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6월 26일 쇠고기 고시관련 관계장관 회의에 앞서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
결과에 대한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미국에서의 7일간의 추가협상 과정에 대해서도 뒷이야기가 무성하다. ‘협상 결렬’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57)이 귀국한다는 얘기가 들렸는가 하면 청와대가 그의 귀국을 막았다는 소문도 있었고 미국 무역대표부 수잔 슈워브가 협상장에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까지 보도된 바 있다.
당시는 만약 추가협상이라도 되지 않으면 현 정권이 좌초될지도 모르는 시국이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김 본부장은 “더 이상 협상이 안 되니, 돌아가겠다”는 ‘벼랑 끝 전술’을 펼쳤다고 한다.
6월 13일부터 19일까지 긴박했던 7일간의 비화를 김 본부장과 함께 미국에서 협상을 이끌었던 최종현 외교통상부 지역통상국장(51)과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들에게 들어보았다.
6월 13일 김종훈 본부장이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는 87년 이후 최대 인원이 시위에 참가한 6월 10일 촛불시위가 있은 지 사흘 후였다. 촛불 시위대는 ‘정권 퇴진’ ‘대통령 하야’를 외칠 정도로 시국은 위기감으로 가득했다. 이런 상황에서 쇠고기 추가협상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김 본부장과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들은 비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농림부와 통상교섭본부 관계자들이 미국의 실무자들과 접촉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전은 없었다. 김 본부장이 급파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었다. 그와 미국 무역대표부 수전 슈워브의 고위급 회담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었다.
통상교섭본부에 의하면 이번 추가협상을 통해 한국 측이 얻어낸 것은 세 가지라고 한다.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차단, 국내 검역 및 미국 도축장의 정부 검역권한 강화, 4개 부위(뇌 눈 척수 머리뼈)의 수입차단’.
최종현 지역통상국장에 따르면 추가협상 초반에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차단’을 비교적 쉽게 결론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머지 두 개가 문제였다. 그는 “미국 도축장의 정부 검역권한 강화가 협상의 최대 걸림돌이었다”라고 전한다.
6월 15일 협상의 진전이 없자 김 본부장이 “돌아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묵고 있었던 호텔을 체크아웃하고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워싱턴에서 뉴욕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뉴욕발 인천행 새벽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였다. 뉴욕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 공항으로 가는 도중 미국 측에서 연락이 왔다. “다시 한번 얘기해 보자”는 것이었다.
협상 결렬을 선언한 후 미국에서 여러 번 접촉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 측 대표단은 “더 이상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미국 정부는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를 통해 한국 정부에 연락을 취했다. “한국 대표단이 귀국하려고 하니 막아달라”는 얘기였다. 한국 정부에서 다시 뉴욕에 있는 협상단에 연락을 했고 결국 간발의 차이로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 청와대로 가려는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물대포를 뿌려대고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최 국장은 이 벼랑 끝 전술에 관해 “협상은 누가 더 유리한 위치를 점령하느냐의 싸움이다”며 “흔히 워크 아웃(Walk Out)이라고 부르는 벼랑 끝 전술은 협상 과정에서 가끔 등장하는방법이다”고 말했다.
청와대에도 “귀국한다”는 보고를 했다. 통상교섭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청와대는 현장에 있는 협상단의 판단에 맡긴다는 분위기였으며, 귀국이 일종의 전술이라는 점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즉 청와대가 귀국을 말리지는 않았다는 얘기다.
김 본부장이 협상장에서 주요 무기로 사용한 것은 6월 10일 촛불문화제 사진이다. 당시 미국 현지의 유력 언론에서는 촛불문화제를 1면으로 보도하고 있었다. 김 본부장은 사진을 준비해 협상이 난항에 빠질 때마다 테이블 위에 수십만 명이 모인 촛불문화제 사진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당시 김 본부장은 사진을 보여주며 “이런 일이 미국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해봐라. 이 사진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겠느냐. 협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미국에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며 미국 측 협상단을 압박했다고 한다.
국내 언론에서는 “끝없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김 본부장과 ‘한국의 주장을 가능하면 들어주라’는 백악관의 지침에 끼어 협상 주도권을 상실한 수전 슈워브 대표가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고 한다.
최 국장은 “외교 협상장에서 눈물을 보이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나중에 협상이 끝난 후 슈워브 대표가 미국 내 관계부처 회의에서 눈물을 보였다는 후문은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일이 와전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외교 협상은 고도의 심리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상장에 나서면 상대의 손짓, 말투, 표정 등까지 읽으며 심리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야 한다”며 “양국 협상단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눈물을 보이는 약한 모습은 절대 보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나 추가협상단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반응은 좋지 않았다. 추가협상 결과를 고지하고 관보에 올린 지 며칠이 지났지만 국민들의 쇠고기협상에 대한 반대 여론이 그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고지 후에 서명을 해주겠다고 한 미국 측의 태도가 알려지면서 여론은 ‘또 한번 굴욕외교를 했다’는 입장을 보이며 들끓고 있다. 여기에 최근 미국에서 있었던 두 차례에 걸친 쇠고기 리콜 사태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촛불도 사그라들기는커녕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촛불집회 참석자들과 시민단체들은 “추가협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국민들의 건강은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다”고 얘기한다.
시민단체들은 추가협상 결과에 대해 불신이 이렇게 계속되는 데는 유럽 등지에서 광우병 위험물질로 분류된 내장을 수입하는 문제, 검역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문제 등에 근본 원인이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현 정부의 신뢰할 수 없는 모습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쇠고기 협상보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힘을 쏟자”는 정부의 주장은 그래서 더 공허하게 들린다는 것이 네티즌들의 이야기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