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고 상시 구조조정을 통한 인원감축, 삼팔선(38세로 정년 단축), 사오정(45세에 정년퇴직), 오륙도(56세까지 회사 다니면 도둑) 등의 신조어가 생겨나는 등 고용불안이 가중되면서 직장인들 사이에는 부업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직장인의 부업에 대한 높은 관심은 여전하다. 최근 취업포털 커리어의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74% 정도가 부업이나 ‘투잡’을 희망한다고 한다. 직장인들이 부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에서다. 물론 현 직장에 대한 불안감과 실직에 대비하기 위해서 부업을 고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부업이나 투잡을 하고 있는 직장인은 얼마나 될까. 커리어의 조사에 따르면 3.6%에 불과해 실제 투잡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 대부분이 투잡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아 부업을 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5일 근무라고는 하지만 집에서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직장인은 많지 않은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직장인 커뮤니티 2jobs(cafe.daum.net/ ihave2jobs)’ 카페 운영자인 김형로 씨(41)는 “외환위기 직후에는 투잡족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잦은 야근과 빡빡해진 업무 등으로 직장 생활에 여유가 없어지면서 투잡족이 많이 사라진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 역시 헤드헌팅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강의 및 집필을 병행하고 있는 투잡족이다.
김 씨는 또 “쇼핑몰 운영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사람들도 치열해지는 경쟁에 결국 손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두 가지 일의 병행이 쉽지 않은 만큼 결국 한 쪽을 포기하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직장 내에서 부업 사실을 드러낼 수 없는 문화(사규)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현실적으로 두 가지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나 격려해주는 직장은 없다. 부업이 본 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대기업에서는 다단계 판매를 병행하고 있는 직원을 인원감축 대상 영순위로 선정했다는 얘기도 나돈다. 부수입을 얻으려다가 본업을 잃게 될까봐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들의 부업에 관한 관심은 여전히 높은 것이 사실이다. 다단계 판매 회사의 정기 세미나와 편의점 창업 설명회, 프랜차이즈 가맹점 창업 설명회 등 주말에 열리는 각종 부업과 관련한 행사에는 유독 30~40대 직장인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다. 온라인 카페 ‘직장인 커뮤니티 2jobs’ 가입자는 4만 40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직장에서의 인맥은 한정적이고 다른 업계의 정보를 알 수 없으므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인다. 카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실제로 부업을 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관심이 높은, 준비과정의 사람들에 속한다. 이들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어떻게 준비하고 있을까’ 살펴보는 것이다. 회원들은 “비슷한 목적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양질의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부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입사 3~5년차다. 높은 실업률 속에 취업의 기쁨도 잠시, 업무가 어느 정도 손에 익으면 직장에 대한 생각은 처음과 많이 달라져있다. 월급도 월급이지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직장을 계속 다녀야 하는지, 전업과 이직이 잦은 선배들을 보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는 것이다.
부업을 생각하는 높은 관심을 보이는 분야는 어디일까. 바로 ‘창업’이다. 20~30대 젊은 층의 경우 소자본 창업, 무점포 창업에 관심이 많다. 이들은 적은 비용으로 쉽게 창업이 가능한 아이템을 찾는다. 프랜차이즈 업계에 따르면 동업과 투자형 창업을 통해 부업에 나서는 직장인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또 실제 투잡족들은 당장의 이익보다는 퇴직 후의 생활과 연계해 꾸준히 적당한 아이템을 탐색하는 경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잡족은 크게 전문직 종사자와 일반 직장인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눠볼 수 있다. 의사, 변호사, 세무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은 대부분 취미를 비즈니스로 연결시키는 형태가 많다. 헬스클럽, 골프연습장, 피부관리숍 등을 운영하며 본업의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직장인의 경우 취미보다는 고용불안으로 인한 생계형, 수입 우선형의 부업이 많다. 이들은 주로 주말 및 야간 아르바이트, 전문 프리랜서 등의 형태로 일하고 있었다. 그러나 수익에 매달리다 보면 오히려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부업의 지속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무작정 부업에 뛰어들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충고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투잡에 대한 열망이 느슨해지기 마련이라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되면 당장의 수익이 높지 않더라도 자기 만족도가 높아 지속적인 운영이 가능하며 결국에는 수익도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두 사례를 통해서 투잡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미리 그려본다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사례1> 춤을 좋아하는 직장 여성 A 씨(30)는 퇴근 후, 주말 등 여유시간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취미활동에 나섰다. 경진대회에서 입상을 하는 등 뜻밖에 좋은 성과를 거두면서 주말에 강사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뛰어난 실력은 입소문을 통해 많은 수강생 확보로 이어졌다. 일의 즐거움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면서 그는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다. 현재는 댄스지도자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때보다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사례2> 중소벤처기업에서 웹마스터로 일하던 B 씨(36)는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아 건강보조식품을 구입하게 됐다. 판매자와 친분이 쌓이면서 건강보조식품 판매와 관련한 정보를 입수하게 된 B 씨는 눈이 동그래졌다. 판매자의 수수료 수익이 자신의 월급보다 많았던 것. 그는 업체를 찾아가 구체적인 정보를 입수한 뒤 부업을 결정했다.
주중에는 업무시간 틈틈이 고객관리를, 주말에는 배달에 나섰다. 부업을 통해 B 씨가 추가로 벌어들인 돈은 200만여 원. 또 다른 수입이 발생하면서 B 씨는 더욱 적극적으로 부업에 매달렸다. 그러나 주말에 쉬기는커녕 일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몸이 점점 지쳐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면증도 생겼다. B 씨는 경제적 풍요로움을 위해 부업을 계속 병행할지, 몸을 생각해서 그만둬야할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김미영 객원기자 may424@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