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 평택경찰서 유치장 담당 조 순경이 입회해서 기록한 문서가 검찰로 들어갔다. 그게 수사기록 속에 끼어 있었다. 순경이 간단히 대화를 요약한 내용은 이랬다.
“어떻게 된 거야?”
장영목이 유치장에서 동생 영두에게 묻고 있었다.
“어떻게 그렇게 됐어….”
장영두는 범죄의 구체적인 내용을 형에게 말하지 않았다.
“옆에 외국인도 있었다면서?”
형 장영목은 이미 방송을 보고 들어온 것 같았다.
“어.”
장영두가 어정쩡하게 대답한 걸 조 순경은 기록했다.
“너는 그렇게 살인한 게 아니고 현장에 있기만 했지?”
장영목이 동생에게 말했다. 형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배어 있는 말이었다. 그 말에 장영두가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야, 거의 내가 주도해서 그런 거야. 그리고 내가 자수해서 있는 사실 다 말했고.”
스스로 주도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았다. 정직성과 함께 잘못을 인정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어야 했다.
“거짓말 마라! 너 카드빚이 많아서 일부러 그렇게 말하고 거기 들어가 있는 거지?”
형 장영목은 동생의 살인죄를 부인하고 싶어 했다.
“아니야, 내가 바보야? 다 내가 주도해서 한 게 사실이야. 엄마 같이 안 왔어?”
장영두가 사실을 인정하면서 형에게 물었다.
“같이 오지 않았어. 엄마한테 아직 말하지 않았어.”
부모가 속을 썩을까봐 안타까워하는 자식들의 마음 같았다.
“그래? 어쩔 수 없지.”
장영두의 말이었다.
“쓰던 차는 어떻게 할까?”
형 장영목이 동생에게 물었다.
“명의이전해서 사용하든가 아니면 팔아. 그리고 박 사장한테 기계 4000만 원에 팔 수 있으면 팔아. 다 정리해.”
장영두는 이제 오랜 감옥생활을 예감하는 것 같았다.
“형도 더 열심히 목회할게.”
장영목이 말하고 있었다. 그가 우는 것 같았다. 그걸 보던 동생 장영두가 형을 위로하면서 말하는 내용이 나왔다.
“울지 마. 나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했는데 미안해. 마음 다져먹고 열심히 살게. 쇠창살 안에 있으니까 보고 싶은 사람이 많아.”
동생 장영두는 잠시 있다가 이런 말을 하고 있었다.
“걱정 마. 나도 반성 많이 했고 자수했어. 그게 참작이 될 거야.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으면 국선변호인이 선임되겠지. 주는 대로 징역을 살아야지 10년이고 20년이고 괜찮아.”
장영두의 말이었다.
“어머니한테는 어떻게 해?”
형인 장영목이 물었다.
“말해야겠지. 방송에도 나갔으니까 알게 될 거야. 그리고 나는 옆에만 서 있었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그렇게만 말해줘.”
“그러면 방글라데시인 그쪽이 그런 살인을 한 거 아니야?”
“내가 거기 있었고 방글라데시인이 다른 말을 하니까 어쩔 수 없어. 나는 내가 아는 대로만 말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방글라데시인이 거기 왜 갔어?”
“내가 예배 끝나고 전지를 하려고 데리고 갔는데 노인네가 욕을 해서 일이 벌어졌어.”
“가운데서 말리지 그랬어?”
“말릴 수가 없었어. 내가 말리게 되면 그 노인이 나를 고소하고 난리가 났을 거야. 그렇게만 알고 있으면 돼. 내가 그 애를 데리고 간 게 잘못이고 내가 같이 있으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잘못이고 내가 적극적으로 막지 못한 것도 그러니까. 그렇게만 엄마한테 말해줘.”
“알았어.”
“엄마한테 미안하지. 엄마가 다른 사람들에게 살인자 아들을 가졌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게. 어머니가 그런 걸 싫어하잖아? 그게 정말 미안해.”
“그래, 알았어.”
장영목은 다음날 오후 3시 30분에 다시 유치장으로 동생 영두를 찾아갔다.
“잠은 잤어?”
“그냥….”
“엄마한테는 아직 말 안 했어. 내가 사십 평생 살면서 이런 말 안 했지만 동생아 사랑한다. 그리고 너 나오면 무슨 자리라도 마련해 줄게. 군대 있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하기로는 5년에서 7년 살면 될 것 같아. 전과 없고 자수했고 불쌍하게 보이면….”
“변호사는 어떻게 해야지?”
장영목이 물었다.
“그런 건 형이 알아서 한다.”
“나 때문에 여러 사람 부담되게는 하고 싶지 않아.”
자연스럽게 말을 주고받던 형제가 어느 순간 갑자기 묘한 뉘앙스가 담긴 말을 한 것으로 바뀌고 있었다. 3월 21일 아침 9시 13분. 유치장 면회담당 손 경장이 장영두 형제의 대화내용을 기록한 게 검찰의 안테나에 걸려들었다. 그 핵심내용은 이랬다. 형인 장영목이 동생에게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네가 거기 영감 배 밭을 빌려서 있었고.”
“덮어.”
장영두가 형의 말을 듣자마자 내뱉은 것으로 되어 있었다.
“너한테 불리해. 네가 죽이면 얼마를 준다고 돼 있어.”
청부살인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 덮어놔.”
장영두가 형의 입을 막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만용을 부리지 마. 혹시 통역이 박 사장과 연결돼 있는 게 아니야? 나는 통역도 신뢰하지 못하겠어. 통역도 그 나라 사람이고 네가 살인을 계획했다는 것하고 우발적인 것하고는 천지차이야.”
장영목이 말하고 있었다.
“농담으로라도 그렇게 한 적이 있는지 아닌지 그게 문제야. 언제 검사한테 갈는지 모르겠어.”
장영두가 걱정을 하는 말이었다.
“이래도 당하고 저래도 당한다면 진실대로 밀고 나가라고. 네가 살길을 찾아야지.”
장영목의 말이었다. 검찰은 형이 청부살인을 묻는 말에 장영두가 덮어놓으라고 말한 걸 결정적인 단서로 판단했다. 형인 장영목이 뒤에 있는 누군가와 밀약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박 사장이라는 인물이 중간에 튀어나왔다. 장영목의 집과 교회를 압수수색하고 관련된 박 사장이라는 인물을 수사해 갔었다. 검사는 장영목에게 배후의 누군가와 맺은 비밀계약서를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살인청부의 대가를 약속한 증서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다.
수사기관은 살인청부사건이란 인식을 화석같이 굳히고 있었다. 그 의심에 부합되는 점도 많았다. 장영두는 이미 자신의 형량까지 예측하면서 10년 이상이 되면 변호사를 사라고 형에게 지시했다. 자수가 어떤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도 계산에 집어넣는 말을 하고 있었다.
그 무렵 내게 세 장의 편지가 날아왔다. 삐뚤빼뚤한 큰 글씨가 흰 편지지 두 장에 기하학적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맞춤법도 거의 틀린 것들이었다. 배우지 못한 장영두의 늙은 엄마가 변호사인 내게 보내온 편지였다. 원형 비슷하게 그대로 옮겨보면 이랬다.
‘어렵고 두서엄는 필을 올려 죄송스럽읍니다. 저는 영두 어밉니다. 변호사님 안녕하서요. 저 자식 일 때무네 수고 하시는대 차자가 뱁고 인사를 못드러 대단히 죄송스럽읍니다.
변호사님이 제 자식 영두를 위하여 애쓰시고 수고하시는 것 참 감사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해 인 줄 믿습니다. 변호사님, 우리 영두를 꼭 믿어 주서요. 영두는 어려서나 지금까지 한번도 친구들 하고 다투는 거 한번도 못봤고 학교생활에도 선생님 한태 영두만 갇으면 선생노릇 할만하다 그런 말씀을 듯고 교회서도 그런 칭찬을 받고 가정생활에서도 어럽고 힘드는 일들이 많지만 잘 참는 것 볼 때 자식이지만 미안하고 참 감걱 할 때가 만치요.
변호사님, 영두가 성걱이 내성적이기도 함니다. 어떤때는 저 하고 십은 말이 있지만 상대반에 마음이 상할가 해서 못할 때가 인는 것 가타요. 그러나 상대반을 어럽게 하거나 상하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두를 만나면 편안해서 조아하지요. 변호사님 영두에 말을 꼭 믿어주서요. 영두는 아무리 힘드러도 어러워도 엄마 아버지 앞에서 불평업고 힘들면 농사 안한다고 하겠지 하고 가보면 그래도 말 업시 참고 하지요. 그래서 결혼도 못하고 너무 안타가워 힘드는대 농사하지 말고 직장가라 해도 엄마 건강도 안조코 아버지 연새도 만은대 내가 가면 어떠게 사라 엄마 걱정마 하면서 해슴니다. 우리가정에 이런 고난 역겅이 차자 와군요. 변호사님 꼭 해아려 주서요. 영두에미’
다음은 장영두 아버지의 편지였다. 그 내용은 이랬다.
‘변호사님께 부끄러운 마음으로 서신 한 장 올립니다. 저는 80이 가까이 되어도 평생을 농사만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갑니다. 영두가 초등학교 시절인데 길거리에서 3000원인가 주워가지고 집에 와서 어떻게 할까요 묻기에 가지고 있다가 주인이 나서면 주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에 돈 주인은 알 수 없고 학급비 못 내서 친구가 선생님으로부터 재촉 받는 거 보고 그 돈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때 비 오는 날 어떤 할머니가 보따리를 이고 차에 내리는데 우산도 없이 가는 걸 보고 영두가 우산을 주고 비를 흠뻑 맞고 온 적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배려할 줄 아는 심성이 후덕한 아이였습니다. 사귀는 친구들도 전부 성실합니다.
영두가 과수원에서 일을 하면 친구들이 찾아와서 하루 종일 일을 같이하고 돌아갑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경찰서에서 진술이 잘못된 거 같습니다. 밤이 새도록 한 사람을 집중해서 경찰관이 네가 죽였지, 시켰지 하면 경찰서란 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영두가 마음이 약하고 겁에 질려서 진술이 빗나간 것이 틀림없는 줄 압니다.
통역을 한 사람이 마지막에 선고할 때 법정에서 그동안 거짓통역을 했다고 말하는 걸 봤습니다. 그런데도 판사는 뭘 잘못했는지 밝히지도 않고 오히려 그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라는 당부를 하고 보내니 이것이 대한민국의 재판의 행태입니까. 통역하는 사람이 검사 판사 앞에서 통역을 거짓으로 해도 한마디의 말도 들을 줄 모르는 허수아비 검·판사가 무슨 재판을 한다고 그 자리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는지 한심스럽습니다. 변호사님, 저의 의견을 참작하셔서 잘 해 주십시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