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내가 들어올 일이 아닌데 정말 잘못된 거예요.”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흔들어댔다.
“무슨 소립니까?”
내가 물었다.
“도박판을 벌인 언니 있잖아요? 사실 그 남편이 형사예요. 그러면 안 걸리게 하는 건 거기서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난 그런 줄 알고 들어왔단 말예요. 이렇게 십자가를 지는 것도 그런 도박판에서는 언니 노릇을 제대로 하기 위해 베푸는 일이란 말예요. 금방 나갈 줄 알았는데 구치소까지 온 걸 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썅! 다 확 불어 버릴까보다.”
그녀의 독 오른 눈이 번들거렸다. 그녀가 화를 참느라고 한참 씩씩거리다가 말했다.
“변호사님, 어떻게 내일쯤 금보석은 틀림없겠죠?”
그녀가 따지듯이 물었다.
“자신 없는데요.”
내가 솔직히 대답했다. 오히려 저런 여자는 징역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어났다. 변호를 그만두어야 할 것 같았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여기 구치소로 옮겨 오려고 짐 꾸려가지고 나올 때 해결사 백 사장이 들어왔어요. 나보고는 금보석으로 나갈 거라고 그래요. 그래서 내가 그 백 사장에게 나도 참는 데 한계가 있다고 그랬어요. 금보석 이상은 못 기다리겠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떻게 변호사가 그런 말씀을 합니까?”
그녀가 화난 눈초리로 나를 쏘아 보고 있었다.
“나 변호 안 하겠습니다. 그리고 변호료도 받은 바 없습니다.”
내가 가방을 챙기면서 내뱉었다.
“예?”
그녀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마 도박조직에서 변호료를 충분히 다 지불한 줄 알았던 모양이다.
“좋아요. 그러면 돈이 얼마든지 들어도 좋아요. 먼저 쓰시면 내가 나중에 갚을 테니까 아끼지 말고 쓰세요.”
그녀가 호탕하게 말했다.
“부인! 부인이 변호사인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 것같이 저도 부인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정말 조금도 반성하는 기미가 없지 않습니까? 이쯤에서 서로 그만 봅시다.”
나는 나가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니에요. 저도 이십여 년 의상실을 했는데 사람 보는 눈은 있습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시고 도와주세요.”
그녀가 갑자기 기가 죽으면서 사정조로 변했다.
“솔직히 말해서 나라는 사람 알고 보면 순진해서 여기 들어온 거예요. 좀 더 발랑 까졌더라면 이런데 들어오지 않아요. 우리 큰아이만 아니면 나 이렇게 사정 안 해요.”
도도했던 그녀의 태도가 허물어지면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무슨 사정이 있으세요?”
내가 물었다.
“큰애가 2주 후면 대학을 졸업합니다. 정말 정성들여 키운 아들이에요. 그 애한테만은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아요. 우리 아들 졸업식에만 가게 해주면 다시 들어와 살아도 괜찮아요. 이건 정말이에요.”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인간냄새를 맡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경찰서 유치장에서 여기 구치소로 옮겨오니까 어때요?”
내가 물었다.
“경찰서 형사들은 그래도 관내라고 먹은 게 있어서 그런지 담배도 주고 곰탕도 사주고 그랬어요. 그런데 구치소에 오니까 어떻게 천대가 심한지 모르겠어요. 어제 검사한테 조사받으러 갈 때도 기왕이면 손을 앞으로 해서 묶으면 될 텐데 기어이 뒤로 비틀어 매더라니까요. 조금 전 변호사님이 오기 전에도 교도관이 호통을 치더라니까요. 나 참 더러워서. 그래도 담배나 커피는 참을 수 있어요. 그런데 구치소에 오니까 먼지 때문에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가래가 막 나와요.”
한풀 꺾인 그녀가 이제는 어린애같이 응석을 부렸다.
“먼지라니요?”
“감옥에 갇힌 사람들마다 밖에서 담요를 차입하는데 거기서 먼지가 말도 못하게 나와요. 품질이 나빠서 그런데 감옥에 들어오는 물건은 뭐든지 야로가 있나봐.”
“그 외에 다른 불편한 거는요?”
“답답해요. 정말 답답해요. 속 시원히 얘기할 사람도 없고. 구치소로 오면서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녀의 눈에 서서히 뿌연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내가 이렇게 들어오지 않았으면 오늘도 그 여자들하고 장소를 옮기면서 계속 도박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있었어요. 다만 그날이 빨리 왔을 뿐이죠.”
그녀가 도박 현장의 모습들을 솔직하게 얘기해 주었다. 도박조직이 운영하는 하우스가 서울에만 해도 지역마다 수백 곳이라는 것이다. 편의에 따라 단독주택, 아파트, 오피스텔 등 가리지 않고 도박판을 벌인다. 도박판의 대장은 하우스장이다. 그리고 연락을 맡은 전화당번, 뒷돈을 대주는 꽁지, 노름판에 출전하는 일꾼, 망을 보는 보초, 바람 잡는 바지, 상대방 속임수를 감시·방지하는 병정, 도박꾼들에게 음식과 술을 파는 바카스 등 도박판에서 뜯어먹는 사람들만도 여럿이다. 1할의 선이자를 떼는 꽁짓돈을 받아내는 해결사 역할은 하우스장과 손을 잡은 건달조직에서 맡아서 한다.
하우스장이나 돈을 꿔주는 꽁지들이 도박판을 찾아온 주부와 불륜관계를 맺기도 한다. 서로의 간통관계는 도박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덫이다. 또 이런 관계들은 가해자나 피해자가 서로 철저히 숨기기 때문에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여러 시간 도박을 하다보면 팔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다. 그럴 때면 하우스장이 박카스를 한 병씩 주었다. 이상하게도 그것만 마시면 잠도 오지 않고 머리가 물로 씻은 듯 맑아졌다. 밤샘 도박을 해도 피곤하지 않았다. 나중에야 박카스에 히로뽕을 섞은 사실을 알았다.
한편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냉혹한 차별이 도박판만큼 심한 곳도 없다. 판돈이 떨어진 주부는 하루아침에 잡심부름을 하는 치다꺼리 조로 전락된다. 도박판에서 빌린 꽁짓돈을 갚지 못할 경우 건달들은 강간하고 남편에게 이르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또 칼을 귀에 들이대고 잘라버리겠다고 겁을 주기도 한다. 심지어는 가출을 시켜 인신매매조직에 팔아넘기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들 도박단의 하우스장들은 관내 형사들과 손을 잡고 있다. 주민 신고로 경찰이 출동해도 대부분 하우스장과 협상이 이루어져 그냥 돌아간다. 심지어 노골적인 제보나 집중 단속으로 부득이 검거해서 조서를 작성할 때에도 “10원짜리 장난 화투를 친 것으로 하라”는 경찰의 ‘자상한 엄호’가 뒤따르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런 도박판에 억류된 부인에 대한 남편들의 태도도 여러 가지였다. 세 명의 여자가 구속되었으면 남편도 세 사람이 와야 맞았다. 그러나 오직 김 사장 한 사람만 부인을 위해 전전긍긍하며 혼자서 돈을 쓰고 있었다. 그가 하루는 이렇게 털어놨다.
“당연히 집사람이 밉지요. 그렇지만 이십여 년을 정붙이고 산 여잡니다. 힘든 시절 같이 울기도 여러 번 울어봤습니다. 내가 부도냈을 때 돈을 구하러 여기저기 애쓰기도 한 사람입니다. 또 공장 종업원 월급날 내가 쩔쩔 매고 있으면 집사람이 어디 가서 무슨 짓을 해서라도 급전을 구해오곤 했습니다. 힘들게 공장을 하면서 집사람의 그런 공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집사람이 줄에 묶여 형사들에게 개같이 끌려다니는 꼴을 차마 보지 못하겠어요. 차라리 내가 대신 살아줬으면 좋겠어요.”
남편인 김 사장은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하면서도 용서했다.
“다른 남편 분들에게 연락은 하셨습니까?”
“같이 구명운동 하자고 한 사람 만났습니다. 그랬더니 그 양반 하는 말이 마누라에게 압구정동 아파트 전세값이 5000만 원 올라서 그 돈을 줬고 또 골프채 사달라고 하기에 사줬는데 이번 사건이 터진 걸 보니 전부 남편한테 사기 친 돈으로 도박을 했다는 거예요. 자기는 이제 전혀 알 바도 아니고 남 창피해서 관여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음료수회사 사장인 남편이었다. 아내는 감옥에서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과시했었다. 그 사장은 변호비는 물론이고 전화 한 통도 없었다. 법정은 관대했다. 그들에게 모두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밤 11시경 청계산 기슭의 서울구치소 앞을 차가운 바람이 사정없이 휩쓸고 지나갔다. 저녁 늦게까지 여러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이따금씩 사람을 태우고 구치소의 철문 안으로 들어갔다. 구치소 앞에 작은 상자같이 지어놓은 석방자 대기실은 초라한 시골역 대합실 같았다. 그 앞에서 두툼한 코트 깃을 올린 남자가 침을 바닥에 탁 뱉으며 소리쳤다.
“오늘은 진짜 거물 도둑놈들이 많이 들어가는 날이구먼. 아까 권노갑이 들어갔지 그다음으로 홍인길이 잡혀갔다고 저녁 뉴스에 나오던데. 그 놈들 때문에 우리 여자 손님들 나오는 게 늦어지잖아 썅!”
백 사장이 그 옆에 있는 똘마니에게 중얼거렸다.
“사장님, 그래도 이렇게 뒷배를 봐줘야 끝까지 우리가 고객을 유지하고 호구 잡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똘마니가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 앞 도로에는 현정엄마의 남편인 김 사장이 구치소의 철문 쪽을 보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저녁 6시경부터 와서 기다렸는데 한보의 정태수에게 돈을 받은 거물들이 하필이면 오늘 줄줄이 구속되는 바람에 아내가 석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구치소의 철문 쪽에서 여자 두 명이 걸어 나왔다.
도도했던 노미엄마가 먼저 나왔다. 들어갈 때 입었던 밍크코트를 입고 있었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오지 않으리라고 짐작했지만 그래도 혹시 하고 남편이나 아들을 찾는 눈치였다. 그 뒤를 이어서 현정엄마가 고동색 무스탕코트를 입고 나왔다. 핼쑥한 얼굴에 푸석푸석하게 풀어진 파마머리였다.
“이리와.”
김 사장이 아내를 불렀다. 그의 손에 들린 봉지 안에는 저녁에 사둔 두부가 아직 온기를 품고 있었다.
“이거 먹어.”
김 사장이 아내에게 두부를 건넸다. 현정엄마는 남편의 눈치를 힐끗 보더니 두부 한 조각을 입에 쑤셔 넣었다. 오만했던 사장 부인의 눈길이 한없이 부러운 듯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이 여사 그동안 고생 많았수. 나요 나, 백 사장. 위로해 드리러 왔지.”
하우스장 백 사장이 허풍을 떨며 그 여자 앞으로 걸어왔다. 현정엄마의 남편 김 사장이 하우스장인 백 사장을 보며 말했다.
“우리 집사람 그동안 거래 다 해결해 줬으니 다른 할 말 없죠? 다시는 집사람한테 연락하지 마세요. 손 끊게 할 테니까. 알았소?”
김 사장이 백 사장에게 단호하게 따졌다.
“알았시다. 현정엄마는 남편한테 평생 절하며 살아도 모자라겠구먼. 형씨 우리도 본래는 그렇게 나쁜 놈 아니요. 다 살라고 하니까 그런 거지. 오늘 저기 들어가는 새끼들 봐요. 정태수한테 실컷 처먹고 자기는 깃털 정도밖에 안 된다나.”
김 사장은 그 소리를 듣는 듯 마는 듯 아내 어깨를 옆에서 잡고 구치소 추운 언덕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덕길 위에는 보석같이 반짝이는 겨울 별들이 떠 있었다.
그날 밤 석방된 사장 부인은 도박꾼 백 사장의 돈으로 사우나에서 목욕을 하고 일식집에서 실컷 먹고 밤에 개장하는 싸리섯다 판으로 다시 갔다고 전해 들었다.
(끝)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