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 경매비리 의혹을 제기한 백의장. | ||
농협 공판장에 경매 위탁을 해온 사업가 백의장 씨(66)가 농협 경매 비리 의혹을 폭로하면서 농협을 상대로 손해배상 등 민·형사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 2002년 4월. 초기 경찰과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로 상당한 증거 자료가 확보되었으나 법원은 백 씨의 소송을 모두 기각시켰다. 이후 검찰마저 입장을 급선회, 지난해 6월 그간 확보한 증거자료들을 묵힌 채 무혐의 처리로 수사를 종결시켰다.
예상치 못한 거대한 벽에 부딪치게 된 백 씨는 “법원도 검찰도 믿을 수 없게 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헌재에 기댈 수밖에 없게 됐다”며 지난 2월 헌재에 ‘불기소처분취소 헌법소원신청’을 청구했다.
백 씨의 청구 사유는 ‘명확한 이유 없이 검찰에 의해 본인이 제기한 고소 사건이 불기소처분된 것은 국가의 공권력에 의한 본인의 평등권과 재판절차진술권이 현저한 침해를 받았다’는 것. 대개 이런 청구 건은 3~4개월 이내에 처리한다. 그리고 대부분 기각되는 게 ‘전례’였다.
당초 이 사건도 재판 선고일은 지난 6월 29일로 예정됐었다. 하지만 헌재 제3지정 재판부는 3월 14일 백 씨의 청구가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고 국선변호인의 선임을 주문했다. 이후 백 씨는 지난 6월 말경 증빙자료들을 좀 더 자세히 제시해달라는 헌재의 요청을 받았다. 그 뒤 이 사건은 당초 선고일의 판결이 유예된 채 6개월째 계류 상태다.
지난해 백 씨의 변론 상담을 맡았던 강지원 변호사는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고소인이 헌재에 불기소처분취소 헌법소원신청을 하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대부분은 기각돼온 것이 현실”이라며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이 당초 선고일을 넘겨가며 계류 중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 헌법재판소. | ||
그렇다면 백 씨가 이처럼 개인으로서는 감내하기 힘든 4년여의 세월 동안 농협과 검찰, 법원 등을 상대로 힘든 싸움을 벌이게 된 내막은 무엇일까.
백 씨가 농협의 경매 비리 의혹을 제기하며 농협 공판장 임원 노 아무개 씨 등을 고발한 것은 지난 2002년 4월. 농협은 농협 경매사 김 아무개 씨 등을 내세워 ‘백 씨가 무고를 하고 있다’며 경매 과정을 직접 녹음했다는 녹음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김 씨 측은 “경매 당시 한 손에 쥐고 있던 S사 휴대폰으로 경매 현장을 녹음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당시 백 씨와 검찰은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재판과정에서 법원 역시 김 씨 측의 주장에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재판에서 김 씨가 자신의 휴대폰으로 경매 현장을 녹음했으며 이때 호창 경매사 이 아무개 씨가 10m 거리에서 호창한 것이 녹음이 되었다고 증언하자, 담당 판사인 K 판사는 김 씨에게 “무슨 말을 하느냐. 휴대폰으로는 2~3m만 떨어져도 녹음이 잘 안 될 것인데 10m에서 말한 것이 녹음이 잘 되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질책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김 씨 측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 결과를 내세우며 “휴대폰 녹음이 맞다”고 맞섰다.
하지만 2004년 6월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휴대폰 녹음 가능성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했음에도 오히려 녹음 내용을 증거로 인정해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것. 검찰은 즉각 항소했다. 그리고 검찰은 법원에 “국과수 감정 결과를 믿을 수 없으니 대검에서 감정하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예상대로 대검의 감정 결과는 국과수와 상반됐다. 당초 휴대폰 녹음을 일반 카세트 녹음기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해 오던 국과수 측도 “국과수 예규상 ‘추정 가능하다’는 감정을 했던 것”이라고 한 발 물러서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2005년 3월 항소심에서도 이 건은 기각됐다.
그러자 검찰에서 더욱 강도 높은 수사를 하기에 이르렀다. 2005년 4월 서울동부지검의 Y 검사는 수사진에게 실제 경매 재현을 통한 녹음을 지시했다. 백 씨에 따르면 4월 14일 자신이 동부지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수사를 담당하던 B 수사관이 “경매 녹음테이프는 조작임이 밝혀졌다. 허위 감정을 한 국과수 관계자에 대한 계좌 추적도 필요할 것 같다”며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검찰이 6월 1일 이 사건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결정한 것.
백 씨에 따르면 당시 검찰에서 확보한 증거 자료는 이뿐만이 아니었다고. 농협 경매사 김 씨가 수사 과정에서 2000년 7월과 2003년 9월, 2006년 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경찰과 검찰에 농협의 경매조작과 녹음 편집 사실을 진술했다는 것. 백 씨는 수사관과 김 씨, 그리고 자신이 대화한 녹취록을 그 증거로 제시하기도 했다.
백 씨는 “대부분 상황이 거의 명확한데도 법원은 국과수 감정 결과만 증거로 받아들였고, 대검 감정 결과가 상반되게 나왔음에도 이를 묵살했다. 또한 검찰 역시 스스로 확보한 증거자료들을 모두 덮은 채 혐의 없음으로 결론을 내렸다”라고 항변했다.
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던 Y 검사는 “당시 백 씨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상당한 수사를 진행했으나 증거 자료들이 혐의를 입증하기에는 부족하다고 판단해서 불기소처분을 결정한 것”이라며 “개인적으로야 억울한 면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법 집행은 명확한 증거에 의해서 하는 것 아니냐”라고 밝혔다. “법원과 검찰이 증거자료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판단을 내렸다”는 백 씨의 주장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
재조 법조계에 껄끄러울 수도 있는 이 사건에 대해 헌재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지 자못 궁금해진다.
사건일지
2002년 4월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
2003년 2월 서울동부지검 송치
2004년 6월 1심 재판부 ‘기각’ 판결
2005년 3월 항소심 재판부도 ‘기각’
2005년 4월 서울동부지검 경매 재현 통해 ‘녹음테이프 조작’ 자신
2005년 6월 1일 검찰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으로 종결
2006년 2월 헌재에 ‘불기소처분취소 헌법소원신청’ 청구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