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년간 표류해온 전라감영 복원문제가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다. 전북 전주시는 25일 전라감영 복원의 핵심인 옛 전북도청사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벌써부터 전라감영을 복원하기로 한 것이 천년고도 전주의 정체성을 되살릴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건물만 잃어버리는 악수(惡手)가 될지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결국 전라감영 복원에 대한 훗날의 평가는 김승수 시장과 전주시의 몫의 남겨지게 된 셈이다. <전라감영 복원 조감도, 전주시청 제공>
[일요신문] 지난 14년간 표류해온 전라감영 복원사업이 마침내 종지부를 찍게 됐다. 전북 전주시는 25일 전라감영 복원의 핵심인 옛 전북도청사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25일 “문화재의 복원은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로써 옛 전북도청사 건물을 철거하고 전라감영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2005년 전북도와 전주시가 복원추진단을 구성하면서 닻을 올린 전라감영 복원사업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전라감영은 어떤 곳= 전라감영은 조선조 호남과 제주를 다스리는 최고 관청이었다. 전라감영은 1392∼1395년 전주시 중앙동 옛 전북도청 자리에 있었다. 1896년까지 관찰사가 거주했다. 관찰사는 조선조 때 지방행정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전주는 호남의 대표 도시였다.
하지만 전라감영은 일제 강점기 때 신식 건물이 들어서면서 철거됐다. 그나마 남아 있던 선화당(宣化堂·관찰사가 업무를 보는 곳)마저 6·25전쟁 당시 불타 흔적없이 사라져버렸다. 학계의 고증에 따르면 전라감영은 선화당을 비롯한 연신당(燕申堂), 관풍각(觀豊閣), 내아(內衙), 통인청(通人廳) 등 25개의 건물이 존재했다.
◇논쟁 공론화= 논란의 시작은 14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0년 전라감영 자리에 있던 전북도청사의 서부신도시 이전계획이 나오면서다.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2005년 전북도와 전주시가 복원추진단을 구성하면서 본격화했다. 전라감영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계승하고 전북의 자존심을 살려보자는 취지에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발굴작업이 이뤄지면서 복원이 속도를 냈다. 하지만 전북도와 전주시가 복원 방향과 규모를 놓고 이견이 불거진 데다 철거비용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면서 사업이 중단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9년 전라감영복원통합추진위가 구성되면서 복원사업의 밑그림이 그려졌다. 옛 도청사 부지를 대상으로 선화당과 연신당 등 감영시설만 부분 복원하고 나머지 터는 광장이나 문화시설로 건립하기로 확정한 것이다.
그러나 지역 예술계가 1930년대와 1950년대 지어진 전북도청과 도의회 청사에 대해 근대건축물로써 가치를 재평가하면서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논쟁은 지난해 전주시와 전북도가 ‘전라감영복원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부분복원으로 결론지으면서 일단락되는 듯했다. 구도청건물 존치론자들이 상대적으로 세력이 약해 마지못해 따라야 했다.
잠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듯 했던 논쟁은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불거졌다.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은 지방선거 때 1952년 건립된 옛 도청사 본관동이 근대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며 철거에 반대하고 나섰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당시 후보 시절 본관동을 리모델링한 후 예술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이들의 요구에 대해 “철거 중단과 시민공론조사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민선 6기 김승수 전주시장이 ‘좀 더 심도 깊은 논의를 해보자’라며 구도청사 건물 철거를 미루면서 복원사업이 전면 중단, 논쟁이 다시 불거진 것이다.
역사속으로 사라질 운명인 구 전북도청사 건물
◇ 논란의 핵심은 가치형량 = “전라감영 VS 근대건축물 중 누가 우선일까”
전라감영 복원 논란은 구 도청건물 등을 모두 철거하고 완전히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건물들을 철거하는 대신 재활용하고 전라감영 일부만 복원하자는 주장이 맞선 논쟁이다.이 같은 논쟁은 실질적으로 구도청사 건물에 대한 의미 부여에서 촉발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철거 찬성측 입장은 전라감영 복원이 우선순위에 있다는 주장인 반면 철거 반대측 입장은 구도청사 건물 역시 전라감영 못지않은 문화유산으로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복원추진위 부위원장을 맡았던 이동희 역사박물관장은 “구도청사 건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해 철거를 반대하는데 이미 추진위에서 논의된 사항이다. 구도청과 전라감영 중 어느 것이 가치가 있는지 선택의 기로에서 보았을 때 전라감영이 훨씬 우선순위에 있다”고 밝혔다.
비록 구도청이 1950년~60년대 전주사람들의 삶이 배여 있고 향후 근대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손 해도 감영복원이 훨씬 가치가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전주의 일부 문화예술인들은 근대문화유산의 가치가 있는 구동청사 건물을 철거 대신 리모델링을 통해 예술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전라감영이 사라진 문화라면 구도청사는 살아 있는 현재의 문화란 것이다. 김병수 도시기획자는 지난 지방선거 당시 “전라감영 역사가 소중하듯 구도청사와 도의회 건물 역시 자랑스런 근대유산이고 영광의 추억창고다”며 “시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 없이 일단 부수고 보자는 식은 안된다. 전면 철거 계획을 잠시 멈춰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시민주체 도시만들기 위한 시민연대도 구도청사 철거를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들은 “근대유산, 미래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는 구도청사 철거를 반대한다”며 “특히 장기적 계획도 없고 원형의 실체가 없는 전라감영 일부 재현을 위한 무작정 철거를 강하게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 남겨진 과제= 전주시는 철거 과정에서 단순히 건물을 허무는 차원이 아니라 옛 도청사에 담긴 기록과 기억, 시민들의 애환과 추억을 기리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전주시의 발표는 철거의 전제에 다름 아니다.
시는 특히 복원하는 전라감영에 시민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도록 ‘전라감영 재창조위원회’(가칭)를 구성해 설계 단계부터 다양한 콘텐츠 발굴과 복원 방법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라감영 복원사업은 넘어야 과제가 많다. 우선 복원을 위한 예산 확보(400억원)나 장기적 계획도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전라감영 복원에 필요한 문화시설을 설치하는 데 4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해 재원 마련은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다.
또 근대문화유산이자 도시재생의 한 축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 건물들의 철거가 과연 전라감영 복원의 효과를 상쇄하고도 남을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우려가 상존한다. 1930∼1950년대 지어진 옛 전북도청사와 도의회 청사 등은 전주지역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근현대사 상징성을 가진 건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전라감영을 복원하기로 한 것이 천년고도 전주의 정체성을 되살릴 수 있는 ‘신의 한 수’가 될지, 아니면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건물만 잃어버리는 악수(惡手)가 될지를 놓고 설왕설래하고 있다.
결국 전라감영 복원에 대한 훗날의 평가는 김승수 시장과 전주시의 몫의 남겨지게 된 셈이다.
정성환 기자 ilyo66@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