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년 대선 직전 서울로 압송된 김현희의 기자회견 모습. 오른쪽은 국정원 로고. | ||
지난 1일 ‘국정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진실위·위원장 오충일)는 KAL 858기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껏 1년이 넘게 조사한 것치고는 내용이 너무 부실하다”는 비난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진실위 측은 “의혹을 풀어야 할 당사자인 김 씨가 진실 규명이라는 역사적 소명을 외면하고 있다”며 그 책임을 직접적으로 김 씨에게 전가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그동안 김 씨의 조사 여부를 놓고 진실위와 김 씨 양측 간에 상당히 치열한 실랑이가 오간 것으로 밝혀졌다. 중간 입장에 놓였던 국정원 측도 사실상 김 씨 측의 입장을 대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작 국정원이 이번 진상 조사에 별다른 협조를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진실위 내부에서도 한때 분위기가 상당히 격앙됐다는 전언이다.
김 씨는 왜 목숨을 걸고서라도 절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지 않으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국정원은 왜 김 씨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것일까.
진실위가 1일 밝힌 중간발표의 주된 내용은 “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된 KAL 858기 사건은 안기부의 자작극일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당시 전두환 정권이 이를 87년 대선 환경에 유리하게 활용한 점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새롭게 밝혀진 성과도 있었다. 이 사건이 87년 대선용으로 활용됐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안기부(현 국정원) 내부 문건 ‘무지개 공작’이 확인된 점과 미얀마 해역 인근에서 동체로 추정되는 매장된 물체를 발견한 점이다.
하지만 실종자 가족모임 측과 대책위원회 등은 “김 씨의 직접적인 조사가 이뤄지지도 않은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실제 김 씨가 아무리 어린 시절이라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사진을 착각할 수 있느냐는 의문과 함께 자신과 가족의 이력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점, 공범이었던 김승일 씨 신분이 명확하지 않은 점, 비행기에 실린 폭발물의 실체가 불명확한 점, 사건 당시 김현희의 동선과 음독 과정에 대한 증언 불일치 등 여러 가지 내용들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이러한 의혹들을 풀기 위해서는 김 씨의 정확한 증언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진실위의 입장이다.
아직 진상조사가 계속 진행 중인 탓인지 진실위 측도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04년 11월 진상조사 활동을 시작한 이래 김 씨와 국정원을 상대로 상당히 힘겨운 싸움을 벌여왔다는 분위기만 내비칠 뿐이다. 진실위에 참가한 10명의 위원들은 대부분 인터뷰를 거절했다. “1일 공식적인 발표 이외에 개별적인 언론과의 접촉은 하지 않기로 내부 입장을 정리했다”는 것.
<일요신문>은 그중 한 명인 Q 위원에게 비교적 상세한 내막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그 역시 인터뷰가 부담스러운 듯 말을 아꼈으나 조사 과정에서 불거진 김 씨 측의 완강한 태도와 국정원 측의 무성의한 태도에는 상당한 불만을 표출했다.
―결국 김현희 씨의 직접 조사에는 실패한 셈인데.
▲우리로서도 그 점이 너무 아쉽다. 사실 지난 1일 발표하기 이틀 전에도 우리는 김 씨를 만나러 내려갔었다. 마지막까지 만남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쪽에서 워낙 완강했다.
―내려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김 씨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는 뜻인가.
▲대충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 신변 안전을 고려, 구체적인 지명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시댁이 있는 경주를 말하는 것인가. 정형근 의원은 얼마 전 경기도 서쪽 접경 지역이라고 했는데.
▲경주는 아니다. 서쪽 접경 지역이라는 말도 처음 듣는다. 다만 서울 남쪽이라는 점만 밝힐 수 있다.
―<일요신문>에서 추적한 바에 따르면 김 씨가 자녀들 문제 때문에 상당한 고민을 한다고 들었다.
▲그럴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조사 거부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역사의 증인으로 남을 운명에 처해 있다. 결국 그것 때문에 100명이 넘는 사람들을 희생시킨 폭파범이면서도 사면받지 않았나. 사면의 이유가 역사의 증인을 남겨두기 위한 것인데 조사에 증인으로 나서지 않겠다니 그러면 사면의 이유도 없는 것 아닌가.
―김 씨와는 한 번도 직접 접촉하지 못했나.
▲못했다. 처음엔 국정원이 중간에 나섰는데 왠지 우리 말이 제대로 전달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다음엔 김 씨의 남편 가족 측과 직접 접촉했다. 그런데 남편의 입장이 워낙 완강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중간에서 다 커트하는 것 같았다.
―김 씨 남편과는 직접 접촉을 했나.
▲직접 접촉은 못한 것으로 안다. 국정원과 그 형님 되는 분을 통했다. 남편이 전직 국정원 출신이어서 그런지 국정원 측과는 연락이 잘 되는 듯 했다. 우리가 계속 압박하자 남편이 “정 이렇게 나오면 우리 가족들은 모두 자폭할 수밖에 없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게 나오는 데야….
―현재 김 씨는 국정원에서 계속 보호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 김 씨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불가능한가.
▲아니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우리와는 달리 수사권이 있다. 결국 김 씨가 조사에 응할 것으로 본다.
―김 씨의 면담은 실패했지만 동체 발견은 큰 성과인데 국정원 측의 도움이 있었나.
▲없었다. 가장 핵심적인 사항이 동체 발견과 김 씨 면담인데 모두 국정원은 사실상 도움을 주지 않고 있다. 동체 발견 부분도 국정원에서 먼저 자료를 제공한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직접 미얀마 현지 조사를 통해서 사실 확인을 한 거다.
―그렇다면 국정원이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는 걸까.
▲모르겠다. 국정원 측 인사들은 “어차피 다 끝난 옛날 사건이고 김현희도 다 범행을 털어놓고 범인까지 잡힌 마당에 이제와서 뭘 더…” 하는 식이었다.
한편 국정원 측은 “김 씨가 이번 사건을 국정원이 재조사하는 데 대해 배신감을 느낀다고 전해왔다”면서 “만약 김 씨의 거주지가 알려질 경우 이한영 씨(97년 피살)와 같은 신변 위협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정보 제공은 불가하다”고 밝혔다. 과연 김 씨는 언제쯤이나 ‘역사의 증인’이란 무게를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까.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