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논의가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느낌이다. | ||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후보단일화’를 앞세운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 의원간 ‘후보단일화’가 필수조건이라며 조속한 단일화 협상을 주문하고 나섰다.
노무현 후보는 지난 3일 TV토론과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 방식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정몽준 의원측은 ‘경선 방식을 통한 후보단일화’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대신 후보간 합의를 통한 기존 후보단일화 입장을 고수했다. 대선을 불과 40여 일 앞두고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이 가시화됨으로써,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논의’는 이제 마지막 초읽기에 몰린 느낌이다.
노무현 후보 지지율이 상승세로 돌아서고, 정몽준 의원의 지지율이 하락세로 나타난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의 연쇄탈당 행렬이 이뤄졌다. 이 때문에 노무현 후보측에서는 탈당파 의원들에 대해 ‘불순한 의도를 가진 노무현 후보 흔들기’라는 시각을 갖고 있다. 김원기 고문은 지난 1일 의원들의 탈당 움직임에 대해 “철새는 때가 되면 날아가는 법”이라며, “배후세력이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될 만하면 흔들고…, 음모도 있는 것 같고…”라고 언급한 바 있다.
노 후보측은 1일 탈당한 강성구 김명섭 의원과 3일 탈당한 김윤식 이근진 의원의 경우 한나라당과 교감 속에 전격 탈당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즉, 노무현 후보 지지율에 반등 기미가 나타나자, 지지율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한나라당측에서 탈당 시기를 조정한 것 아니냐는 것.
조기 탈당한 의원들의 한나라당 입당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편, 노 후보가 ‘단일화 불가’라는 기존 입장에서 경선과 TV토론 등을 통한 검증절차를 조건으로 단일화 협상에 전향적으로 나선 이후 이뤄진 집단 탈당에 대해서는 ‘노 후보에 비토입장을 갖고 있는 인사들이 2004년 총선을 겨냥, 활로모색 차원에서 탈당한 것 아니냐’는 시각을 갖고 있다. 특히, 1차 집단 탈당에 이어, 2차, 3차 추가 탈당이 예고되고 있다는 점에서 모종의 시나리오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흘러나오고 있다.
이 같은 분석은 정균환 총무와 이인제 의원 등 반노, 비노진영 입장을 고수한 반대파에서 대대적으로 ‘노무현 고사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시각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탈당파 의원들의 입장은 다르다. 김원길 의원 등 지난 4일 탈당한 민주당 의원들은 탈당 선언문에서 “공정한 경선을 위한 객관적인 터전을 마련하고 준비하기 위해 탈당한다”고 밝혔다.
▲ ‘후보 단일화’ 성사 여부는 이제 공이 정몽준 의 원에게 넘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
‘노무현 흔들기’라는 시각과 ‘살신성인의 자세’라는 탈당파 의원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노무현 흔들기’라는 시각은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이 최근 지지율 반등 기미를 보이던 노무현 후보의 상승세를 주춤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그러나 탈당파 의원측에서는 “지지율이 엇비슷해졌기 때문에 단일화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며 “지지율 격차가 컸을 때에는 일방적 양보로 해석하지 않았느냐”며 “(지지율이 비슷해진) 지금이 누가 더 (이회창 후보를 꺾을) 경쟁력이 있는지를 따져볼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탈당파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라는 대전제에 의견일치를 보이고 있는 동시에, 상당수 의원들은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를 주창하고 있다. 이 같은 점에서 탈당파 의원들이 ‘공정한 게임의 룰’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당에서 탈당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즉, 탈당파 의원들이 민주당에 그대로 남아 경선을 통한 후보단일화를 추진하는 것은, 세가 약한 정몽준 의원측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의원들이 민주당을 탈당, 중간지대로 나옴으로써, 정 의원측에 ‘해볼 만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후보단일화를 위한 경선 방식으로
▲전국을 몇 개의 권역으로 나눠 TV토론을 실시하고 ▲무작위 추출방식에 의한 선거인단 선출 ▲전자투표를 통한 후보 선출 등 경선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것도 정몽준 의원측을 배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원들을 대상으로 경선을 실시하게 되면 보다 많은 지지당원을 확보하고 있는 노무현 후보에 유리해질 것을 감안, 무작위 추출방식에 의한 선거인단 선출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몇 가지 점 때문에 민주당 의원들의 탈당 이후, ‘후보단일화’ 성사 여부는 정몽준 의원에게 공이 넘어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노무현 후보 선출 이후 끝없이 반노, 비노, 친노 등으로 나뉘어 분열적 행태를 반복해온 민주당은 이제 분당이라는 극단적 상황에 직면했다. 그러나 아직 ‘후보 단일화’라는 대통합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노무현 후보든, 정몽준 의원이든, 민주당을 탈당한 후단협(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 소속 의원들이든 아직까지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집권 저지’에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의원들의 집단 탈당에도 불구, 노무현-정몽준 양자간 후보단일화 협상이 불발로 끝난 상태에서 대선전에 돌입하게 되면 대선은 싱거운 게임으로 끝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독주하는 1강 2중의 현재 대선구도가 끝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11월 현재, 당선 가능성을 묻는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는 70% 이상의 여론을 등에 업고 있다. 또, ‘후보단일화’가 불발로 끝나고 민주당을 탈당한 의원 가운데 일부 인사가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경우에도 대선은 더욱 싱겁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또다른 경우의 수는 5일 공식 창당 절차를 밟는 정몽준 의원이 창당 이후에도 현재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 여부가 될 전망이다.
월드컵 이후 줄곧 30%대 지지율을 기록하던 정몽준 의원이 최근 들어 20%대로 지지율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또, 통합신당 후보를 가정한 여론조사에서도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뒤지는 조사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점도 정 의원에게는 부담이 될 전망이다. 대선 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에 맞설 노무현-정몽준 후보간 단일화 논의는 이제 마지막 선택만을 남겨둔 채 초읽기에 돌입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