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신정아 씨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와 관련된 다섯 인사들의 면면이 주목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검찰 주변에서는 신 씨 사건 의혹의 표적이 되는 인물로 ‘핵심 5인방’의 이름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동국대 재단이사장인 영배 스님과 홍기삼 전 총장, 한갑수 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 신 씨 허위 학력 의혹을 최초 제기한 장윤 스님, 그리고 ‘아르코 국제 아트페어’에서 신 씨를 큐레이터로 채용했던 김정화 아르코주빈국 커미셔너 등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변 전 실장 측과 검찰의 수 싸움에서 현재는 오히려 검찰이 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래저래 화가 날 대로 난 검찰이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를 통해 변 전 실장과 신 씨에게 어떤 타격을 가할지, 더 나아가서는 과연 권력의 중추로까지 칼끝이 겨누어질지가 추석 정국의 최대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영배스님 - 동국대 재단 이사장
동국대재단 이사장인 영배 스님은 변 전 실장과 신 씨의 검찰 소환 조사 이후 가장 급격하게 핵심인물로 부상하고 있다. <일요신문>은 지난 801호(9월 23일자)에서 변 전 실장이 평소 조계종의 제1야당으로 통하는 ‘보림회’ 인사들과 가까웠고 그 종파의 핵심인물 중의 한 명이 바로 영배 스님이라고 밝힌 바 있다.
영배 스님은 지난 94년 불교계의 ‘불사개혁’을 주도한 대표적인 개혁 성향의 인사. 이후 자신이 속한 보림회가 98년부터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 역시 그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됐다. 보림회는 조계종 권력의 양대 산맥 중의 하나인 동국대재단을 지금까지 장악하고 있고 그 중심에 영배 스님이 있다.
검찰이 영배 스님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소유로 알려진 울산광역시 울주군 소재의 흥덕사라는 사찰 때문. 교계 주변의 전언에 따르면 영배 스님은 비록 교계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위치에 있지만 막상 자신의 든든한 배경과 울타리가 될 만한 사찰은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영배 스님이 지난 2004년 기존의 음식점 건물을 리모델링해 이 사찰을 창건했다는 것.
문제는 신생 사찰인 흥덕사에 정부가 무리하게 특별교부금 10억 원을 지원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에 청와대 변 전 실장 등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장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검찰은 흥덕사를 중심으로 변 전 실장과 영배 스님 간의 어떤 커넥션이 작용한 게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실제 신 씨가 동국대 교수에 임용된 2005년 당시 영배 스님은 재단이사로서 홍 전 총장과 함께 신 씨의 교수 채용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영배 스님이 거액의 교부금을 지원받은 대가로 일부 돈을 변 전 실장이나 신 씨에게 다시 사례비조로 돌려줬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더군다나 정부 특별교부금 지원 요청 시점이 신 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과 변 전 실장의 청와대 정책실장 임명 시기와 맞물린다는 점에도 검찰은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SBS는 지난 18일 보도에서 영배 스님이 신 씨에게 거액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영배 스님은 “그 돈은 동국대 100주년 행사 진행비 등 공식적인 지출”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영배 스님과 신 씨가 자주 통화한 사실도 밝혀낸 것으로 알려졌다. 영배 스님이 신 씨의 허위 학력 의혹이 불거진 이후 지난 5월 처음 의혹을 제기한 장윤 스님을 이사회에서 제명시킨 것과 7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신 씨의 허위 학력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며 신 씨를 비호한 것을 놓고 두 사람 간에 직접적으로 긴밀한 대화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애초 신 씨 파문이 불거진 이후 모든 시선이 변 전 실장과 장윤 스님에게 쏠렸을 때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의 핵심 키워드는 홍기삼 전 총장이 쥐고 있을 것”이란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검찰 주변에선 부실한 초기 수사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그 대표적인 예로 홍 전 총장에 대한 사전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실제 홍 전 총장의 주요 의혹은 언론을 통해 불거졌고 검찰 수사는 그 뒤를 쫓아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홍 전 총장에게 쏠리는 가장 핵심적인 의혹은 각종 편법을 동원해 신 씨의 교수 임용을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단순히 변 전 실장과의 종교적 친분 관계와 그 청탁의 대가로만 설명하기엔 석연찮다는 것. 또한 신 씨 임용 이후 정부의 동국대 예산 지원이 부쩍 늘어났고 동국대 교육용 재산이던 일산 땅이 수익용으로 용도 변경된 배경에도 의혹이 쏠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홍 전 총장이 검찰 조사에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검찰이 주목할 만한 상당한 내용을 털어놓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실제 홍 전 총장은 이번 파문이 불거진 직후 동국대재단 등에서 신 씨 교수 임용을 마치 자신 혼자서 다 주도한 것처럼 몰아가는 데 대해 대단히 격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갑수 - 전 광주비엔날레 재단 이사장
한갑수 전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사장은 지난 18일 검찰에 재소환되면서 크게 주목받고 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한 전 이사장이 지난 12일 검찰에 나와 진술한 부분 중 좀 더 확인해야 될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그의 최초 진술에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상당부분 확인됐다는 후문이다.
일단 검찰 조사에서 신 씨의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임 과정에도 변 전 실장의 청탁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 역시 변 전 실장의 단순 청탁만으론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한 전 이사장이 신 씨를 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은 상식을 완전히 벗어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신 씨가 감독으로 최종 확정돼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7월 4일이었다. 이미 동국대재단이사회에서 신 씨의 허위 학력 의혹이 확산일로에 있었고 영배 스님 등이 이를 진화하기 위해 2일 기자회견을 열기까지 했다. 그런 상황에서 당초 선정위에서 단 1표만을 얻은 신 씨가 갑자기 감독으로 선임된 과정은 좀처럼 납득하기 힘들다.
특히 선정 당시 신 씨는 자신에 대한 학력 의혹이 본격적으로 제기되자 도피성에 가까운 해외 출국을 단행한 상태였다. 그러자 비엔날레 측은 신 씨에게 메일을 보내 항공권까지 제공하면서 급거 귀국을 종용했고, 신 씨가 2일 귀국하자 곧바로 한 전 이사장이 신 씨에게 감독직을 맡기는 비상식적인 행태가 연출된 것이다. 이를 두고 주변에서는 한 전 이사장이 뭔가 급하게 서두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다른 어떤 강력한 외압에 의해 그 과정이 주도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한 전 이사장은 당시 신 씨에 대해 회의적이던 이사들과 관계자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신 씨 홍보에 열을 올린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고 있다.
한 전 이사장은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자청해 “정치권 등의 외압은 절대 없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 잇따른 검찰 조사에서 이는 사실과 다른 거짓말로 드러나 그가 감추고 있는 진실이 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는 지난 93년 경제기획원 차관 시절에 당시 과장이었던 변 전 실장과 함께 일한 인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이사장은 지난 2005년 3월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에 선임될 당시에도 지역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문화행사에 70대 관료 출신이 임명된 것은 적절치 않은 인사로 정치적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것 같다”는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장윤스님 - 전 동국대 재단 이사
장윤 스님은 이번 신 씨 파문의 또 다른 대척점에서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인물이다. 그는 영배 스님과 홍 전 총장 등에 맞서 줄기차게 신 씨의 허위 학력 의혹을 제기했다가 지난 5월 이사에서 제명까지 당하는 등 이번 사태를 일으킨 핵심 장본인이었다. 변 전 실장의 외압 의혹도 그에게서 비롯됐다.
어찌 보면 일등공신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후 보여준 행동은 석연찮다. 그는 변 전 실장의 개입설이 확산되자 “사실과 다르다” “외압은 없었다”며 변 전 실장을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뿐만 아니다. 변 전 실장의 청탁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때 한 전 이사장에게 신 씨의 감독 선임을 부탁하기도 했다.
장윤 스님은 그간 대리인을 시켜 뜻을 간접적으로 전달하는 등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피해 오다가 지난 15일에 중국으로 몰래 출국을 시도하기까지 했다. 그는 자신이 출국 금지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발길을 되돌렸다.
교계 일각에서는 교계 ‘여권’의 핵심인사인 장윤 스님이 야권 인사인 영배 스님 등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신 씨 의혹을 제기했으나 이 문제가 단순히 동국대재단 내부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끝없이 확산되자 큰 부담을 느껴 심각한 고민과 갈등에 빠진 것으로 전하고 있다.
스페인의 ‘2007 아르코 국제 아트페어’(미술품 견본시장)에 주빈국으로 초대된 한국이 지난해 7월 큐레이터로 신 씨를 전격 채용했던 부분 역시 의혹을 사고 있다. 이 행사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노력으로 지난 2002년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됐으나 정작 그동안 정부는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문화관광부가 갑자기 예산을 지원하고 내부 인사 간섭에 나서는 등 백팔십도 다른 태도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신 씨가 큐레이터로 선정된 시기를 전후해 20억 원의 파격적 예산 지원과 함께 추가 10억 원을 더 책정하는 등 정부가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보여 그 배경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신 씨의 큐레이터 채용’이라는, 주최측인 스페인조차 의문을 표할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를 주도한 김정화 커미셔너에 대해서도 의혹이 모아지고 있다. 김 씨는 “주변 미술계 저명인사들로부터 신 씨를 추천받았다”고 해명했지만 막상 당사자들은 “신 씨를 잘 모른다”거나 “여러 명 중의 한 명으로 추천했을 뿐”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 씨의 커미셔너 선정에도 잡음이 잇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당초 커미셔너는 김선정 씨(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였으나 지난해 6월 그는 문광부의 과도한 간섭 때문에 사실상 퇴출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대신 선정된 이가 김 씨인데 스페인 측에서는 김 씨에 대해서도 자격 시비를 제기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자신이 선정되자마자 신 씨를 큐레이터로 채용했다. 따라서 문광부가 어떤 문제 때문에 갑작스럽게 원래의 커미셔너를 퇴출시키고 김 씨를 선정했는지, 또 김 씨가 선정되자마자 신 씨를 큐레이터로 채용한 배경은 무엇인지, 그리고 문광부는 왜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30억 원의 예산을 편성했는지를 두고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