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구 씨티은행장(왼쪽)이 현직을 유지한 채 경쟁사인 KB금융 회장직에 도전한 것으로 알려져 양쪽 은행 내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지난 2일 회추위는 제3차 회의를 열고 전체 후보군에서 심의를 거쳐 1차 압축 후보군 9명을 결정해 발표했다. 1차 후보군은 김기홍 전 KB국민은행 수석부행장, 김옥찬 전 KB국민은행 부행장, 양승우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회장, 윤종규 전 KB금융지주 부사장, 이동걸 전 신한금융투자 부회장, 이철휘 서울신문 대표이사,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 하영구 씨티은행장이었다. 이들을 내·외부로 나눠보면 내부인사가 5명에 외부인사가 4명이었다.
회추위의 1차 압축 후보군 발표가 나자 임영록 전 회장과 이건호 전 행장의 다툼 속에 KB가 풍비박산 난 만큼 이번에는 내부인사가 회장에 올라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받았다. 국민은행 노조(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위원장 성낙조)가 맨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회추위도 제3차 본회의에 앞서 먼저 국민은행 노조와의 간담회를 개최했고 노조는 회추위에 내부 출신을 CEO로 선임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2008년 지주 출범 이후 황영기, 어윤대, 임영록으로 이어지는 외부 출신 회장들이 하나같이 문제가 됐던 것도 중요한 근거였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낙하산 타고 내려와 총칼로 군림하는 리더십이 아니라 치유하고 갈등을 통합하는 어머니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특정 인물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회장직에는 KB금융 출신 인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KB금융 안팎의 이 같은 공감대에 따라 업계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된 이는 김옥찬 전 부행장이었다. 1982년 국민은행에 입행한 뒤 지난해까지 31년 동안 KB금융에서 일한 김 전 부행장은 9명의 후보군 중 유일한 ‘순혈’이기 때문이다. KB금융 내부인사로 꼽히긴 하지만 지동현 전 KB국민카드 부사장과 김기홍 전 수석부행장은 교수 출신이다. 윤종규 전 부사장은 2002년 삼일회계법인 부대표에서 KB금융으로 영입된 케이스고, 황영기 전 KB금융 회장은 삼성물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럼에도 지난 8일 김옥찬 전 부행장은 이철휘 서울신문 사장에 이어 두 번째로 자진 사퇴했다. 김옥찬 전 부행장의 돌연 사퇴 이유를 놓고 여러 설들이 무성하다. 가장 유력한 것은 그가 서울보증보험 사장에 내정됐다는 설이다. 그 이유야 어찌됐든 가장 강력했던 후보가 하차하면서 최종 회장 후보는 오리무중이 됐다.
하 행장이 현직을 유지하면서 경쟁사인 KB금융으로 이직하겠다는 의사를 당당하게 표명하자 씨티은행뿐만 아니라 KB금융 내부도 당혹스런 표정이다. 일각에서는 하 행장의 당당한 행보를 두고 하 행장이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러는 것 아니겠느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하 행장은 지난 2007년 조윤선 현 청와대 정무수석을 씨티은행 부행장으로 영입하는 등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가 눈길을 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한국씨티은행지부 김영준 위원장은 “오히려 씨티은행 내부는 차분한 편이다. 이참에 아예 떠나버렸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직을 추슬러야 하는데 딴 생각이나 하고 있다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노조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며 “지금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4명으로 압축되는 2차 후보군 발표에서도 하 행장이 포함되면 그때는 여러 가지 방법들을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KB금융 회장 선임의 가장 큰 분수령은 16일 회추위의 2차 압축 후보군 발표에 있다. 이때 현재 7명인 회장 후보가 4명으로 줄어든다. 최종 후보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나는 셈이다. 회추위는 2차 압축 후보군 4명을 대상으로 심층면접을 거쳐 빠르면 10월 말쯤 최종 회장 후보자 1인을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선정된 최종 회장 후보는 오는 11월 21일 KB금융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차기 회장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KB금융에 새로운 수장이 부임하면 이건호 전 행장 사퇴 이후 공석으로 남아 있는 국민은행장 문제도 가닥이 잡힐 전망이다. KB금융이 회장과 행장 간의 갈등으로 문제가 커진 만큼 이번에는 회장이 국민은행장도 겸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국민은행 노조 관계자는 “KB금융은 현재 조직 안정이 필요하고 통합의 리더십이 요구되기 때문에 임시로라도 겸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KB금융 관계자는 “회장이 행장을 겸임하느냐, 마느냐로 갑론을박이 있는만큼, 일단은 회장을 선출한 뒤 행장의 겸임 여부에 대해 신임 회장의 의견을 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