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영화 <의뢰인> 중 한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문제는 두 사람도 박 대리 못지않게 취해있었다는 것.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들었던 두 사람은 박 씨를 업은 채로 주저앉거나 옆으로 넘어지면서 겨우겨우 박 씨를 집까지 데려다 줬다.
두 사람은 ‘술 취한 직장 동료를 집에 데려다 줬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몇 달 뒤, 박 대리는 그 당시 넘어지면서 받은 충격으로 후두부 골절과 경막성 뇌출혈 등 상해를 입었다며 두 사람을 상대로 2억여원 상당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마용주 부장판사)는 지난 2일 최 과장과 최 대리에게 “1억 1500여 만 원을 배상하라”며 박 씨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박 씨를 집에 데려다 주기로 한 이상, 박 씨를 안전히 집에 데려다 주거나 보호자에게 인계해 줄 신의칙상 주의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재판부는 “두 사람이 자원해 자신들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박 씨를 데려다 주는 등 호의를 베푼 점을 고려했다”고 했지만 ‘억대’ 배상금은 유지했다. 이에 대해 온라인에서는 “여자들이 쓰러져 있어도 모른 체 하도록 하는 판결”이라며 재판부를 조롱하는 등 국민의 ‘법 감정’과 다른 판결을 질타했다.
이처럼 국민의 법 감정과 배치되는 ‘황당 판결’은 사법부 신뢰를 저하시키는데 일조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차행전 부장판사)는 수개월간 의무경찰대원들을 성추행한 A 경위가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리고 해임 처분을 취소하도록 했다. 이유가 황당하다. 재판부는 “A 경위가 평소 피해 의경들과 친한 사이였고, 의경들이 느낀 성적 수치심이나 불쾌감의 정도가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A 경위는 피해자인 의경들의 옷 안에 손을 넣어 맨몸을 만지거나 옆에 누워 서로의 성기가 닿도록 하는 등 추행했다. 자신의 휴대전화로 음란동영상을 보여주는가 하면 자신이 덮고 있는 이불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 몸을 껴안는 등 변태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 내용을 듣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질 상황이지만 재판부는 오히려 “신체 접촉이 애정과 친근감의 표시”라며 “남자들 사이에 통용되는 범위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법원이 외국에 불법 도박사이트를 개설해 불법도박을 주선해 온 도박범죄자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면서 그 이유로 “거악(巨惡)을 저지르고 있는 국가가 최 씨를 중죄로 단죄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황당한 설명을 한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3월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이형주 판사는 중국 서버에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를 열어 30억 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최 아무개 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9억여 원을 선고했다.
이 판사는 판결문에서 “도박장을 연 행위가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하는 면이 있다”면서도 국가가 이미 특별기금 마련 등을 구실로 각종 복권과 경마, 경륜, 카지노 등 사행사업을 벌이고 있다며 최 씨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 판사는 이후 전주지법 군산지원 부장판사로 보직을 옮겼는데, 여기서도 여객선 안전점검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해운조합 관계자에 대해 “국가의 전반적인 격이 올라가지 않는 이상 위법 행위 처벌만으로는 대형 해양사고를 방지할 수 없다”며 영장을 기각해 논란을 빚었다. 해운조합은 부실한 여객선 안전점검으로 세월호 사고의 ‘간접적 원인제공자’로 지목된 곳이다.
지난 3월 알려지면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일당 5억 원짜리 ‘황제노역’ 판결 역시 대표적인 ‘황당 판결’이다. 허 전 회장은 508억 원의 세금을 탈루하고 1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 원이 확정됐다. 광주지법 장병우 판사는 이후 249억 원의 벌금을 미납한 허 전 회장에게 하루 일당 5억 원씩 49일을 노역하도록 했다.
이같은 판결을 한 장병우 판사는 오히려 승승장구했다. 대표적인 ‘향판’이었던 장 판사는 이후 광주지방법원장까지 승진했다. 하지만 허 전 회장 판결이 도마에 오르면서 결국 광주지방법원장 취임 49일 만에 자진 퇴임했다. 이후 대법원은 향판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법원의 황당한 판결 원인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엘리트 판사들의 시대착오적인 권위주의’가 한몫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중소로펌의 한 변호사는 “상대적으로 견제에서 자유로운 판사들의 경우 자신들의 판단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비판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법원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법관 한 명 한 명의 권위와 독립성은 존중돼야 한다”면서도 “양형제도 개선 등 개선안을 마련해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정수 언론인
해외 사례 미국 ‘징역 1000년’ 죽어도 죄인 우리나라에 비해 법관의 독립성이 훨씬 더 많이 보장되는 일부 국가의 경우 훨씬 더 독특한 판결들이 넘쳐난다. 특히 형법에 병과주의(동시에 여러 죄를 저질렀을 경우 형을 모두 더해 처벌하는 원칙)가 적용되는 미국 등 일부 국가의 경우 ‘징역 1000년’으로 상징되는 초장기 징역형이 종종 선고되기도 한다. 미국 유타주의 한 판사는 함무라비 법전에 나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직접 실현했다. 2012년 3월 13세 소녀인 케틀린 로판은 3살짜리 여자아이의 머리카락을 장난으로 잘랐다. 미국 유타주 제7구역 소년법원의 스콧 요한슨 판사는 이 일로 기소된 로판에게 구류 150시간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로판의 어머니에게 “가위로 로판의 머리카락을 자른다면 형을 줄여주겠다”고 말했다. 로판의 어머니는 이 같은 황당한 제안을 받고 로판의 머리카락을 잘랐지만, 재판 후 “협박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슬람 국가로 혼전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는 몰디브는 성폭행을 당한 여성에게도 이를 ‘혼전 성관계’로 규정해 처벌하면서 국제적인 질타를 받았다. 2012년 9월 몰디브 법원은 계부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16세 소녀에게 “혼전 성관계 금지법을 어겼다”며 공개 태형 100대를 선고했다. 피해자 인권을 탄압한 판결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면서 국제 시민운동 단체가 몰디브 법을 비난하는 광고를 제작해 항의하는 등 국제적 반발을 샀다. 중국의 한 판사는 고속도로 통행료를 미납했다는 이유로 한 시민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황당한 판결을 접하고 분개한 중국 네티즌들의 질타에 못 이겨 판결을 바로잡았다. 중국 허난성 중급인민법원은 2011년 1월 고속도로 통행료 368만 위안(약 6억 2000만 원)을 내지 않은 시젠펑 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시 씨는 위조된 군 번호판을 이용해 8개월간 2300여 차례 동안 고속도로를 공짜로 질주했다. 거액 횡령 혐의가 적용된 시 씨는 꼼짝없이 일생을 감옥에서 살게 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시 씨의 동생이 인터넷에 글을 올려 “8개월 동안 번 돈이 20만 위안에 불과한데 368만 위안의 통행료를 횡령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주장했고, 네티즌들은 논쟁에 불을 붙였다. 여론이 악화되자 허난성 최고인민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재심 결정을 내렸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황당 판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판사들은 “가능성이 없진 않으니까…”라는 무책임한 자세로 유죄를 내리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사형선고까지 내린다고 한다. 후에 잘못된 판결이었다는 게 밝혀져도 절대 사죄 같은 것은 하지 않고 오히려 승진을 하는 케이스도 있다고 한다. 특히 일본의 형사재판 유죄율은 90%를 상회할 정도로 판사의 입김이 막강하다고 한다. 이런 무원칙적인 판결 때문에 증거가 없는데도 유죄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많고, 그 반대로 행위의 중대성에 비해 형벌이 황당할 정도로 가벼워 여론의 질타를 받는 판결도 나오고 있다. [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