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환 경제팀의 카지노 사업 추진과 관련해 야권은 ‘카지노믹스’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워커힐 카지노 모습으로 기사의 특정내용과는 관련없다. 일요신문 DB
“규제는 눈 딱 감고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
지난 3일 제2차 규제개혁장관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유례없이 강도 높았다. 세월호 특별법 협상 지연에 묶여 경제 관련 법안 처리가 늦어지면서 답답한 심경을 표출한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8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민생 경제 관련 19개 법안을 일일이 열거하며 법안 통과를 국회에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언급한 19개 법안 가운데 실제 ‘민생’과 무관해 보이는 것도 적잖다. 대표적인 것이 크루즈산업 육성법이다. 지난해 7월 친박계 김재원 의원이 대표 발의한 크루즈산업 육성법의 주요 골자는 2만 톤(t)급 이상 크루즈에 선상 카지노를 허용하겠다는 것, 그리고 해양수산부 장관 승인을 얻어 ‘크루즈산업협회’를 설립하는 것에 있다. 이주영 해수부 장관 역시 올해 크루즈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핵심 과제로 꼽았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아예 내국인 카지노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 지역 정가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세계 최대 카지노 재벌인 미국 ‘라스베이거스 샌즈 그룹’을 북항 재개발 지역 개발에 참여시키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동안 샌즈 그룹은 오픈 카지노(내·외국인 허용)를 전제로 여러 차례 부산에 투자 의향을 밝혀 왔는데, 이번에 서 시장이 화답한 모양새다.
정부여당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야당은 ‘카지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붙이며 반발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임내현 새정치연합 의원은 “6800t급 세월호의 안전운항도 보장할 수 없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크루즈 육성법이 통과되면) 카지노 영업장을 갖는 2만t 규모의 크루즈선이 오가고, 시설 관리·감독을 정부가 아닌 크루즈산업협회가 실사할 수 있게 되는데 과연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법사위 회의에서 우려를 표명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라며 “크루즈산업협회 역시 해운조합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된다. 박근혜 정부가 관피아를 척결하겠다면서 해피아(해수부+마피아)의 은신처를 새로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한 야권 관계자는 “국내 유일 내국인 카지노인 강원랜드의 폐해를 국민들이 잘 알고 있다”면서 “선상 카지노의 경우 외국인만 허용한다지만 공해상에 나가면 내국인 출입을 원천 봉쇄할 수 있을지도 따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크루즈 운영은 진입장벽이 높은 대표적 산업이다. 현재 국내에서 선상 카지노를 갖춘 크루즈 산업에 진출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곳은 세븐럭을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가 유일하다. 대부분은 외국 기업과의 합작 형태로 자금을 유치할 계획을 갖고 있고, 이 과정에서 카지노 영업권은 해외 자본을 끌어들이는 가장 강력한 ‘떡밥’이 된다.
현재 인천과 부산 등에서 한 목소리로 선상 카지노 육성을 외치고 있지만 제주도가 제동을 걸고 나서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제주도는 이미 8곳의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운영 중이고, 추가로 건설 중이거나 계획 중인 곳도 최대 6곳이나 된다. 여기에 선상 카지노까지 허용될 경우 그야말로 피 튀기는 전장이 될 전망이다. 이미 도내 중국계 자본이 대거 진출했다는 우려가 많은 만큼 원희룡 제주지사는 선상 카지노에 관해 신중론을 펴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비박계인 원 지사가 친박계 주도의 ‘카지노믹스’에 반발하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하지만 새누리당 외곽 조직의 한 인사는 “카지노 육성은 계파가 따로 없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 PK(부산·경남) 지역 원전산업 종사자들이 선상 카지노 허가를 위해 노력했던 사례가 있다”라며 “이들에게 선상 카지노는 원전을 대체할 황금 산업과도 같다. 지금도 정치권보다 해수부 전신인 국토해양부 출신들이 적극 나서는 것으로 안다. 일본 파칭코 업계나 홍콩 펀드를 통해 우회적으로 국내 자금이 투입되는 것을 주시해야 할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편 카지노 육성과 더불어 집권당이 공을 들이는 부분이 테마파크 유치다. 부동산 경기 하락세와 함께 중단됐던 테마파크 사업 부활의 신호탄을 쏜 것은 ‘친박계 맏형’ 서청원 의원이다. 지난 6월 서청원 의원은 ‘대규모 복합개발용지 공급촉진을 위한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 이른바 ‘산입법’을 대표 발의했다. 산입법은 테마파크 유치를 위해 공모를 통한 사업자 선정이 가능하도록 한 법안이다.
서 의원 지역구인 경기도 화성시는 지난 2007년부터 송산지구에 세계 최대 테마파크인 유니버설 스튜디오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토지주인 수자원공사 측이 토지 공급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사업 대주주인 롯데그룹이 땅값 인하 요구와 함께 카지노 리조트와 같은 알짜 사업만 탐하다 중도 이탈하면서 사업 자체가 사실상 무산됐다.
다시 불붙은 것은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이 경기도 공약으로 테마파크 유치를 공언하면서다. 이듬해 보궐선거로 국회 입성한 서 의원이 마지막 베팅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낮은 수익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 8월 수자원공사가 용역업체에 의뢰해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테마파크 조성 이후 공사 측에 약 5600억 원의 손실이 예상됐다. 관광객도 예상보다 많지 않을 것으로 추정돼, 2조 5000억 원을 투자해 30년간 운영해도 적자라는 평가가 내려졌다.
앞서의 야권 관계자는 “대통령 공약이니 무조건 강행하겠다는 것이 전 정권의 4대강 사업과 근본적으로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라며 “막대한 로열티 지불과 함께 카지노 사업권까지 주는 형태로 손실 부분을 보전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권 약속 없이 선뜻 수천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나설 곳이 없을 것이다. 현 정부여당의 입법 추진 이면에 어떤 진실이 숨어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