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정육점이나 마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이런 생소한 풍경들이 조만간 펼쳐질지도 모른다. 서울시가 개를 현행 축산물가공처리법상 ‘가축’으로 포함시키도록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개는 소 돼지처럼 ‘가축’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개고기가 사실상 합법화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동물협회를 중심으로 거세게 반발하고 있어 법안통과까지는 적지 않은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인터넷을 발칵 뒤집어놓은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 최초로 ‘보신닷컴’이라는 개고기 판매 사이트가 오픈한 것이다. 1.8kg, 3.6kg, 5.4kg 식의 팩 상품은 물론 15~24kg의 통개까지 판매하는 이 사이트는 직접 시장에서 사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일 잡은 개를 다음날 배송하는 파격적인 판매방식을 내세웠다.
하지만 ‘진화하는 개고기’라는 모토를 내걸고 야심차게 영업을 개시한 이 사이트는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아 문을 연 지 단 하루 만에 전격 폐쇄, 현재는 전화주문만 받고 있는 상태다. ‘보신닷컴’을 둘러싼 해프닝만 보더라도 아직까지 개고기는 우리 사회에서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음식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개고기는 더 이상 복날에만 먹는 특수 음식은 아니다. 이미 보신탕은 일부 사람들에게는 다른 보양식들과 마찬가지로 즐겨찾는 인기 메뉴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실제로 2006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도축되어 유통되는 개는 연간 200만 마리 정도. 하지만 상당히 큰 시장이 형성되어 있는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개는 ‘고기’로 인정되지 못해 다른 ‘고기’들이 거치는 각종 규제와 관리에서 제외되어 왔다.
현재 축산물가공처리법상 가축에 포함되는 동물은 소 돼지 닭 오리 칠면조 사슴 당나귀 등 총 13종. 개가 가축에 포함될 경우 개를 취급하는 업소는 도축 과정은 물론 조리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위생검사를 받게 된다.
사실상 그간 개고기는 불법과 합법 그 어느쪽에도 속하지 않는 어정쩡한 위치에 있었다. 동물보호 시민단체 측의 설명에 따르면 개고기는 지난 1975년 합법적 도축과 식육검사가 가능한 가축에 포함됐지만 78년에 축가공법에서 빠졌다. 따라서 그간 개고기는 도살 현장은 물론 유통과정에도 아무런 감시나 제재를 받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있는 개를 바로 잡아서 순식간에 ‘고기’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유명한 재래시장에는 값싸고 싱싱한 개고기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한 풍경들이 발견된다. 개들이 갇혀 있는 우리 안에는 소위 식용견으로 얘기되는 ‘누렁이’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 보신탕집을 운영한 A 씨는 “못 먹는 개가 어딨어. 털 뽑고 삶아 놓으면 다 똑같아요. 양념까지 해놓으면 맛도 비슷하고…”라고 귀띔했다. A 씨에 따르면 버려진 애완견들은 근수가 나가지 않아 식견으로 가치가 없지만 싼 맛에 사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것. “애완견이 식용으로 쓰이는 현상은 IMF 이후 유기견들이 급격히 증가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한때 우리 집은 수십 마리를 마리당 만 원도 안되는 값에 사들이기도 했다. 고기가 되지 않는 놈들은 개소주감이었다”는 것이 A 씨의 말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여지껏 고기로 유통되는 개들의 위생상태나 건강상태를 도무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개 팔겠다고 데려오는데 누가 일일이 건강검진 하고 사겠는가. 값만 맞으면 사들이지. 떠돌이견은 물론이고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견이나 약물중독견, 피부병 걸린 개, 임신한 개, 항생제 과다투여로 반죽음이 된 개들도 거래되는 것을 봤다”는 A 씨의 얘기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물론 개고기를 취급하는 업주나 식당 주인들이 들으면 펄쩍 뛸 만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길러진 건강한 토종 누렁이만 취급한다. 도살부터 요리까지 철저히 위생적인 환경에서 진행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주장.
누구의 말이 사실이건 분명한 것은 그간 개 시장은 불법도 합법도 아닌 ‘무법’하에 운영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식용 개고기가 양성화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일단 개고기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두 손을 들고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개=혐오식품’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모란시장에서 개고기를 판매하는 한 상인은 “개고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상 개고기도 진작부터 ‘고기’로 다뤄졌어야 했다. 소고기 돼지고기처럼 개고기도 선택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다른 업자는 개가 축산물가공처리법상 가축으로 등재되면 음지에서 행해지고 있는 잔인한 도축도 사라질 뿐 아니라 철저한 식육검사로 인해 소비자 입장에서도 질 좋고 위생적인 음식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출처와 원산지가 확실한 ‘식견’들만 고기로 쓰일 것이기 때문에 유기견과 병든 개가 버젓이 유통될리도 없다는 것.
하지만 동물애호단체 관계자들은 “애완견도 개식용을 하는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식용견이 된다. 사람과 가장 가까운 반려동물인 개를 식용으로 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또 “식품위생을 법제화했다고 해서 그 식품의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합법화되어 관리절차를 거친 육류에서도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같은 질병이 문제되고 있듯이 개고기를 가축으로 포함시켜 정기적인 관리를 받게 한다고 해서 현재의 위생문제 등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개고기 합법화를 둘러싼 양측의 치열한 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