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995년 외화밀반출혐의로 구속되는 김흥주 씨. 연합뉴스 | ||
그중에서도 특히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것은 전북의 유명 금고인 J 금고가 ‘김흥주 게이트’에서 또 다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J 금고는 지난 2003년 윤창렬 씨의 굿모닝시티 불법 대출 건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바 있다. 당시 국회에서는 “이 금고의 실소유주가 S 그룹의 P 회장이 아니냐”는 논란으로 뜨거운 공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김 씨는 광주의 골드상호신용금고(골드금고)를 인수하기 위해 2002년 말 J 금고에서 약 20억 원에 이르는 돈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대출은 거의 불법성이 짙은 것으로 알려졌다. J 금고의 백 아무개 전 대표는 “‘김흥주 게이트’는 지난 DJ 정권에서 기승을 부린 범죄 브로커들의 ‘금고 사유화’ 범죄의 전형적인 행태”라고 주장했다.
지난 8일 검찰은 2001년 초 김흥주 씨에게서 돈을 받고 골드금고 인수 작업을 도와준 혐의 등으로 김중회 금감원 부원장과 신상식 전 금감원 광주지원장을 구속했다. 또한 당시 김 씨를 김 부원장에게 소개해줬던 이근영 전 금감원장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마무리했다.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해야 할 금감원이 오히려 일부 부도덕한 금융기관의 불법 행태를 돕거나 방조해 온 점이 실제 드러난 셈이다.
김 씨가 J 금고와 연관이 된 것은 2002년 말. 당시 김 씨는 광주의 골드금고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사실 골드금고는 2001년 초 이용호 게이트의 장본인 이 씨가 먼저 100억 원에 인수 계약을 맺고 30억 원을 계약금으로 먼저 지불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후 이 씨가 중도금을 제때 내지 못하자 110억 원을 제시하며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이가 바로 김 씨였다. 이 과정에서 김 부원장이 금감원 내부 자료를 김 씨에게 건네는 등의 도움을 준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밝혀졌다.
당시 10억 원의 계약금 지불 이후 추가 자금 마련에 고심하던 김 씨는 J 금고의 돈을 노렸다. 그리고 이 과정에 도움을 준 이가 바로 신 지원장과 벤처기업 A 사의 대표였던 노 아무개 씨다. 노 씨는 2001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진승현 게이트’ 때 등장한 인물이다. 당시 그가 회장으로 있던 D 사는 진 씨의 비자금 창구로 지목받았었다.
김 씨는 노 씨가 대표로 있던 A 사로부터 20억 원짜리 융통어음을 얻어 이를 현금화하고자 했다. 융통어음은 상거래를 수반하지 않고 순수하게 자금 조달 목적으로 기업체에서 발행하는 어음. 상품을 사고 팔 때 발행되는 진성어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일반 금융기관에서 취급하는 어음할인이나 어음대출 등은 모두 진성어음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인맥인 ‘형제모임’의 신 씨에게 부탁했고, 당시 호남 지역의 금융기관 관리 감독의 총책이었던 신 씨는 J 금고에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J 금고는 담보 능력이 전혀 없는 융통어음만으로 20억 원을 사실상 불법 대출해준 셈이다. 특히 어음 발행사인 A 사는 2003년 4월 급격한 재무구조 악화로 코스닥에서 퇴출당하기도 했다.
김 씨의 불법 대출로 다시 한번 의혹의 전면에 등장한 J 금고의 이해할 수 없는 불법 대출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표적인 예가 굿모닝시티 200억 원 불법 대출이다. 김 씨와 거의 같은 시기에 윤 씨 또한 J 금고로부터 여신한도액을 훨씬 초과한 불법 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 도움을 준 박금성 씨는 현재 알선수재 혐의로 구속 중이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 씨와 윤 씨와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얘기도 떠돌고 있다. 거기에도 역시 연결고리로 노 씨와 J 금고가 있다. 김 씨에게 융통어음을 발행했던 노 씨가 회장으로 있던 D 사는 2002년 8월 최대주주가 노 씨에서 기업구조조정전문회사인 또 다른 A 사로 넘어가는데 이 A 사가 사실상 J 금고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회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놓고 전북 일각에서는 “서울에서는 ‘김흥주 게이트’, 이곳 지역에서는 ‘J 금고 게이트’”라는 말도 회자될 정도라고 한다. 2002년 8월 J 금고의 인수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빚어지던 과정에서 결국 대표직을 물러났던 백 아무개 씨는 “무엇보다 금융권 부정을 관리 감독해야 할 금감원 간부들의 부도덕한 행태가 오늘의 각종 게이트를 낳은 주범”이라고 맹비난했다. 다음은 백 씨와의 일문일답이다.
▲김 씨는 기억에 없다. 그는 호남 지역 사람도 아니었다. 신 씨는 잘 안다. 그는 당시 호남 지역의 금융계를 총괄 관리 감독하는 금감원 광주지원장이었고 우리 J 금고의 아무개 이사와도 친분이 있는 관계이고 해서 그 소개로 당시 두어 차례에 걸쳐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백 전 대표가 퇴임한 직후인 2002년 말에 김 씨가 J 금고로부터 20억 원의 대출을 받았는데.
▲그 내용은 내가 안다. 퇴임 직후였지만 당시 J 금고의 불법 대출이 만연하는 것을 우려하던 내부 직원들이 내게 많은 고민을 토로했기 때문이다. 코스닥 퇴출 위기에 몰렸던 부실기업의 ‘융통어음’으로 담보도 없이 20억 원을 대출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진성어음이면 몰라도 융통어음으로 대출을 해주는 금융기관이 어디 있나. 엄연한 불법 대출이자 특혜 대출이다. 당시에 분명히 뭔가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보니 그 ‘손’이 신 씨였다. 그는 지방의 금고 하나쯤은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금감원의 광주지원장이었다.
―당시 백 전 대표가 J 금고의 불법 대출에 대해서 금감원에 고발한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2003년 6월 굿모닝시티 사건이 터지기 직전인 2003년 초 내가 J 금고의 불법 및 부정 대출 사례에 대해서 금감원에 자료들을 모아 제보했다. 당시 내가 파악한 것만 굿모닝시티 건 외에도 8건에 걸쳐 무려 426억 9000만여 원의 불법대출이 이뤄졌음을 지적했다. 당시 금감원의 감사팀장인 한 아무개 씨에게 이 자료를 팩스로 건넸다. 그런데 조사가 유야무야됐다.
―굿모닝시티 사건이 터지면서 백 전 대표의 고발이 사실로 드러났을 텐데.
▲그래서 1년 뒤인 2004년 초에 금감원에서 재감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서 명백한 불법 및 부정 대출 사례가 드러났으나 J 금고 관계자들은 대부분 벌금형이나 기소유예의 가벼운 징계만 받았을 뿐이다. 놀랍게도 당시 금감원 고위 관계자가 내가 보낸 J 금고의 불법 대출 사례 등 고발 자료들을 도리어 J 금고 측에 고스란히 건넨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김중회 부원장이 김흥주 씨에게 골드금고와 관련된 금감원 내부자료를 건넨 것과 똑같은 행태를 당시에도 보인 셈이다.
―어떻게 그런 사실을 확인했나.
▲2005년 3월경 내 고발 건으로 당시 전북지방경찰청에서 J 금고의 김 아무개 대표와 내가 대질신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김 씨가 갖고 나온 서류 뭉치 속에 내가 직접 육필로 써서 금감원에 팩스로 보낸 J 금고의 내부 비리 자료 문건이 있는 것이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깜짝 놀랐다. 그래서 내 자료가 왜 당신 손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당시 금감원 감사팀에서 우리 금고로 감사를 나왔다가 미처 챙겨가지 못하고 흘리고 간 것을 우연히 주웠다’고 변명하더라.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내용은 당시 경찰서에 확인해보면 모두 알 수 있다.
―김흥주 게이트도 그렇고, DJ 정권 시절 연관된 모든 게이트에 금고가 다 관련되어 있는데(실제 정현준 게이트는 동방금고, 진승현 게이트는 열린금고, 이용호 게이트는 골드금고, 윤창렬 게이트는 J 금고, 김흥주 게이트는 골드금고와 J 금고 등이 연루되어 있다).
▲사기꾼 같은 자들이 금고를 통째로 삼켜서 불법대출을 마구 일삼고 결국 금고의 부도를 초래하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계속되고 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이를 관리·감독해야 할 금감원이 더 나쁘다. 결국 사기꾼들과 한통속이 되어서 이런 파국을 초래하고 말았다. 골드금고의 경우는 그나마 노조가 강력하게 김 씨를 견제한 탓에 더 큰 불행은 막은 셈이다. 하지만 J 금고는 그렇지 못했다. 오늘날 모든 게이트마다 단골로 J 금고가 등장하는 현실이 정말 가슴 아프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