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노무현 대통령이 삼성 비자금 수사를 지휘할 조준웅 특별검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후 접견실로 들어오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이번 특검 선정 과정은 과거 어느 특검 때보다 험난한 여정을 거쳤다. 특검이 밝혀내야 할 사안 자체가 엄청난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국회에서 합의된 특검법에는 △삼성 임원 명의 차명 계좌를 이용한 비자금 조성 여부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 증여 사건의 조작 의혹과 함께 △2002년 불법 대선자금 지원 △노 대통령 당선축하금 여부 등 최고 권력층 로비 의혹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 정치인뿐 아니라 법조인, 공무원, 언론계, 학계 등에 뿌려졌다는 ‘포괄적 뇌물’(떡값) 제공 의혹도 수사 대상에 들어갔다. 특검 수사 과정에서 입증되는 사실 관계 하나 하나가 삼성뿐만 아니라 온 나라를 뒤흔들 수도 있는 폭발력을 지닌 것이다.
대선자금을 받은 정치권은 물론 삼성의 ‘조직적 관리 대상’으로 거론된 검찰, 국세청 등의 사정기관조차도 특검 수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때문에 특검 후보 추천의 주체 선정 때부터 다양한 이해관계가 개입되고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애초 특검법이 통과된 직후엔 삼성 비자금 의혹 및 떡값 검사 명단 등을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변 등이 추천한 박재승 전 대한변협 회장이 특검의 유력 후보로 언급됐다.
판사 출신인 박 변호사의 경우, 수가 가장 많은 서울지방변호사회 소속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특별검사 추천 1순위로 꼽혔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대한변협 회원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도 1순위였다.
그러나 진통 끝에 대한변협이 특검 후보자에 대한 추천권을 갖게 되면서 사실상 박 변호사는 후보 선상에서 일찌감치 제외됐다는 게 법조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반(反) 민변, 반 개혁 분위기가 강한 대한변협 집행부와 검찰 출신으로서 특검의 수사력을 강조한 이진강 현 회장의 성향이 ‘민변 쪽 요구 사항은 절대 수용 불가’라는 결론을 끌어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자 민변 측에서는 대한변협이 박 변호사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맞섰다. 특히 서울지방변호사회가 소속 회원인 박 변호사를 배제한 채 검찰 출신 인사 4명만을 대한변협에 후보로 추천하자 일부 민변 측 변호사들이 하창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에게 면담까지 신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용철 변호사의 변호를 담당한 변호인 등 민변 측 변호사들은 설문 조사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특검 추천시 필히 거쳐야 할 인사위원회 자문 과정도 생략한 채 검찰 출신 후보자들을 추려낸 점에 대해 하 회장의 해명을 들으려고 했으나 끝내 접촉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유 변호사는 서울고검 검사로 재직하던 지난 2002년 1월 참여연대가 고발했던 삼성 SDS 신주인수권부사채 발행 배임혐의 항고 사건을 맡아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이처럼 삼성 지배권 승계와 관련된 수사를 맡아 무혐의 처리한 검사 출신 변호사가 특검 후보군에 이름이 오르자 민변 등 개혁 성향의 법조인들 사이에서는 특검 후보자 물색 과정에 삼성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설마저 나돌았다.
또한 대한변협이 공안 검사 출신 변호사 두 명을 포함, 검찰 출신 일색으로 최종 후보자 3인을 결정하자 법조계 일각에서는 삼성과 한나라당 그리고 삼성과 청와대와의 교감설까지 흘러나오기도 했다.
특검을 반대하던 노 대통령이 결국 특검을 수용하고 곧바로 한나라당 주장대로 대한변협에 특검 추천권이 넘어간 뒤, 최종적으로 박 변호사가 아예 후보군에서 배제되는 그야말로 삼성에서 원할 법한 시나리오가 실제 연출되면서 이 같은 설은 법조계 내에서 꽤 설득력 있게 퍼져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대한변협에서 추천한 특검 후보 3인 중 정홍원, 고영주 변호사 대신 조준웅 변호사를 선택한 것에 대해선 사실 관계에 대한 법률적 판단만이 아니라 가치 판단에도 중점을 두는 조 변호사의 수사 스타일이 크게 어필했다는 후문이다.
대형 로펌에 소속돼 삼성 사건과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정, 고 두 변호사와는 달리 큰 기업 사건을 수임한 적이 별로 없는 조 변호사의 이력도 감안됐으나 조 변호사가 검찰 재직 시절 대형 사건 수사에서 법률적 판단 외에 사회·정치·경제 등에 미칠 파급 효과까지 다각적으로 감안해 처리의 수위를 결정한 이력들이 임명 과정에서 다른 기준보다 비중 있게 고려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검찰 안팎에서는 조 변호사의 검사 시절 수사 방식에 대해 ‘단죄 없는 유죄 스타일’, ‘최대 공약수를 잘 도출하는 스타일’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법조계 주변에서는 노 대통령이 특수부 검사 출신이 아닌 공안 출신의 조 변호사를 특검으로 임명하자 청와대가 특검 수사 범위 확대를 내심 우려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석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특검을 원래 반대할 의사를 보인 청와대 입장에서는 행여나 수사 과정에서 경영권 승계와 차명 계좌를 통한 비자금 조성 사실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결국 대선자금과 당선축하금 의혹으로까지 수사 역량이 집중되는 흐름 자체가 다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검찰 특별감찰본부의 삼성 비자금 의혹에 대한 수사는 예상외로 일부 삼성 관계자들의 기소까지 가능한 수준에 이른 상황이다. 심지어 검찰은 삼성 측이 만에 하나 문제가 될 만한 것들을 확인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에 접속한 자료들만 추려 압수수색하는 열성까지 보이면서 김 변호사가 제기한 의혹을 상당 부분 입증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 비자금 의혹의 실체가 검찰 수사에서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조 특검’에 방점을 찍은 청와대의 선택이 과연 어떠한 결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유재영 기자 elegan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