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수입차하면 떠오르던 드라마 속 이미지다. 부유층의 상징이나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수입차의 등록대수가 어느새 100만 대를 넘어서면서 프리미엄 이미지도 큰 변화를 겪었다. 수입차가 20~30대 사회초년생도 구매할 수 있다는 이미지가 강해지며 심리적 진입 문턱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이렇게 대중화된 만큼 또 하나의 신화도 깨질 때가 된 듯하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중론이다. 바로 ‘수입차는 무조건 더 안전하다’는 맹신이다.
‘수입차는 무조건 더 안전하다’는 신화가 깨지고 있다. 소비자들도 브랜드를 과신하지 말고 꼼꼼히 비교해보고 구입해야 한다. 지난해 3월 열린 서울모터쇼 전경.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지난 1987년 공식적으로 한국에 처음 수입차가 등록된 지 27년이 지났다. 지난 9월 24일 한국 수입자동차협회는 2014년 8월 기준으로 수입 승용차 등록 대수가 100만 대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는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가 올 하반기 2000만 대를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2000만 대 중 100만 대가 수입차니 모든 차 중 5% 이상이 수입차로 채워진 것이다. 더군다나 승용차로만 따진다면 그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입차 시장은 그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 4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분기 신규 등록된 국산차는 전년 동기대비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반면 수입차는 4만 7845대가 신규 등록돼 전년 동기대비(3만 7009대) 29.3%의 증가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대중화와 인기 속에 일부 소비자들은 수입차의 브랜드만을 과신해 꼼꼼하게 비교하지 않은 채 구입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안전 문제에 있어 수입차에 대해서 과신을 넘어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입차의 ‘안전 신화’는 그 실체가 불분명하다.
정부는 지난 1999년부터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자동차 안전도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이 평가는 자동차 제작사가 평가등급을 높게 받기 위해 보다 안전한 자동차를 제작하도록 유도해 교통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를 줄일 목적도 들어 있다.
지난 3년간 한국자동차안전연구원이 발표한 자동차안전도평가 자료에 따르면 안전도에서 수입차는 국산차와 비교해 격차가 없거나, 오히려 수입차의 안전성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2년 결과부터 보면 최우수 차량은 현대차 ‘싼타페’, 우수 차량은 한국GM ‘말리부’와 기아차 ‘K9’이 선정됐다. 이 평가에 포함된 폭스바겐 ‘CC’, BMW ‘320d’, 도요타 ‘캠리’ 등 수입차들은 일부 2등급을 받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보였다. 특히 폭스바겐 CC는 보행자 평가에서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2013년 평가에 포함된 수입차는 닛산 ‘큐브’, 도요타 ‘프리우스’, BMW ‘520d’, 폭스바겐 ‘티구안’이었다. 4종의 수입차 중 절반인 2종이 1등급을 받지 못했다. 닛산 큐브는 2등급이었고, 폭스바겐 티구안은 3등급이었다. 최하등급인 3등급을 받은 차는 전체 11종 중 폭스바겐 티구안 단 한 종뿐이었다. 국산차와 수입차를 비교해 봐도 준중형인 기아 ‘K3’가 84.8점, BMW ‘520d’가 84.9점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차는 안전도 종합등급 100점 만점에 93.5점을 받은 쉐보레의 ‘트랙스(국산)’였고, 90.3점을 받은 기아 ‘카렌스’가 그 뒤를 이었다.
가격 차이를 감안하면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자동차안전연구원의 한 선임연구원은 “티구안이 3등급을 받은 이유는 보행자안전성에서 점수를 잃었기 때문이다. 보행자안전성 테스트에 대비하지 않은 구형 모델이라 낮은 점수를 받은 것 같다”고 밝혔다. 실제로 티구안은 보행자안전성 시험에서 25점 만점에 9.5점에 그쳤다. 보행자 안전성은 자동차가 주행 중 보행자를 쳤을 때 어느 정도 피해를 줄이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다.
왼쪽부터 현대차 싼타페, 쉐보레 트랙스, 폭스바겐 골프.
올해 안전도 평가는 현재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발표된 차종은 폭스바겐 ‘골프’, 아우디 ‘A6’, 렉서스 ‘ES350’, 기아 ‘쏘울’, 현대 ‘쏘나타’다. 이 중 준중형급인 기아 쏘울을 제외하고는 모두 1등급을 받았다. 현재까지 발표된 차종 중 안전도 평가 1위는 90.3점을 받은 폭스바겐 골프다. 폭스바겐은 지난 2012년, 2013년 폭스바겐 CC, 티구안이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으나 올해는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안전연구원 관계자는 “모든 차종의 결과가 발표되는 것은 시험이 완료되는 12월 중순 쯤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안전성 시험이 주요 국가와 비교했을 때 떨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 시험은 고정벽정면충돌(56㎞/h), 40% 부분정면충돌(64㎞/h), 90도 측면충돌(55㎞/h), 기둥 측면충돌(29㎞/h), 좌석(16㎞/h 후방충돌), 보행자(40㎞/h), 주행전복(80㎞/h), 제동(100㎞/h), 총 8개 항목으로 이뤄져 있다. 미국, 유럽, 일본도 항목은 비슷하지만 이 중 미국은 4개, 유럽은 5개, 일본은 6개 항목을 채택해 우리나라의 항목이 가장 많았다.
앞서의 선임연구원은 “세계 주요 국가들이 각자의 나라마다 다른 기준을 갖고 있어 우리나라의 시험 난이도를 다른 나라와 비교해 높다 낮다고 말하기 어렵다”며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주요 국가들의 시험 난이도는 대체로 비슷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교통안전연구원의 시험 측정을 염두에 두고 자동차를 만들기 때문에 수입차와 국산차의 안전성이 비상식적으로 차이가 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앞서의 선임연구원도 “자동차 제작사들도 어느 정도 측정을 염두에 두고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 때문에 평가 점수가 크게 차이 나진 않는다”고 밝혔다.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급발진 문제도 공식적으로는 인정되지 않지만 안전 문제의 큰 이슈다. 지난 2013년 국정감사에서 이윤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국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9년 급발진 신고현황은 7건에서 2010년 28건, 2011년 34건으로 늘다 2012년 작년대비 400% 증가한 136건으로 폭증했다. 지난 2013년 6월까지 접수된 급발진 신고만 81건에 달해 증가 추세가 이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차도 급발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2009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자동차 급발진 신고 접수 건에는 벤츠 ‘E300’이 4건, BMW ‘528i’가 3건, 혼다 ‘어코드’ 3건, 도요타 ‘ES350’, ‘프리우스’가 각각 2건 등이 포함돼 있었다. 시장점유율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급발진 전문가인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고, 자동변속기를 쓴다면 어떤 자동차 메이커도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BMW코리아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급발진이 검증된 적이 없다”며 “최근에는 급발진 관련 문의가 줄어든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수입차 제값 주고 사시나요? “원가는 묻지마세요 제발~” 수입차 진입 문턱이 많이 낮아졌다고는 해도 국산차와 비교해 턱 없이 비싼 게 사실이다. 수입차 업계의 프로모션이나 캐피탈사, 소액할부 등을 통해 구입하려고 해도 수입차 금액 자체가 너무 높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수입차를 제값에 사는 것일까. 이렇게 수입원가와 판매가가 큰 차이가 나기 때문에 수입차 원가는 업계의 큰 비밀로 여겨진다. 실제 수입차 원가를 묻는 질문에 수입차 업계 관계자들은 일제히 “수입 원가는 말해 줄 수 없는 회사 내부 자료”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수입차 업계는 지난 7월 한·EU FTA(자유무역협정) 발효로 1500㏄ 이상 수입차에 붙던 8%의 관세가 철폐돼 국내 시장에서 유리해졌다. 더군다나 3년 전 1600원 근처를 맴돌던 유로화 환율은 9월 26일 현재 1329원에 거래되고 있어 3년 전과 비교해 약 17% 환율 차익을 보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판매되는 수입차 가격은 요지부동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비판에 BMW코리아 관계자는 “FTA나 환율이 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의미가 있을 정도는 아니었고, 가격 변동 분은 판매가에서 이미 할인해준 것으로 안다”며 “신차가 출시돼서 기능, 옵션 등이 나아졌는데 현재 판매 모델과 과거 모델의 가격이 같다는 것만을 강조하면서 폭리라고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해명했다. 더군다나 이렇게 고객들이 수입차를 살 때 얹혀 있던 가격 거품이 팔 때는 오히려 도로 쭉 빠져 수입차 소비자들은 이중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중고차판매 딜러는 “수입차 중고가는 무상 수리 기간이 끝날 때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후 가격은 수직 낙하”라며 “2007~2009년식 ‘인피티니’ G모델은 시판가가 6000만 원이 좀 안 됐던 차인데 지금은 중고로 1000만 원대 중반 정도면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자동차 모델마다 다르고 옵션, 주행거리, 외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단정할 순 없지만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중고차 가격이 더 빨리 떨어지는 것은 맞는 것 같다”고 밝혔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