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전의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양장을 입은 모습이 이채롭다. | ||
그동안 언론인으로서 청와대 비서관으로서 역대 퍼스트레이디와 가족 등을 주변에서 지켜봤던 한양대 겸임교수 조은희 씨가 <한국의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을 엮어냈다. 책 속에는 초대 퍼스트레이디 프란체스카 여사에서 이희호 여사까지 8명의 삶과 생각 그리고 숨겨진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책의 내용 일부를 발췌한다.
#파란 눈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한 안 좋은 소문 중 하나는 그녀가 일부러 한국어를 배우지 않았고 하나도 할 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양아들 이인수 박사에 따르면 프란체스카 여사는 말하는 것은 서툴렀어도 듣는 것은 능숙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몰라서 웃지 못 할 해프닝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이 전 대통령이 작고한 뒤 오스트리아로 건너갔다가 1966년 한국을 방문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예방했다. 예방이 끝난 후 그녀는 한국이 얼마나 변했는지 궁금해 서울시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에서는 경찰들을 불러 그녀를 경호하게 하고 서울 구경을 시켜줬다고 한다. 그때 경찰들이 따라다니면서 그녀가 물건을 사려고 하면 상점 주인에게 “막 비싸게 받아! 바가지 씌워!”라고 함부로 말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웃기만 했지만 상당한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이날 그녀는 아무 물건도 사지 않았다.
언젠가 그녀는 누가 ‘오스트리아 사람이죠’라고 묻자 ‘아뇨, 나는 한국인예요’라고 대답한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영원한 국모 육영수
“모 여배우가 애인이라면서요? 사실이 아니더라도 그런 소문이 제 귀에까지 들린다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는 소리예요. 한 가정 안에서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나라의 일이라고 제대로 한다는 보장은 없지요.”
육 여사가 남성의 외도에 유난히 엄격했던 것은 자신의 아버지의 다른 여자 때문에 평생을 눈물 흘리며 산 어머니를 봤던 경험 때문이다.
육 여사는 바람을 피우는 공직자들은 공직에서 물러나도록 남편에게 압력을 가했으며 박정희 대통령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도 불같이 화를 내며 상당히 모진 소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항간에는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던진 재떨이가 날아다녔다는 둥 부부 싸움에 관한 소문이 나돌곤 했다.
김두영 전 청와대 행정관의 증언에 따르면 육 여사는 얼굴이 자주 붓는 편이어서 얼굴이 푸석하게 보이는 날에는 대통령 혼자 행사장에 나갔다고 한다. 이런 날이면 왜 퍼스트레이디가 안 나오느냐며 문의전화가 빗발치고 맞아서 안 나왔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 전두환-이순자 부부의 젊은 시절. 아래 사진은 지난 93년 2월 퇴임 후 사저로 돌아온 김영삼 대통령 부부. | ||
“순자 씨, 부모님께 여쭤 봐요. 순자 씨가 다 클 때까지 결혼 안하고 기다려도 되느냐고.” 18세의 여고생은 어느 날 갑자기 뜻밖의 프러포즈를 받고 가슴이 뛰었다. 이 소녀가 훗날 11·12대 퍼스트레이디가 된 이순자 여사이며 프러포즈한 남성은 바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다. 이 여사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이 여사는 의사가 되려고 했던 자신의 꿈도 포기하고 대학을 자퇴한 후 전 전 대통령과 결혼했다. 결혼을 하면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될 것을 염려한 전 전 대통령이 이별을 통보한 것 때문에 오히려 결혼을 서두른 것이다.
이 여사는 70년대 전 전 대통령이 연대장 시절 악착같이 집과 땅을 팔고 샀으며 후에 부동산 투기설 등에 휘말리며 ‘빨간바지 복부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고 한다.
#현모양처 손명순
진위는 알 수 없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의 화려한 여성 편력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깃거리가 많다. 대표적 일화 중 하나는 김 전 대통령의 40대 시절의 일이다.
승마를 즐기던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애마로 안암동에서 뚝섬 경마장까지 달리곤 했는데 입원을 하는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당시 손 여사는 거제도에서 남편의 지역구를 관리하며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서울로 부랴부랴 달려왔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 사흘 만에 도착한 손 여사는 병실에서 미모의 여인과 마주쳤다. 이 여인은 외려 손 여사에게 “누구세요? 도대체 어디서 오셨어요?”라며 묻더라는 것. 알고 보니 김 전 대통령을 사모하던 요정 마담들이 돌아가며 병문안을 와 있던 것. 이런 남편에게 손 여사는 딱 한 가지만 주문했다고 한다. “밖에서는 절대 자식을 낳아 오지 말라.”
▲ 지난 2000년 6월 14일 남북정상회담 당시 평양의 유치원을 방문한 이희호 여사가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다. | ||
이희호 여사가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은 모두 반대했다고 한다. “나는 만인의 어머니”라며 결혼할 생각이 없음을 밝히던 그녀가 41세의 나이에, 그것도 결혼 상대가 정치인 김대중이라는 것이 너무도 예상밖이었던 것이다. 함께 일했던 YWCA 동료 중에서는 울면서 결혼하지 말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고.
이 여사는 결혼 1년 후인 1963년 겨울에 42세의 나이로 막내아들 홍걸 씨를 낳았다. 당시 김 전 대통령과 전처 사이에서 태어난 홍일과 홍업 형제가 16세와 13세의 나이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의 소년들이었다. 이 여사는 이 사춘기 소년들 앞에서 홍걸 씨를 안아 주거나 귀여워해주는 것도 조심했다고 한다.
2006년 김 전 대통령의 ‘숨겨둔 딸’ 스캔들이 터졌을 때 이 여사는 측근들에게 “정말 그 아이가 남편의 딸이었다면 잘 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