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이철 사장이 회사 홈페이지에 올린 인사말이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코레일의 도덕적 해이를 보면 이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횡령, 표 사재기, 취업특혜 등 코레일이 보여준 수법은 그야말로 ‘화려’했다. 어쩌면 그들에게 고객은 없었는지 모른다. 고객은 ‘나 몰라라’하고 일방 선로만을 달려왔던 코레일. 이번 국정감사에서 지적이 쏟아졌지만 ‘대선정국’에 파묻혀 국민들이 알 수 없었던 사안까지 코레일의 기막힌 행태를 낱낱이 공개한다.
코레일의 작년까지 부채는 약 5조 6000억 원. 대통합민주신당의 이낙연 의원은 지금 추세대로라면 2025년에 그 액수는 12조 6400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레일 측은 “고속철도 건설비용 때문”이라고 해명하지만 경영실적을 살펴보면 그렇지도 않다. 올해 6월 기획예산처가 발표한 ‘정부투자기관 경영실적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코레일은 조사대상 기관 14곳 중 12위를 기록했다. 이는 건설교통부 산하기관 중 최하위. ‘주요사업부문’의 경영실적은 14위로 꼴찌였다.
코레일 측은 그래도 할 말이 있을 법하다. 2006년 같은 보고서에서는 14위였는데 두 계단 상승했다는 것. 그래서인지 직원들의 성과급도 대폭 상승했다. 한나라당 김석준 의원에 따르면 코레일은 2006년엔 기본급의 200%를 성과급으로 지급했지만 2007년에는 296%를 지급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전히 최하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끼리 ‘돈잔치’를 벌였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게 김 의원 측 주장이다.
‘적자 공기업’이라는 타이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코레일의 도덕 불감증이다. ‘비리 공기업’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온갖 비리가 난무했다는 것이 국정감사에 참여했던 의원들의 말이다.
한나라당 윤두환 의원에 따르면 코레일은 전·현직 직원의 친인척 551명을 불법으로 취업시켰다. 실기시험 면접위원이 자신의 처남을 합격시키는 등 편법으로 친인척을 채용한 것. 코레일 감사실은 이 사실을 적발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 의원은 코레일의 기강해이도 꼬집었다. 한 지사의 역장은 역사의 에어컨 등 공용품을 자기 집으로 가져오고 역 앞에 있는 감나무도 집으로 옮겨 심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역장은 이 사실이 적발돼 지난해 12월 파면됐다. 또 코레일은 고객의 철도회원 마일리지를 훔친 이유로 파면된 직원을 특별한 이유 없이 조기 복직 시켰다. 윤 의원은 “이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며 “코레일이 비리를 저지른 직원에 대해 솜방망이 처벌을 하고 있다”고 질책했다.
이낙연 의원도 코레일 직원의 친인척 채용에 의혹을 제기했다. 정규직으로 채용된 직원 친인척 중 87.2%가 특채로 들어왔다는 것. 이 의원은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며 국정감사장에 나온 이철 사장에게 공세를 가했다. 코레일 측은 이에 대해 “친인척 비율은 전체 직원 중 0.017%로 큰 비중이 아니다. 그들도 정당한 채용절차를 통해 선발했다”고 부인했다.
참주인연합 김선미 의원은 코레일의 도덕성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우선 코레일 직원들의 추석 승차권 ‘사재기’가 도마에 올랐다. 김 의원에 따르면 일부 직원들은 추석 승차권을 공금으로 대량발권한 후 개인이 소지하고 있다가 감사에 적발됐다고 한다. 김 의원 측은 “국민들은 표를 사려고 밤새 줄을 서는데 어이가 없다. 그나마 이것도 공금을 사용해서 적발된 것이지, 개인 돈으로 발권한 경우는 더 많을 것”이라며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코레일 측은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코레일의 기발한 횡령 방법도 공개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코레일은 2006년 철도노조 파업 당시에 기관사운전사 대체인력으로 지원받은 군인에 대한 숙박비를 횡령했다고 한다. 즉, 군인들이 사무소 내 숙소에서 잠을 잤는데도 인근 모텔에 숙박한 것으로 서류를 꾸며 돈을 받았다는 것. 또한 코레일은 20년 이상 근무한 직원에게 10일간 휴가 또는 돈을 선택해서 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사에게 휴가와 함께 돈도 지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코레일은 ‘쓰레기봉투’도 횡령에 이용했다. 김 의원에 따르면 일부 역사는 납품받은 쓰레기봉투 500매 중 380매만을 청소업체에 제공하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바꿔치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청소업체들은 코레일로부터 받은 쓰레기봉투를 동네 가게에 재판매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도대체 쓰레기는 어디다가 버렸는지 모르겠다”며 해명을 요구했지만 “잘 모르겠다”는 것이 코레일의 답변이었다.
도덕 불감증뿐 아니라 ‘안전 불감증’도 질책의 대상이었다. 직원들의 성과급 인상에는 앞장섰으면서 정작 돈이 필요한 시설투자에는 인색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의원들의 지적. 대통합민주신당 정장선 의원은 일부 역의 승강기가 국내산에 비해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으로 만들어져 사고의 위험이 높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주기적인 승강기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정희수 의원도 “전체 철도교량의 10%, 터널의 20%가 보강이 필요한 C등급이다. 왜 보수하지 않느냐”며 코레일을 질책했다. 이철 사장은 “예산이 부족해 일시에 할 수는 없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지도록 하겠다”고 해명했다. 국감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성과급을 290% 지급하고, 횡령에는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했던 코레일이 가장 시급한 안전문제에 예산타령 하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