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 뉴스 화면 캡처.
온전한 가족을 얻었다고 생각한 아내 B 씨의 행복은 잠시뿐이었다. 결혼 7년째 되던 1992년부터 남편 A 씨의 잦은 가출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 A 씨는 가출을 하면 한동안 생사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연락이 닿질 않았다. 밖으로 나돌던 남편 A 씨는 1997년에는 내연녀와의 사이에서 두 아이까지 낳았다.
남편의 잦은 가출과 외도로 힘들어 하던 아내 B 씨에게 힘이 돼 준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결혼을 그토록 반대했던 시부모였다. 아들이 외도로 혼외자식까지 얻고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시부모는 며느리와 손자를 자신의 명의로 된 건물에 들어와 살도록 했다. 아내 B 씨도 시부모의 배려에 감사해 하며 지극정성으로 시부모를 모셨다. 또 아내 B 씨는 시부모의 도움에만 기대지 않고 과외 교습으로 생활비를 벌어가며 아빠 없는 두 아이들을 살뜰히 돌봤다.
하지만 2009년 또 한 번의 불행이 아내 B 씨를 찾아왔다. B 씨는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한 쪽 가슴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수술 후 아내 B 씨는 대학병원을 오가며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아내 B 씨가 회복하고 있는 와중에 시어머니가 전신마비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에는 시아버지가 대장암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했다.
B 씨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도맡아 했다. 하지만 아내 B 씨의 극진한 간병에도 지난해 4월부터 시아버지의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했다. 결국 시아버지는 병원에서 퇴원해 집으로 돌아왔다.
퇴원한 시아버지를 돌본 사람은 암환자 B 씨였다. 그러던 와중에 아내 B 씨는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가출했던 남편 A 씨가 며느리의 도리를 다한 아내 B 씨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B 씨는 시아버지에게 내색하지 않고 끝까지 병간호를 하며 며느리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B 씨의 시아버지는 퇴원 2달 만인 지난해 6월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아내 B 씨는 남편에게 이혼소장을 받고도 시아버지의 빈소를 끝까지 지켰다.
시아버지의 장례가 끝나자 남편 A 씨의 이혼 요구는 더욱 집요해졌다. 남편 A 씨는 시아버지의 마지막까지 함께한 아내 B 씨가 살던 거주지의 명의를 자신의 앞으로 돌리고는 집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다. 남편 A 씨는 “B 씨가 악의적으로 이혼에 동의하지 않아 혼외자식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는 적반하장식의 주장을 하기도 했다.
지난 24일 서울가정법원은 남편 A 씨가 아내 B 씨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혼인 파탄의 원인은 오히려 남편 A 씨에게 있으므로 그의 이혼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가정법원 가사2단독 권양희 판사는 “아내 B 씨는 자녀들을 훌륭하게 양육했고 본인이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시부모를 간병하는 등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아내 B 씨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반면 남편 A 씨는 수차례 가출하고 생활비 지급도 안 하는 등 배우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적 의무를 저버렸다”며 “이같이 혼인 파탄의 모든 책임이 있는 상태에서 이혼을 청구한 남편 A 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결했다.
결국 배은망덕한 남편 A 씨의 이혼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이혼전문 법무법인 화연 측은 “원고가 이혼청구를 하게 되면 법원은 피고 측에 정당한 이혼사유가 있는지 판단한다. 원고가 얼마나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다. 정당한 이혼청구사유에는 배우자의 부정행위나 정조의무위반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번 판결의 경우 피고인 아내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었기 때문에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진 것”이라며 “이번 같은 경우 역으로 아내가 남편에게 반소(피고가 원고에게 본소의 소송 중에 제기하는 새로운 소송)하게 되면 100%로 승소할 수 있을 뿐더러 위자료까지 청구할 수 있다. 남편에게 ‘혼외자식’이라는 정조의무위반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귀책사유가 있는 배우자가 이혼청구를 하면 혼인제도가 요구하고 있는 동거의무, 정조의무 등에 배치되기 때문에 법원에서는 이혼청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배해경 기자 ilyoh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