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에서 명절이라고 왕래하겠습니까? 이제는 (금호석유의 공격이) 더 이상 새삼스러울 것도 없습니다.”(금호아시아나 관계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왼쪽)은 동생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으로부터 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지난 3일 서울중앙지검 조사부(부장검사 장기석)는 김성채 금호석유화학 대표가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기옥 금호터미널 대표, 오남수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전략경영본부 사장을 고소한 사건을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금호석유가 지난 8월 12일 이들을 배임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지난 2009년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던 금호아시아나그룹이 그 해 6월 재무구조개선 약정 체결 이후 자금 조달이 불가능해지자 본격적으로 계열사를 동원해 CP(기업어음) 돌려막기를 시작했다고 금호석유 측은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금호석유화학, 금호피앤비화학 등 금호석유 측도 수백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는 것.
금호석유 측은 “2009년 12월 31일자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가 발행한 CP 총 잔액은 4270억 원 규모인데, 공정거래법상 대규모 내부거래로 이사회 결의 및 공시 의무가 없는 100억 원 미만으로 나누어 발행됐고 금호종합금융을 통해 중계됐다”며 “개인에게도 판매돼 200여 명의 개인투자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덧붙였다.
이번 고소는 특히 박삼구 회장을 직접 겨냥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금까지 박삼구 회장 쪽과 박찬구 회장 쪽은 서로 고소·고발·소송 등을 주고받았지만 형이 동생을, 동생이 형을 직접 피고소인 명단에 올린 적은 없었다. 금호석유 관계자는 “형제간 다툼이라는 부담이 크게 작용하기는 했지만 언젠가는 불거질 일”이라고 말했다. 금호석유는 이번 고소가 지난해 11월 비슷한 이유로 경제개혁연대가 제기한 아시아나항공 주주대표 고발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했다. 다시 말해 경제개혁연대가 고발했음에도 검찰 수사에 별다른 진척이 없자 직접 나섰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신규 자금이 아니라 만기 연장 차원이었다”며 “워크아웃 상황에서 만기 연장이 안 되면 부도나 법정관리로 내몰려 채권 회수가 더 어려워진다는 판단에 따라 채권단과 협의 후 만기 연장이 회사 이익에 더 부합한다고 본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박삼구 회장은 2010년 11월에야 경영에 복귀했기에 당시 경영에 관여하지도 않은 박삼구 회장을 피고소인에 올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보탰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금호석유의 잇단 공격을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서로 각자 잘 하면 되는데 금호석유 쪽에서 계속 공격해오는 것이 안타깝다”면서 “우리는 자꾸 수세적·방어적 차원에서, 살기 위해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만다”고 말했다. ‘살기 위한 소송’은 지난해 9월 금호산업이 금호석유를 상대로 낸 상표권 소송, 올 2월 박삼구 회장 관련 정보를 빼낸 혐의로 박찬구 회장의 운전기사를 고발한 것 등을 일컫는다.
하지만 금호석유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은 퇴진 이후에도 6개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을 유지한 상태였다”며 “피해자이고 살기 위해 몸부림친 건 우리인데 마치 자기들이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삼구 회장 입장에서는 금호석유의 고소와 검찰 수사 착수가 또 다른 짐이 되고 있다. 가뜩이나 박 회장은 최근 복잡한 일로 시끄러운 날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호타이어는 2010년 1월 워크아웃 신청으로 공사를 중단한 조지아공장 건설을 재개하려 하고 있지만 ‘워크아웃 졸업 우선, 국내 투자 우선’을 내세운 금호타이어 노조의 반대에 부딪치고 있다. 게다가 정치권에서는 금호타이어가 채권단에 허위 보고서를 제출해 워크아웃 중임에도 4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승인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난 6월 “채권단이 정확한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4000억 원 규모의 투자를 승인한 것은 부실심사”라고 지적한 바 있다.
금호타이어의 조지아공장은 현대자동차의 앨라배마공장, 기아자동차의 조지아공장과 가까운 곳에 위치할 예정이어서 사업적·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더욱이 경쟁사인 한국타이어가 올해 말 미국 테네시공장 착공을 예정하고 있어 조지아공장 건설이 절실하다.
박삼구 회장으로서는 당장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금호고속 인수 건이다. 금호아시아나 관계자는 “우리가 설립하고 우리가 키워온 모태기업”이라며 “금호고속의 기업가치를 계속 상승시킬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야 할 것”이라며 인수 의지를 전했다.
박 회장은 2012년 워크아웃 중인 금호산업의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사모펀드에 3300억 원에 매각한 금호고속을 2년 만에 되찾아오려 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금호에 우선매수청구권이 있다는 점이다. 금호고속의 가격이 형성되면 금호고속을 보유하고 있는 사모펀드는 금호와 우선 협상해야 한다.
문제는 가격. 금호고속의 가격이 너무 높게 형성되면 아무리 모태기업일지라도 박삼구 회장이 금호고속을 인수하기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금호 측은 내심 3500억~4000억 원을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에서는 2년 전 매각 가격의 2배인 6000억 원까지 얘기되고 있다. 금호 측은 가격을 낮추려 하고 사모펀드 측은 높이려 하는 과정에서 서로 공방을 주고받기도 했다.
박삼구 회장은 직접 “금호고속 매각은 순리대로 해야 한다”면서 “어떤 게 맞는 건지 생각해보면 안다”며 사모펀드와 시장 움직임에 불쾌감을 에둘러 표현하기도 했다. 그만큼 인수 의지가 강하다는 의미다. 재계 고위 인사는 “금호가 되찾으면 좋겠지만 M&A(인수·합병) 시장 생리가 어디 맘대로 되느냐”며 “매각 주체가 사모펀드인 것이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박삼구 회장으로서는 이래저래 골치 아픈 가을을 맞고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