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쪽 세계순례대회] 전북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순례대회’가 2년째 불교계의 불참이라는 문제를 미봉한 채 치러지게 돼 반쪽짜리 행사로 위상이 추락했다. 이 대회는 전주∼완주∼익산∼김제를 잇는 총 240㎞(600리)의 순례길을 함께 걸음으로써 종교간 분열과 반목을 접고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는 취지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불참하기로 결정해 종교·사회의 상생과 화합이라는 애초 대회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2013세계순례대회 전경>
[일요신문] 전북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순례대회’가 불교계의 불참이라는 문제를 미봉한 채 치러지게 돼 반쪽 행사로 위상이 추락했다.
이 대회는 전주∼완주∼익산∼김제를 잇는 총 240㎞(600리)의 순례길을 함께 걸음으로써 종교간 분열과 반목을 접고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는 취지에서 열리고 있다.
그러나 불교계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불참하기로 결정해 종교·사회의 상생과 화합이라는 애초 대회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
◇ ‘세계순례대회’란= 세계순례대회는 불교, 원불교, 천주교, 개신교 등 전북지역 4대 종단의 성지를 잇는 240km의 순례 길을 걷는 행사로 해마다 국비 1억5천만 원을 지원 받고 있다.
종교인, 신도, 시민 등 7박8일 동안 9개 코스, 구도 600리(240㎞)의 순례길을 걸으며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종교 간 상생의 바탕을 다지는 대회다.
순례길 선포 이후 전국에서 해마다 1만명가량이 이 길을 찾고 있다. 신도는 물론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지자 문화재청은 이곳을 ‘2010년 이야기가 있는 문화유산 길’로 지정하기도 했다.
올해로 4회째인 이 대회는 전주∼완주∼익산∼김제를 잇는 총 240㎞의 순례길에 있는 각 종교 유적지를 거친다.
◇ ‘토라진’ 불교계= 2년째 불교계의 불참 사태는 전주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하는 종교 성지화사업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종교 성지화사업은 전북도와 전주시가 천주교 성지인 승암산(치명자산)에 올해부터 3년간 380억원을 들여 세계평화의 전당을 건립하고 125억원을 투입해 개신교의 근대선교역사기념관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이 계획에 불교계의 성지화사업이 제외된 것이다. 불교계는 전북도와 전주시에 대해 개선을 촉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발을 뺀 것.
불교계는 “2014년 세계순례대회는 형식만 6대종교 화합을 목표로 할 뿐, 사실상 천주교와 개신교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특정종교의 성지화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불참을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북불교연합대책위는 지난 7월 전북도 문화예술과에 순례대회 불참을 통보한데 이어, 순례 참여객 모집 홈페이지를 포함한 각종 기구표에서 불교계 명단 삭제와 불교계가 참여하는 것으로 보이는 어떤 표현도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등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불교계는 다른 종교의 성지화사업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추진하는 사업인 만큼 형평을 지켜 불교계에 대한 지원도 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상생’이미지 퇴색= 김수곤 대회 조직위원장은 20일 “세계에서 유일하게 서로 다른 종교의 상생과 화합을 위해 탄생한 순례길을 걸으며 진정으로 하나 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같은 조직위원장의 자평과는 달리 내홍으로 위상 추락을 면치 못하게 됐다.
대회의 대외적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4대 종단이 2011년부터 사회의 화합과 상생, 구도(求道) 목적을 위한 종교인들의 노력도 물거품이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해마다 대회에 지원되는 국비(1억5천만원)도 자칫 중단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조직위 관계자는 “더 이상 이 같은 상황을 방치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정무기능 부재= 문제는 ‘세계순례대회’가 2년째 파행을 겪고 있음에도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주체가 없다는 점이다.
불교계가 대회 참가를 거부하는 사태가 빚어진 것도 사실상 해당 전북도․ 전주시와 조직위원회의 정무기능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게 안팎의 분석이다.
실제로 불교계 최근 “전북도와 전주시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며 반발해 소통 부재에 따른 불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내비쳤다.
그러나 해당 지자체와 조직위가 정작 불교계와의 소통의 창구를 마련하려는 노력보다는 오히려 원론적 차원의 섭섭함만을 토로, 문제의 본질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전북도 관계자는 “종교계가 상생·화합으로 지역발전을 꾀해야 하는데도 이해관계에 얽혀 갈등을 빚고 있어 답답하다”면서 “올해 전통사찰 지원에 32억원을 지원할 예정이기에 갈등보다는 배려와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북도가 불교계의 협량함을 지적하며 불교계 달래기에 손을 놓고 있는 것에 대해 공직사회 내부에서조차 ‘전북도가 대체 뭐하느냐’는 자조섞인 비아냥마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불교계의 이런 모습이 협량으로 비칠 수도 있으나 배려도 진심도 없이 행사불참만을 서운해 하는 일은 옳지 못하다”며 “진심으로 설득하고, 동참을 촉구하는 노력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