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S를 둘러싸고 여론조사업계 내부에서 심각한 갈등이 일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선거여론조사 기준 마련 공청회 모습. 연합뉴스
지난 9월 26일 국회 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있었던 ‘선거여론조사 전문가 토론회’ 현장. 이 토론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가 주관했으며, 지난 6·4 지방선거와 7·28 재·보궐 선거의 각종 여론조사에 대한 평가와 개선방안을 위한 자리였다.
첫 번째 섹션 말미에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신기현 전북대 교수는 2012년 미국 대선 기간 가장 정확했던 조사업체 20개사의 분포를 공개했다. 해당 자료에 따르면 상위 업체 중 전화면접이 9건, ARS가 5건, 인터넷 조사가 6건 등 조사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분포를 보였다. 신 교수는 해당 자료를 통해 “전통적인 전화면접 방식뿐 아니라 ARS를 포함한 다양한 방식에 대해 재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을 이었다.
그런데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보던 한 조사업체 관계자가 불쾌함을 드러냈다. 발언권을 얻은 그는 신 교수를 향해 “어찌됐건 그 분포자료에 따르면 전화면접 조사가 9개를 차지해 5개를 차지한 ARS 조사보다 앞선 것 아니냐”며 “이미 우리 업체를 포함한 한국조사협회 42개사는 정확성을 문제 삼아 이제 더 이상 ARS 조사를 수행하지 않기로 결의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벌어진 묘한 신경전은 현재 ARS를 둘러싸고 여론조사 업계 내부에서 일고 있는 갈등과 논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실제로 한국조사협회(회장 신은희 닐슨코리아 대표)는 지난 7월 17일, 더 이상 ARS 여론조사를 수행하지 않기로 결의했다. 협회 회원사 42개사는 닐슨컴퍼니코리아, 한국갤럽, 한국리서치, 밀워드브라운미디어리서치 등 국내 여론조사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소위 메이저 업체들이다. 협회는 당시 결의문을 통해 “6·4 지방선거 과정에서 ARS 조사가 마치 과학적인 여론조사의 한 방법인 것처럼 포장되고 그 비과학성이 드러남에 따라 조사를 수행하지 않을 것으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협회 관계자는 <일요신문>과 만나 이렇게 부연 설명했다.
“가장 큰 이유는 결국 ARS로 인해 여론조사 전체의 정확성과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업계 시장 전체가 타격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정치 조사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 크다. 조사시장의 10%에 불과하지만 파급력만큼은 엄청나다. ARS 조사가 당장은 돈이 되겠지만, 길게 보면 업계 전체의 물을 흐리고 시장을 악화시킬 것이다. 혹자는 이를 두고 업계 내부의 암적 존재로 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가. 이 관계자는 크게 ‘낮은 응답률’과 ‘가중치’를 꼽았다.
“전화 면접조사는 조사에 앞서 미리 쿼터를 나누고 엄격한 표집 틀에 따라 진행하지만, ARS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응답률 자체가 낮다. 전화면접의 3분의 1 수준이다. 특히 어린 연령층 쿼터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표본 편중 현상이 나타난다. 그 문제의 해결로 가중치를 적용한다지만, 결국 이는 표본의 대표성에 적잖은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논란과는 별개로 ARS 조사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꾸준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저렴하기 때문이다. ARS 조사의 가격은 같은 표본을 적용할 때, 전화면접 조사의 3분의 1 정도다. 일부 영세 업체들은 더 낮은 가격을 부르기도 한다. 무엇보다 기계를 통해 동시다발적으로 조사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효율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시장의 문턱도 낮다. 기계만 있으면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 ARS 조사를 주 종목으로 하는 업체들 상당수는 영세 업체들이다.
ARS 주력 업체들 역시 할 말은 있다. ARS 조사 업계를 대표하는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앞선 메이저 업계의 조치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며, 다른 시각으로 이를 바라봤다. 한마디로 메이저 업체들의 앞선 조치는 ‘본인들의 밥그릇 챙기기’란 논리다.
“이유는 ‘이거 하면 훗날 우리 전체 매출액이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본인들은 1000만 원에 진행해야 하는데 옆집에선 300만 원에 진행하니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다는 것이다. ARS 조사라고 정확도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난 대선, 한 방송사가 여론조사업체에 전화면접조사를 의뢰해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빗나갔다. 물론 일부 영세 업체들이 문제가 있는 것은 우리도 인정하고, 가중치 적용에 대한 외부의 비판 역시 충분히 수용한다. 하지만 결국 선택은 시장이 한다. 현재 ARS 조사는 시장이 원하고 있다. 문제가 있다면,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걸러질 것이다.”
이택수 대표는 오히려 조사의 종류와 환경에 따라 적합한 조사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론조사 선진국 미국에서 ARS 조사는 잘 이용되고 있다. 특히 동성애, 인종문제 등 예민한 사안에 있어선 오히려 전화면접보다 ARS 조사를 선호한다. ARS 조사에 단점이 있지만, 전화면접 역시 단점은 있다. 사람이 직접 묻기 때문에 예민한 사안에 있어서 응답자가 솔직한 답변을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국의 정치 조사 역시 비슷한 경우다. 오히려 정치 조사에 있어선 ARS방식이 적합할 수도 있다.”
ARS 조사를 둘러싼 업계 양측의 입장은 각자 명확하고도 단호하다. 양측 모두 ‘정확한 조사결과’란 지향점은 매한 가지다. 단지 거기에 도달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갈릴 뿐이다. 이런 방법론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내부 갈등 현상은 사실 어떤 분야에서나 흔히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문제가 일단락되거나 최소한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과정은 결국 각 진영의 ‘성과’에서 결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ARS 조사를 두고 양분되는 조사업계 내부의 경쟁은 결국 어떤 진영이 ‘정확한 조사 결과’라는 지향점과 가까운 성과를 도출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