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는 ‘영양 주사’ 한 방이면 피로회복은 물론이고 노화방지, 탈모예방, 숙취해소 등의 효과가 있다며 직장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스스로를 ‘주사 마니아’라 부르는 최 씨는 “시중에 유통되는 주사들은 거의 다 맞아봤다. 가격은 주사 종류나 병원에 따라 다르다. 보통 2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다. 시간은 20분에서 1시간 정도다. 몸이 많이 안 좋을 때는 두 가지 이상을 섞어 맞을 때도 있다”며 “지금은 한 달에 3~4번 정도 주사를 맞는데 병원에 다녀오면 기분은 좋다. 뭐라고 콕 집어서 어디가 좋다고 말하긴 어려운데 몸이 가볍고 피부가 좋아지는 느낌은 든다”고 말했다.
과음과 야근을 달고 사는 안 아무개 씨(37)도 ‘영양 주사’ 없이는 못사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시작은 포도당 주사였다. 신입시절 과음한 뒷날 힘들어하는 안 씨에게 직장동료가 포도당 주사를 권했다. 피로회복과 숙취해소에 좋다며 점심시간에 잠깐 다녀오라고 했던 것. 바로 병원을 찾았던 안 씨는 ‘구세주’를 만난 느낌이었다고 한다.
안 씨는 “오전 내내 죽을 것 같았는데 수액을 맞고 한숨 잤더니 몸이 가벼웠다. 그 뒤로 영양 주사에 관심이 생겨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요즘은 정기적으로 맞고 있다. 술 마신 다음날에는 ‘감초 주사’를 맞고 피부가 안 좋아지면 ‘백옥 주사’나 ‘물광 주사’도 맞는다”며 “운동할 시간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 주사를 맞아 얻을 수 있는 효과도 있지만 마음의 위안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언급한 ‘마늘 주사’ ‘감초 주사’ ‘백옥 주사’ 등은 최근 유행하고 있는 영양 주사의 일부다. 이외에도 ‘아이언맨 주사’ ‘신데렐라 주사’ ‘칵테일 주사’ 등 다양한 영양 주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처럼 영양 주사를 찾는 직장인들이 늘어나자 내과, 외과, 피부과, 성형외과, 비뇨기과 등에서부터 한의원, 치과까지 나서 영양 주사를 홍보하고 있는데 문제는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음에도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병원들은 영양 주사를 거의 만병통치약 수준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기자가 직접 영양 주사를 취급하는 병원들을 찾아가 설명을 들어보니 피로회복, 피부개선, 스트레스 해소, 간 기능 향상, 탈모 예방, 스태미나 증강 등 효과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해 주의를 주는 병원은 없었다.
‘마늘 주사’를 취급하는 한 가정의학과를 찾아가 간호사에게 피로 때문에 주사를 맞고 싶다고 말하자 진료실이 아닌 입원실로 바로 데려가려 했다. 의사와의 상담을 요청했더니 대뜸 “진료비가 청구돼 더 비싸다”는 차가운 대답이 돌아왔다.
어렵게 만난 의사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기자의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마늘 주사’의 효능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다 만성피로 때문에 몸이 처지는 겁니다. 좋은 성분만 뽑아서 주사로 만들었으니 효과는 장담합니다. 의사들도 맞는다니까요. 주사 맞고 나면 몸이 한결 가벼워지고 피부 트러블도 개선돼요. 정기적으로 맞아야 효과가 좋습니다. 5회권을 끊으면 1회 서비스 해드릴 테니 맞고 가세요.”
다음은 평소 진료를 받던 치과를 가봤다. 정기 검진을 끝내고 실장이라 불리는 직원에게 영양 주사에 대해 물었더니 “우리도 뷰티 클리닉을 함께 하고 있다”며 여러 팸플릿을 꺼내 놨다. 앞서의 병원에서 봤던 ‘마늘 주사’뿐만 아니라 ‘감초 주사’ ‘신데렐라 주사’ ‘백옥 주사’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이곳 역시 의사와의 상담 절차는 없었다. 실장에게 증상을 얘기하면 주사를 추천 받고 가격을 알려주는 식이었다. 다만 따로 복용하고 있는 약은 있는지에 대해 묻긴 했다. 약 3분 정도의 상담 결과는 ‘마늘 주사’를 맞으라는 것이었다. 더 좋은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백옥 주사까지 섞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실장은 “마늘 주사는 2만 원이고 백옥 주사는 4만 원이에요. 마늘로 피로회복하고 백옥으로 피부 관리하면 딱 좋아요. 우린 다른 병원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니 섞어 맞아도 크게 부담이 안 돼요. 오늘 치과 진료도 받으셨으니 특별히 5만 원에 해드릴게요. 한 번만 맞아도 효과 보실 수 있어요”라며 끊임없이 설득했다.
결국 병원 한 구석에 마련된 회복실에서 마늘 주사만 맞기로 했다. 침대에 누워있으면 간호사가 일반 포도당 수액을 맞는 것처럼 바늘을 꽂아주고 나간다. 그렇게 20분 동안 수액이 떨어지길 기다리면 끝. 큰 통증은 없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누워서 휴식을 취한 덕분인지 한결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특유의 마늘 냄새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실장이 말하던 드라마틱한 효과는 없었다. 이튿날 아침 기상도 여전히 힘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출근 후 동료들로부터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느냐”는 말까지 들어야했다. 한 번의 주사로 노화방지, 피부 트러블 개선, 기력 향상 등을 바라는 건 애초부터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밀려오는 실망감은 어쩔 수 없었다.
이윤수 비뇨기과 원장은 “영양 주사가 아예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과음 후 숙취에 시달릴 땐 수액을 맞으면 빨리 회복이 된다. 그러나 수액에 갖가지 영양제를 섞어 비싸게 파는 주사들이 홍보하는 것만큼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기분상 몸이 가벼워질 수도 있고 주사를 맞는 동안 취하는 휴식 덕분일수도 있다”며 “효과를 너무 기대하진 말고 정말 몸이 피곤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충분한 검사 후 필요한 부분만 보충해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