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소극적인 지지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이 후보 지지의사를 밝히는 적극적인 지지를 한다는 게 측근의 얘기다.
“가까운 많은 사람들이 이번 대통령선거에선 지지하는 후보를 밝히도록 주문했다. 김 전 대통령도 지지후보를 밝힐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숙고 끝에 이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 공개적으로 이런 의견을 밝힐 것”이라는 게 측근의 얘기다.
흔히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 일선을 물러난 원로는 현실정치엔 초연한 위치에 있는 게 좋다는 말을 한다. 정치에 초연하게 지내다 아주 요긴한 때 말을 해야 무게가 실린다는 것. 그래서인지 이번 대선에서도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침묵하고 있다.
그러나 YS는 여기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선거를 봐왔지만 이번처럼 변덕스런 선거는 처음 본다. 아침저녁이 다르다” “대통령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사람이 열 명도 더 된다. 국회의원도 못될 사람들이 대통령에 나오겠다고 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지경까지 정치가 바닥으로 내려앉은 것인가”는 게 YS의 정치진단.
그래서 선거에 대해 누구나 적극적인 자기 의사를 표시하는 게 더욱 필요해졌다는 게 YS의 지론이다. 선거라는 게 초연해야할 정치도 아니고 투표할 사람은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하는 정치문화가 필요하다. 현행 선거법은 제약이 너무 많다. 유권자는 자기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것이 일상화되는 정치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그런 정치문화가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데 기여할 것이다 등등. 이런 판단에 따라 YS 자신이 지지후보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로 했다는 게 측근의 설명이다.
그럼 YS의 이 후보 지지결심은 언제일까. YS는 10월 하순 10일간 일본을 다녀왔다. 일본에선 동북아 공동체를 주제로 한 ‘한•일 심포지엄’에 참가하고 특명교수 자격으로 와세다대학원에서 ‘아시아 청년들에게 호소한다’는 주제로 특강했다. 대학강론에선 학생들이 한국 대선에 대해 질문했으나 코멘트는 하지 않았다.
그는 귀국 직후인 11월5일 이회창 후보의 방문을 받고 환담했다. 부친상 때의 조문에 대한 답례였다. 면담은 약 15분, 그러나 회담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측근들은 짧은 만남이었고 이 면담이 이 후보를 지지하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날 면담에서 YS가 이 후보에게 한 얘기 중 알려진 하나는 남북문제에 대한 일본의 시각 등 일본방문 얘기를 하면서 남북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제시하도록 권고한 것.
김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햇볕정책을 비판했다.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실패작이다. 특히 금강산 관광, 김정일 면담 등을 위해 북한에 건네준 거액의 달러는 군사력 증강에 쓰였고 핵 개발로 나타났다.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 등 인도적 지원은 무방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현금지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게 햇볕정책의 역설적인 교훈이다.
김정일이 일본인 납치를 사과했지만 진정한 사과가 아니다. 그는 이 사실을 몰랐다고 했는데 일본인 납치 같은 엄청난 일을 김정일의 승인 없이 독단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북한엔 없다. 그가 일본인 납치를 시인한 것은 일본의 달러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일본의 달러화가 건너가선 안된다. 일본이 대규모 경제지원을 통해 김정일 정권을 돕는다면 그것은 한국의 분단을 고착화하려는 시도로도 볼 수 있다. 일본의 대북한 정책은 한•미•일 공조의 틀 안에서 이뤄지기 바란다.” 대충 이런 요지가 일본에서 펼친 YS의 견해다. 이 후보에게 권고한 대북정책도 햇볕정책의 대폭 수정임을 알 수 있다.
“국정이 어지럽혀져 난제가 중첩해 있다. 그런 난제들을 해결하려고 나설 때는 국론이 분분해질 문제들이 적잖다. 남북문제도 그 중의 하나다. 이런 어려운 문제는 대통령 선거에서 공약으로 제시, 국민의 동의를 받아두는 것이 좋다”고 이 후보에게 권고했다는 것. 선거공약에 대해 의견을 말한 것으로 미뤄 이 후보 방문 이전에 이 후보 지지로 마음을 정하고 있었다는 게 측근의 얘기다.
YS는 어떤 형식으로 이 후보 지지를 표시할까. 그리고 지지의 논리는 무엇일까. YS가 이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밝힌 첫 번째 대상이 기독교 장로들이다. 기독교 장로이기도 한 YS는 기독교 장로모임의 멤버다.
YS는 11월17일 일요일 오후 장로모임 멤버들을 상도동으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했다. 만찬은 오래 전에 예정돼 있었고 대통령선거 얘기를 하기 위한 모임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이날 상도동에 온 장로들 중에는 YS에게 지지후보를 정해 돕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말한 이들이 많다. 마침 비공식적인 자리여서 자유분방하게 이런저런 문제를 화제에 올릴 수 있었고 대통령 선거 얘기도 자연스레 화제에 올랐다는 것.
YS가 이 후보 지지를 어떻게 설명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YS는 선거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정치 실적에 대한 평가고 다른 하나는 미래에 대한 기대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기대보다는 평가가 투표 동기라고 얘기한다. 그러니까 YS의 후보 선택도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DJ 5년에 대한 거부로 풀이할 수 있다.
YS의 정치선택에 영향을 주는 하나는 PK민심이다. 그런데 부산은 이회창 지지일색이다. 부산에서 이 후보를 비방하거나 다른 후보를 들먹이고 지지하는 선전이라도 하면 곱지 않은 시선에 마주친다. 술자리라면 한판 시비도 붙을지 모를 정도다.
부산 사람들이 이 후보를 열렬히 지지하거나 좋아해서가 아니다. DJ 거부의 반사행동이다. 부산의 이 후보 지지열도는 DJ거부의 열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YS의 이 후보 지지도 부산의 민심과 비슷하다고 보면 정확할지 모른다. YS의 DJ거부는 완강하다.
현재 YS가 지지여부를 저울질할 수 있는 후보는 1강2중의 세 사람이다. 그런데 이중 둘은 일찌감치 제외됐다. 실제가 어떻든 노무현 후보, 정몽준 후보 둘 다 DJ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게 YS의 인식이다. “민주당이 어떤 정당인가. 한마디로 DJ당이다. DJ가 대통령으로 있는 한 민주당은 DJ당이다. 이런 민주당인데 김대중 대통령의 뒷받침 없이 노무현 후보 탄생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데 노 후보로는 선거가 어렵다는 게 드러났다. 그래서 다시 대안에 골몰하고 있다”고 YS는 말하고 있다. 새로운 정권은 DJ 5년의 청산이 가장 중요한 과제다. 어떤 일이 있어도 DJ를 계승하는 정권이어서는 안된다. 그게 YS가 이 후보를 지지하는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홍민 언론인
정치 많이 본 뉴스
-
'국지전 잡아야 전면전 이긴다'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 판세에 쏠린 눈
온라인 기사 ( 2026.05.20 17:14:58 )
-
[단독] 최정호 민주당 익산시장 후보 명의신탁 의혹…매수인은 텃밭 건설업자
온라인 기사 ( 2026.05.22 11:00:21 )
-
504명 공천이 곧 당선…6·3 지방선거 ‘무투표 당선자’ 증가 왜?
온라인 기사 ( 2026.05.20 17:02:0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