며 확인시키기도 했다.
원래 회담 예정 시간은 10분이었지만 우리의 완강한 반응에 결국 한 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총리는 우리를 설득해서 일본으로 데려가기 위해 실로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결국 그날 우리를 설득시키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음인지 총리는 새로운 방안을 내놓았다. 조만간 제3국에서 부인과 직접 만나 결정을 해보도록 권유한 것이다.’
결국 고이즈미 총리의 끈질긴 노력 덕분에 젠킨스 씨와 두 딸은 부인 히토미 씨를 인도네시아에서 만났다. 그리고 이 만남에서 최종적으로 아내의 진심을 확인한 젠킨스 씨는 일본으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인도네시아에 따라온 북한 당국의 저지 노력은 집요하게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당국자들은 “부인의 마음을 되돌려보라”며 18K 반지까지 마련해주고 몇 천 달러의 현금 공세도 마다하지 않았다. 북한을 떠나는 즉시 미군법에 의해 체포될 것이라는 ‘외신’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미 북한말로 번역된 것이어서 그 내용은 믿기 어려웠다. 심지어는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두 딸 중 한 명만 데려가는 게 어떻겠느냐”며 은근히 딸 한 명을 인질로 삼을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내가 최종적으로 “일본으로 가기로 했다”고 밝히자 북한 당국자들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날 밤 곧바로 북한으로 돌아갔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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