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극에 달한 가운데 검찰이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영장을 다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영수 중수부장, 채동욱 수사기획관, 정상명 검찰총장, 김태현 감찰부장, 임승관 대검차장. 연합뉴스 | ||
외환은행 헐값 매각 및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검찰의 체포·구속 영장 청구를 법원이 연이어 기각하면서 갈등의 수위가 최고조에 이른 것.
예상대로 양측의 신경전이 불을 뿜었다. 조직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검 중수부에서 청구한 영장이 연이어 기각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검찰은 이례적으로 적극적인 공세를 취했다.
지난 7일에는 ‘토씨’ 하나 안 고친 영장을 재청구하는 초강수를 두며 영장 청구 대상인 론스타 임원진에 대해선 ‘자진해서 검찰에 출두하라’는 최후통첩까지 보냈다. 그간의 잇따른 법조 갈등 국면에도 말을 아끼던 검찰 간부들까지 감정 섞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토해냈다.
법원의 대응도 예사롭지 않았다. 검찰의 행보에 산발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이 아니라 아예 검찰의 사고를 싹 바꿔놔야 한다는 식으로 강하게 맞섰다. 일부 법원 판사들 입에서는 “검찰은 법률 공부를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경 발언이 나왔을 정도다.
법원과 검찰 사이에서 이처럼 영장 갈등이 표면화되기까지 과연 어떠한 일들이 있었던 걸까. 그 뒷얘기들을 정리해봤다.
법-검 간에 첨예한 영장 갈등이 불거지면서 법조계 주변에서는 검찰의 영장 청구 강행을 놓고 여러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중엔 검찰이 애당초 론스타 임원진에 대한 구속이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음에도 론스타 임원 세 명에 대해 영장을 청구한 것 아니냐는 논란도 포함돼 있었다.
이와 관련해 검찰 내부에 정통한 법조인들은 대체로 검찰이 사실상 첫 영장 청구 때부터 자신감을 크게 갖진 못했던 것 같다는 시각이다.
검찰로서야 영장이 기각될 줄 예상하고 영장 청구를 했다고 하면 당연히 펄쩍 뛸 노릇. 실제 검찰은 “론스타 임원들의 영장이 기각됐을 때 수사 검사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을 느꼈다”라며 영장 발부에 강한 확신이 있었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하지만 실제 검찰 내부에서조차 엘리스 쇼트 부회장 등 론스타 본사 임원진 3명에 대한 영장 발부에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론스타 임원의 첫 영장 발부를 심사한 영장전담판사가 이전부터 소위 ‘검찰에는 유난히 짜다’는 평가를 받아온 민병훈 부장판사라는 점에서 영장 발부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분위기가 영장 청구 전부터 형성됐다는 전언이다.
이러자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영장 청구 전에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론스타 행위의 부당성을 알리고,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조성을 통해 법원을 압박할 것이라는 관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영장을 청구한 당일 오전 대검 관계자가 “체포 영장이 발부되면 언론 덕”이라는 농담을 던지면서 이 같은 관측은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고 한다.
특히 검찰 쪽에 민 부장판사가 법원도서관까지 찾아 론스타 관련 사건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있다는 소문이 전해지면서 영장 발부를 자신하던 일부 검찰 관계자들을 긴장케 했다는 후문이다.
검찰 주변 관계자들에 따르면 검찰은 엘리스 쇼트 부회장 등 론스타 본사 임원진 3명의 경우와는 달리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에 대해서는 영장 발부가 확실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전 은행장은 국내에 남아 있는 관련자들과 접촉이 쉬웠고, 그들이 대부분 이 전 행장의 부하직원이라는 점에서 법원이 증거인멸 가능성을 인정할 것이라는 예상을 했던 셈.
법원 내에서도 관련자 전원에 대한 영장 기각은 무리가 있다는 측면에서 이 전 은행장의 영장은 발부 가능성이 높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검찰은 영장 심사 결과에 대해 나름대로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지만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첫 영장이 기각된 당일(11월 2일)에는 적잖은 충격파가 검찰 내부로 전해졌다고 한다.
영장 기각 직후 곧바로 새벽 0시에 검찰총장 주재로 긴급 간부 회의가 열렸는데 대부분 간부들 입에서 법원과 검찰의 견해차가 너무 크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회의를 마치고 나온 뒤 기자들과의 브리핑에서 “기각 이유가 뭐였나”고 물은 서울지검 고위관계자는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어서”라는 기자들의 설명을 듣고 “남이 장사하는데 소금 정도가 아니라 인분을 들이 부은 격이네. 아이고, 참 법원이 예전과 달라졌다”고 법원 결정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고 한다.
또한 영장 심사 중 “상법책을 보라”고 검찰에 고했던 민 부장판사 발언이 검찰 내부에 전해지면서 여기저기서 격한 발언이 튀어나왔다는 후문.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도 민 판사 발언을 전해듣고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아예 논평할 가치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론스타 임원에 대한 영장이 연이어 기각되면서 검찰의 영장 청구 관행을 지적하는 법원 판사들의 목소리 또한 거세졌다는 게 법원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서도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국민들에게서 ‘원칙’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잖게 흘러나왔다고 한다. 외환은행 수사가 흐지부지될 경우 법원이 내세울 명분이 없다는 반응 역시 서서히 확산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현지의 론스타 임원진에 대해 여섯 번째 출석 요구서를 보내는 한편 다시 세 번째 영장 청구를 검토하고 있는 검찰. 과연 법원은 향후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까.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
이진설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