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얼마 전 약정만기일 3년이 경과된 무기명 증권금융채권 41억 원어치가 한꺼번에 현금화돼 재용 씨와 그 아들들의 계좌에 입금됐다고 한다. 이를 해당은행에서 재정경제부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통보했고 FIU가 검찰 측에 조사를 의뢰해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사부가 채권 출처에 대한 본격조사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들은 지난 1995년 전 씨 비자금 수사에서 드러나지 않은 자금 중 일부일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다. 한 검찰 관계자는 “비자금 중 일부를 시중에 풀어서 수사당국이 이를 감지하는가를 살펴본 뒤 안전하다 싶으면 남은 돈을 더 풀어 현금화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고 밝힌다.
이 같은 추측이 사실이라면 전 씨가 천문학적인 금액을 무기명·비실명 채권으로 관리 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검찰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에 FIU가 발견한 채권은 무기명·비실명을 사용하는 일종의 ‘묻지마 채권’으로 약정만기 이후 현금화되기 전엔 구입자 신원과 자금출처 파악이 쉽지 않다고 한다. 이번 조사를 계기로 전 씨가 은닉 비자금을 더욱 꼭꼭 숨겨놓을 수도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사당국이 아직 ‘41억 원이 전 씨에게서 흘러간 돈’이란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공론화한 것을 의아하게 여기는 시선이 적지 않다.
<일요신문>이 전두환 씨 본인 명의 서초동 땅 발견을 보도한 이후 이 땅이 환수되면서 전 씨 추징금에 대한 공소시효가 다시 3년 늘어 2009년 6월까지 연장된 상태다. 추징금 집행은 해당 재산에 대한 당국의 조치가 없이 3년이 지나면 공소시효 만료로 법적효력이 소멸되고 만다. 검찰은 노태우 전 대통령 재산을 찾아놓은 상태에서도 환수를 미루고 있다. 3년 공소시효의 안정적 연장을 위해 순차적으로 환수 집행을 하려는 것이다. 검찰이 전 씨 비자금을 계속해서 찾아낸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 건에 대해 ‘좀 더 시간을 둔 후 공개조사에 나설 수도 있지 않았는가’란 시각도 제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검찰이 전두환 씨 부자 수사를 계기로 자존심 회복에 나서려는 것’이란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론스타 관련 법원의 영장이 기각되고 이건희 회장 소환 시점이 늦춰지는 것 등으로 인해 검찰이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 분석이 거론된 바 있다. 전 씨 미추징금에 대한 공소시효를 신경 쓰기에 앞서 일단 대다수 국민이 지지를 보내는 전 씨 비자금 수사에 대한 공적을 올려 검찰의 위상을 올려놓겠다는 의도로 풀이되는 것이다.
일각에선 전 씨 부자에 대한 괘씸죄가 적용됐다는 이야기도 한다. 전 씨 부자는 서대문세무서를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증여세 부과 취소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재용 씨는 지난 2004년 외조부 이규동 씨로부터 167억 원어치 국민주택채권을 받은 후 71억여 원의 증여세를 포탈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전 씨 부자는 지난 9월 “대법원 확정판결 전인 2심 판결을 근거로 증여세를 부과한 것은 부당하다”며 소송을 낸 상태며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전 씨에 대한 민사집행법 위반 소송이 최근 무죄판결 난 점 또한 검찰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전 씨는 지난 2003년 법정진술 과정에서 “전 재산이 29만원뿐”이라 밝힌 것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들로부터 “허위 재산 목록을 제출해 민사집행법을 위반했다”며 고발당했지만 공소시효 만료로 무죄판결을 받은 바 있다. 이런 정황 탓에 지금 검찰에겐 전 씨 관련 사안에선 노태우 씨 경우처럼 공소시효를 고려할 만한 심적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한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