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드려도 됩니까?”
“하시죠.”
재판장이 선선히 허락했다.
“지난 기일에 랭가가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강도하러 들어간 게 아닌데 공소장이 잘못 적혔다는 겁니다.”
장영두나 랭가나 모두 강도는 부인했다. 뭐든지 물건을 가져나와야 강도가 되는데 그게 없었다. 재판장이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장영두나 랭가 본인이 재판장에 대해 할 말은 다했다. 검찰은 수사기록에 나온 랭가의 진술을 담은 조서들을 증거로 제출한 바 있었다.
“변호인 측 증거신청하시죠.”
재판장은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이상했다. 청부살인의 심증을 가지고 있으면 검사가 살인을 교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들을 집중적으로 조사해야 했다. 그리고 그 조서들을 수사기록에 증거로 함께 묶어두었어야 했다. 장영두도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검사는 죽은 영감의 아들을 불러 조사하지 않았다. 청부살인이라고 하면서 의심 가는 아들들에 대해 전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은 것이다. 자백할 것 같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검사는 법정에 죽은 영감의 아들을 증인으로 불러내지도 않았다. 청부살인의 의문점은 원인도 밝히지 못한 채 그냥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검사가 하지 않으면 나라도 끝까지 진실을 추궁하고 싶었다.
“죽은 영감님의 아들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내가 일어서서 말했다.
“그들이 살인청부를 했더라도 설사 자백을 하겠습니까?”
재판장이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시간낭비라는 얘기였다. 나는 고집을 부렸다.
“물론 자백은 안 하겠지만 끝까지 추궁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그 과정 자체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법정에서 날카로운 질문과 답변을 하는 과정에서 행동이나 태도가 뭔가 암시할 수도 있었다. 또 당황한 표정과 모순된 말은 범행의 이면을 알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진실은 입이 아니라 그런 배경에 더 많이 묻어 있곤 했다. 재판장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이윽고 이렇게 말했다.
“그러시죠. 그 대신 아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증인으로 채택하겠습니다. 큰아들을 원하십니까, 둘째아들을 원하십니까?”
나는 둘 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재판장이 바뀌면서 한정된 시간이 많이 흘러가 버렸다. 재판장의 말은 아들 둘 중 살인교사를 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사람을 골라 증언대에 세우라는 의미 같았다. 나는 순간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 결국 유산을 상속받은 건 둘째아들이었다. 그는 경찰에 처음 갔을 때부터 청부살인이라고 단정하면서 은밀히 형을 범인으로 지목했었다. 그리고는 탄원서까지 올려 살인청부를 한 범인인 형을 잡아달라고 했다. 그는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고 쓰고 있었다. 그는 뭔가 알고 있을 것 같았다.
“둘째아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그러시죠.”
재판장이 허락했다. 또 다른 기억이 떠올랐다. 영감이 죽고 그 마을에 나타난 건 둘째아들이었다. 죽은 영감의 땅에서 지금도 농사짓는 마을 사람은 많이 배운 둘째아들이 더 잔인하더라는 말을 내게 했었다. 끝까지 싸우고 싶었다.
재판이 끝나고 법원을 빠져나올 때였다. 앞에 방글라데시인 통역이 걸어가고 있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푸른 기운이 섞인 회색 양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랭가와 가장 많은 말을 했다. 랭가의 내면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법정은 사실만 나오지 내면의 의식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마음이 행동을 지배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논리와는 거리가 있곤 했다. 그걸 알고 싶었다.
“통역인이시죠?”
내가 옆으로 다가가서 말을 걸었다. 그가 얼굴을 돌려서 나를 보면서 대답했다.
“그래요. 방글라데시에서 한국에 왔어요. 법적으로 귀화를 해서 한국이름은 김민호라고 합니다.”
아직 삼십대 정도의 나이 같았다. 오뚝한 콧날을 가진 방글라데시인이었다.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지금 한국에서 어떤 일을 하세요?”
내가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한국에서 전자제품을 사서 방글라데시에 수출하고 있어요.”
그가 나를 살피면서 조금씩 경계가 풀어지는 눈치였다.
“구치소에 가서 랭가를 자주 만나 봤어요? 같은 나라 사람이니까 도와줘야 하잖아요?”
“제가 무역을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랭가를 면회 가지 않았어요. 랭가는 나보고 자기 아빠 엄마에게 연락을 해 달라고 그래요. 그리고 그 죽은 할아버지가 자꾸만 꿈에 나타난대요.”
뭔가 그는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차 한 잔 같이 하지 않을래요?”
내가 그에게 말했다.
“그러시죠.”
그가 허락했다. 장영목이 그에게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통역을 하는 그는 펄쩍뛰면서 법원에 신고한 일도 있었다. 변호사인 내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우리는 법원 정문 앞 오층 빌딩의 지하다방에 마주 앉았다. 그가 자연스럽게 먼저 상황을 말했다.
“경찰에서 통역을 할 때 제가 랭가에게 말했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사실대로 말하고 빨리 나가는 방향으로 하라고요. 제가 생각할 때 돈을 받지 않고 일했다는 거 말도 안 된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랭가는 정말 장영두를 믿고 했는데 이렇게 됐다는 거예요.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할아버지를 죽이지 않을 거면 뭣 하러 그 집에 갔겠느냐는 거죠. 랭가 말이 돈만 받았다면 시키는 대로 입을 닫고 있었을 거래요. 그런데 돈을 안 주니까 지금 다 까발리는 거랍니다.”
나는 귀가 번쩍 띄었다. 재판부에서는 랭가의 청부살인이라는 자백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불리한데도 굳이 그렇게 진술을 하는 걸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이유가 수사기록의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논리와 명분을 따지다 보면 통역이 해준 진짜 이유는 나올 수 없었다. 나는 귀중한 보물을 얻었다. 랭가는 청부살인을 등뼈같이, 주체성같이 믿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받기 위해 장영두에게 물귀신 작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장영두는 지금 돈도 없었다. 더구나 자수를 했다. 나중에 거액을 받기로 하고 15년 이상의 인생을 감옥에서 스스로 썩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우리 같이 랭가를 면회가 봅시다.”
내가 권했다. 통역이 있어야 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왜요?”
방글라데시인이 의아스런 표정으로 나를 봤다.
“같은 나라 사람이 혼자 감옥에 있는데 도와줘야 하지 않아요?”
“그래도 한국에서 사업하는데 지장이 없겠어요?”
방글라데시인이 물었다.
“괜찮아요. 같은 나라 사람인데 도와줘야 해요.”
“그러면 변호사님하고 같이 가요. 저한테 전화하세요.”
열흘쯤 지나서 나는 방글라데시인이 가르쳐 준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김민호 씨죠?”
“그런데요?”
높은 톤의 목소리에 졸린 듯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나 변호산데 감옥에 있는 랭가한테 가지 않을래요?”
내가 물었다.
“나 일 나가야 하는데요.”
방글라데시인이 간접적으로 거절 의사를 표시했다. 혼자라도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9월 20일 오후 3시. 아직 뜨거운 햇빛이 교도소 콘크리트 마당에 내리쬐고 있었다. 나는 교도소 망루 아래 차를 세우고 낡은 철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랭가를 만나러 왔다고 신청했다. 10분쯤 후였다.
“안녕하세요, 변호사님.”
구겨진 재소자복을 입은 랭가가 성큼 안으로 들어서면서 한국말로 인사했다. 튀어나온 눈이 무섭게 번들거렸다.
“한국말 알아요?”
내가 깜짝 놀라 물었다.
“네, 조금은 해요.”
그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가 덧붙였다.
“영어도 말하지는 못하지만 들을 수는 있어요. 한국말 안 되는 부분은 영어로 해 주시면 내가 다 알아들어요.”
통역이 없어도 대충 의사소통이 될 것 같았다.
“요즈음 이 안에서 어떻게 지내요?”
내가 물었다.
“교도소 안에서 같은 방에 있는 몽골인을 때렸다고 벌 받았어요.”
“왜 몽골인을 때렸어요?”
“제가 엎드려 기도하는데 앞에서 이렇게 하면서 놀렸어요.”
그는 말로 표현하기 답답했는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손바닥을 하늘로 하고 절을 하는 모습을 취했다. 그렇게 기도했다는 뜻이다.
“몽골인들은 자꾸만 앞에서 방귀 뀌었어요.”
그러니까 랭가는 몽골인들이 기도하는 자기에게 모멸감을 준 것으로 생각하고 주먹을 든 것이다. 장영두의 말이 떠올랐다. 죽은 영감이 ‘깜둥이새끼’라고 하니까 반사적으로 ‘퍽’ 하고 랭가의 주먹이 날았다고 했었다. 뭔가 일관성이 있었다.
“방귀야 나오는데 어쩔 수 없잖아요?”
내가 말했다.
“아니에요, 일부러 뀌었어요. 그거 나한테 장난치는 거예요. 여기 감옥에 몽골사람, 필리핀사람, 대만사람 있는데 몽골인이 대만사람도 놀리다가 싸웠어요.”
감옥도 세계화가 된 것 같았다. 랭가는 몽골인을 두들겨 패서 감옥 안의 감옥인 징벌방에 갔던 것이다.
“장영두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물었다. 그가 갑자기 화가 치받치는지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의 눈에 물기까지 번지면서 울부짖었다.
“배드맨, 배드맨, 노 프렌드십.”
나쁜 놈이란 뜻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의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는 얘기 같았다. 그는 영어로 더듬거리면서 자기 속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계속)
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