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누리당 의원들은 교실 안에서 선생님 마음을 사고자 ‘보이지 않는 손’을 눈치껏 드느라 야단인 모양새다. 여기서 선생님은 김무성 당 대표. “개헌 숙제를 해 왔니?”라는 물음에 “네 저요, 저요”하며 손을 든다. 그것도 눈치껏. 자칫 ‘무대(무성 대장) 쪽으로 갈아탔다’는 말이 나오면 여기저기서 뒷말이 나와 곤혹스럽기 때문이란다.
김무성 대표가 개헌론 불지피기에서 슬쩍 발을 뺐다. 이종현 기자
그런데 이런 이야기들이 다 김 대표 마음에 들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 동향에 밝은 여권 인사의 이야기는 이랬다.
“지난 8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김 대표가 ‘정기국회 이후 개헌을 논의하는 게 맞다’고 이야기했다. 그 뒤로 우후죽순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촉발됐고, 내후년 총선까지 선거가 없는 이때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는 것에 야권까지 동조하고 나섰다. 여야가 현안에 대해 이견 없이 가는 주제는 개헌뿐이다. 그걸 촉발한 사람이 김 대표니 차기 총선 영향력이 가장 큰 김 대표 마음에 들고자 여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개헌, 개헌하는 것 아니겠는가. 김 대표가 어떤 의원들이 개헌에 적극적인가를 두고 충성도와 진정성을 확인할 수도 있고.”
그런데 최근 김 대표가 개헌에 대한 꼬리를 슬쩍 내렸다. 일부 측근들과 만난 자리에서 “보수혁신의 기틀을 잡고 그 문화를 정착시키는 작업을 하고 나서 개헌을 얘기하자”고 했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김 대표의 말과는 달리 오히려 개헌론은 더욱 촉발되고 있다.
여야 의원이 섞여 있는 국회 내 개헌연구모임은 오는 11월 ‘2020년 체제를 위한 정치개혁과 개헌의 방향 : 합의제 민주주의’를 주제로 세미나를 연다. 정기국회 중에 국회개헌특위를 구성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새누리당 최고위원·중진연석회의에서 이재오 의원을 비롯 해 이인제, 김태호 최고위원 등이 개헌을 더욱 강하게 이야기했다. 이에 대한 해석도 꽤 설득력 있어 소개한다. 한 당직자는 이렇게 말했다.
“김 대표로서는 이 시점에서 BH(청와대)와 각을 세울 필요가 없다. 개헌론은 박근혜 대통령과 BH가 가장 불쾌하게 여기는 이슈 중 하나인데 김 대표가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가는 마찰과 갈등을 빚게 된다. 그러니 김 대표가 슬쩍 빠지고 김 대표의 의중을 아는 호위무사들이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퍼뜨리는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의석수가 158석으로 단독 개헌 발의가 가능한데, 여기에다 야권까지 동조하고 있으니 일부러 김 대표가 나서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형님은 빠지시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김무성 형님’에게 잘 보이려는 움직임은 비단 이뿐 아니다. 김 대표의 중국행에 동행하려는 의원들이 치열한 로비전을 펼치고 있다는 후문이다. 김 대표에게 직접 읍소하는 형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루트로 의견을 전달하는 이도 꽤 된다고 한다. 김 대표와 친한 기자들에게 진행 상황을 묻는 쪽도 있다.
9월 24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이재오 의원이 개헌 관련 발언을 하는 모습. 이종현 기자
일단 김 대표의 중국 방문에 김문수 보수혁신특별위원장과 개헌 전도사 격인 이재오 의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한중의원외교협회장까지 맡고 있다. ‘방중단을 매머드급으로 구성한단다’고 알려지자 너도나도 손을 들고 있다 한다. 이밖에 거론되는 인물은 조원진 한중의원외교협회 간사와 김세연, 김성태 의원, 당 국제위원장을 맡은 김종훈 의원 등이다.
이런 김 대표의 외국행이 박 대통령과 묘하게 닮은꼴이란 해석을 낳고 있다. 박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해외로 떠날 때 여러 의원이 동행하고자 로비를 치열하게 벌였다. 몇몇 의원들이 확정되면 모두 “로또 맞았다”고 할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국외순방 때 측근보다는 ‘내 사람이 될 사람인가’를 눈여겨봤다고 전해진다. 긴가민가한 의원들과 함께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는 것.
이런 박 대통령의 ‘특사정치’와 김 대표의 ‘동행정치’가 비교되면서 “김 대표가 박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회자한다. 그래서 김 대표 쪽에서는 방중단과 동행할 언론사가 얼마나 될지 파악하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박 대통령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중했을 때 10개사가 동행했다. 2011년 유럽행에는 22개 언론사가 따라갔다. 당시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까지 망라됐다. 동행 언론사 규모가 현재 권력의 척도가 될 판이니 김 대표 측이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가 이번에 중국을 가면 대표 취임 후 첫 국외 방문이 된다. 그래서 이번 방중단 명단을 두고 자칫 친박 쪽 인사가 포함되지 않을 땐 친박의 반발이 클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개헌론에 대해 친박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닌 때다.
김 대표 마음을 얻고자 의원들이 분투하는 중에 김 대표의 ‘사모님’이 만찬을 소집한 것을 두고 말들을 낳고 있다. 부인 최양옥 씨가 자당 의원들의 부인 90여 명과 예술의전당 한 뷔페식당에서 2시간여 동안 만찬을 했다는 것이다. 최 여사는 참석자들과 정치인 아내로서의 고충을 언급하며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단다. 이것이 ‘내조정치’의 시작으로 해석되면서 김 대표의 대권행이 확실해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 씨는 1인당 4만 2900원인 식대 400만여 원을 자비로 계산했고, 식사 뒤에는 ‘대한민국 국제음악제’를 이들과 함께 관람했다.
요즘 김무성 대표는 경제 용어를 외우고 재정을 공부하는 등 경제 콘텐츠 학습에 분주하다. 과거 박 대통령도 이한구 의원 등을 경제과외교사로 모시고(?) 경제 분야를 공부한 바 있다. 김 대표는 박 대통령이 걸어간 대권가도를 끝까지 밟고 갈 수 있을까.
선우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