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뉴스 화면 캡처.
그렇게 홀로 남겨진 A 씨는 끝내 난간 밖으로 뛰어내리고 말았다. A 씨가 떨어진 지하 1층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이었다. 때문에 A 씨는 바로 발견되지 못하고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행인의 신고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함께 일하던 사람이 의식을 잃은 채 응급실로 실려 오자 동료들도 깜짝 놀라긴 마찬가지. 곧장 A 씨를 살리기 위해 온갖 처치가 이뤄졌지만 결국 A 씨는 자신이 일하던 병원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A 씨의 자살 경위를 조사하기 위해 사고 지점 부근의 차량 블랙박스와 주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A 씨가 투신 직전까지 타고 있던 차량이 이 병원 전문의 B 씨의 소유였으며 두 사람이 함께 차에 타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이에 경찰은 B 씨에게 연락해 A 씨의 투신 사실을 알리면서 “참고인 조사를 받아 달라”고 요청했다. 영상에도 A 씨가 스스로 투신한 모습이 찍혔기에 말 그대로 ‘참고’를 위한 조사일 뿐이었다.
하지만 B 씨는 경찰서 대신 세종시로 향했다. 이 병원은 세종시에 분원이 있어 전문의들이 번갈아가며 당직을 섰는데 마침 이날이 B 씨가 근무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한 B 씨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오는 길에 A 씨의 투신에 이어 사망소식을 전해 듣자 어떤 이유에서인지 넋이 빠진 듯 보였다.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간호사들은 “피곤하신 것 같다”며 B 씨를 걱정해 수액까지 놔줬다.
수액을 맞으며 한동안 홀로 시간을 보낸 B 씨는 주사바늘을 빼려는 간호사에게 “내가 하겠다”며 만류한 뒤 약품 하나를 챙겨 주차장으로 나왔다. 그게 B 씨의 마지막 생전 모습이었다. B 씨가 자취를 감춘 뒤 경찰은 병원으로 연락해 그의 행방을 물었고 오후 11시 30분경 뒤늦게야 직원들이 차량 곁에 쓰러져 있는 B 씨를 발견했다. A 씨가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지 꼭 12시간 만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B 씨가 가운을 입고 신분증도 목에 맨 채 발견돼 금방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수액투여를 위해 꽂았던 바늘에 스스로 염화칼륨을 주사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밝혀졌다. 보통 염화칼륨은 심장정지용으로 사용되는데 B 씨는 원액 그대로 주사했다”며 “차량 안에는 부인과 부모님들에게 ‘먼저 가서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내용의 유서와 술병 등이 발견됐다. A 씨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두 사람 모두 타살 흔적이 없어 자살로 결론짓고 근무하던 병원에서 장례를 치렀다. 다만 두 명 다 사망해 정확한 자살경위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미혼인 A 씨와 가정이 있는 B 씨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긴 하지만 과는 달랐다고 한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평소 친분이 있어 함께 있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A 씨가 고된 레지던트 생활로 스트레스가 심해 자살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우울증 등 정신 병력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병원도 하루아침에 두 명의 의사를 잃었지만 더 이상 말이 나오는 것을 막으려는 듯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두 사람이 왜 자살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는 영원한 비밀로 남게 됐다.
대전=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자살 충동 느끼는 레지던트들 “죽는 사람 심정 잘 안다” 동료를 잃은 슬픔을 느낄 시간도 없을 것이라 말했다. 경남의 한 대학병원에서 1년차 레지던트로 근무하는 김 아무개 씨(27)는 “대전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 우리들도 잘 알고 있다. 의료계 바닥도 좁아 금방 소문이 난다. 하지만 같이 근무하던 레지던트들은 더 힘들 것이다. 사람이 줄어들면 그만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더 많으니 누가 도망이라도 가면 동기들이 잡으러 갈 정도”라며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은 죽을 만큼 일하고 죽지 않을 만큼 먹고 잔다. 하루에 평균 수면시간이 3시간도 안 된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호출 소리에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실제 레지던트 자살 소식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지난 17일 충북 청주시 흥덕구의 한 아파트에서도 레지던트였던 A 씨(27)가 숨진 채 발견됐다. 누나가 함께 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A 씨는 자신의 방문을 걸어 잠그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앞서 2012년 한 대학병원 마취통증의학과 레지던트 3년차가 오랜만에 집에서 잠을 자다 사망한 채로 발견되기도 했으며 2011년엔 우울증을 앓던 또 다른 대학병원 레지던트 4년차가 병원 욕조에서 손목을 긋고 자살하기도 했다. 자살까지 생각하게 되는 레지던트들의 일상은 365일 극기 훈련이나 다름없다. 24시간 병원을 지키며 환자들을 돌보고 수술 보조, 응급 처치, 당직 등 온갖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 레지던트가 없으면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괜한 소리가 아닌 것이다. 결국 정부는 협의를 통해 ‘전문의의 수련 및 자격인정 등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다. 수련지침에 따르면 전공의에게 연속 36시간을 초과해 근무를 시킬 수 없고 일주일에 하루는 휴일을 줘야 한다. 4년차 전공의부터는 단계적으로 주당 최대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줄이고 당직은 주당 4회 이상 설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법과 현실은 차이가 있다”며 여전히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