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주인공은 장병연 씨(가명·70)와 그의 네 살 어린 동생 장병준 씨(가명·66). 이들이 이름을 바꿀 생각을 품게 된 것은 형 장 씨가 입영통지를 받게 되면서다. 48년 전인 지난 1960년 영장을 받은 형 장 씨(당시 22세)가 동생을 대신 군대에 보냈던 것. 하지만 이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들의 ‘목’에 평생 ‘대리인생’이라는 굴레가 씌워질 줄은 몰랐다고.
군대만 다녀오면 끝날 줄 알았던 이들의 행각이 2년 뒤인 1962년 주민등록법이 시행되면서 꼬이고 말았다. 동생이 대신 입영한 사실이 발각되면 처벌을 받을 것을 우려한 형제가 결국 서로 이름과 생일을 바꿔서 주민등록을 하게 된 것.
서로 주민등록상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니 이 두 형제는 그리 불편함을 모르고 살았다고 한다. 학창시절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새로 입사하게 된 회사에서도 자신들의 ‘본래 이름’을 불러줬다는 것.
그런데 두 형제가 드디어 ‘정체성의 혼란’에 빠지게 된 계기가 있었으니 이는 바로 결혼. 혼인신고는 각각 형수와 제수를 아내로 등재해야 하는 애매한 상황이 발생했고 ‘금지옥엽’같은 자녀들은 서류상에 ‘조카’로 올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던 것.
결국 참다못한 이들 형제가 ‘이름 찾기’ 소송을 시작하게 된 것은 신분이 뒤바뀐 지 약 42년 만의 일이었다. 지난 2004년 형 장 씨는 ‘서류상 배우자에 대한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해 승소를 했고 두 달 뒤 동생 장 씨도 형을 따라 ‘형수와의 부부관계’를 청산했다.
그리고 지난 2006년 12월경 서울가정법원에서 형 장 씨의 아내 A 씨는 “시동생과 나의 자녀 사이가 ‘친생자 관계’가 아님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이를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드디어 이들 형제의 황당한 50년 사의 매듭이 풀리게 된 것.
그런데 지난 2006년에도 이와 상당히 비슷한 사례가 있어 눈길을 끈다. 2006년의 사례 역시 원고들이 ‘형제간의 대리 군입대’로 꼬여버렸다는 것까지 똑같지만 ‘동생 대신 형이 군대에 갔다’는 차이뿐.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신분을 찾아 달라”는 이들의 주장을 법원이 아예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건은 지난 1962년 주민등록법이 최초로 시행된 해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태잡이 선원으로 일하던 A 씨는 군필자만 선원증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이 바뀌자 이미 병역을 마친 형 B 씨에게 “호적상 신분을 바꿔 달라”고 부탁을 하게 됐다. 이들 역시 결혼 후 각각 ‘형수’와 ‘제수’ 그리고 ‘조카’가 서류상의 부인과 자녀들이 됐음은 마찬가지.
이렇게 40여 년이 지나서 이들의 이상한 관계에 반발하고 나선 것은 자녀들. B 씨의 자녀는 지난 2006년 “호적상의 작은 아버지가 진짜 아버지”라고 가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서울 가정법원 이헌영 판사는 이 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2006년의 사건은 형제가 뒤바뀐 인생대로 살겠다고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 자제들이 본래대로 해달라고 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기 때문에 권리보호이익에 부합하지 않다고 봐 각하됐다”고 말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