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1강2중구도로 굳어지는 듯하던 대선구도는 이제 안개국면으로 빠져든 셈이다. 대통령 선거일까지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 후보 단일화 끝내 성공할까
일차적으로는 노무현-정몽준 후보간 ‘합의’된 후보 단일화가 실제로 ‘성사’ 되느냐가 가장 큰 관심사다. 실무협상까지 마무리된 이상, 이제 남은 것은 TV토론과 여론조사뿐이다. 그러나 실무협상 타결 이후에도 여론조사와 관련한 합의사항이 공개돼 논란이 이는 등 ‘후보 단일화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게 전개되고 있다.
‘후보 단일화’에는 합의했지만, 그 과정에 적지 않은 복병이 도사리고 있는 셈이다. TV토론 이후 여론조사를 통해 단일 후보가 결정된다 하더라도, 이후에는 ‘승복’의 문제가 남게 된다. 그러나 ‘후보 단일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승복’의 문제는 개개인, 또는 특정 정치세력의 선택의 문제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필연적 선택의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후보 등록 직전 단일 후보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합의’를 번복할 명분이나 상황이 조성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의원들의 거취와 김종필 총재 등 자민련의 선택, 여기에 이인제 의원 등 민주당 내 반노•비노 성향 의원들의 거취가 변수로 등장할 수도 있다.
또한, 다소 어정쩡한 입장을 보여왔던 한화갑 대표를 중심으로 한 동교동계의 향후 행보도 관심사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일이 목전에 닥쳐왔다는 점에서 ‘노무현-정몽준’ 합의 이행과정에 이들의 움직임은 결정적 변수가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 지난 15일 전국교육자대회에 참석한 각당 대통령후보들. 왼쪽부터 이회창 노무현 정몽준 후보.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가 단일후보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을까. 노무현, 정몽준 두 후보는 세 차례 이상 TV토론을 거친 뒤 여론조사를 통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후보를 단일후보로 결정하기로 합의했다.‘후보 단일화 합의’가 이뤄진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가 단순지지율에서 정몽준 후보를 앞질러 2위로 올라섰다.
월드컵 이후 줄곧 정몽준 후보에 뒤져있던 노무현 후보가 2위로 올라선 것은 ‘후보 단일화’ 결과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 후보 선출 이후 줄곧 당내 반노•비노 진영으로부터 상당한 ‘사퇴 압력’을 받아왔다. 지지율이 10%대로 하락한 이후에는 상당수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를 명분으로 탈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 지지율은 15%대를 최저점으로 상승세에 올랐고, ‘후보 단일화 합의’ 이후 20%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2위에 올라섰다. 끊임없는 당내 분란에도 불구, 대통령 후보의 지위를 유지시켜오고 ‘후보 단일화 합의’를 자력으로 이뤄냈다는 점에서 노 후보는 중대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이에 반해 정몽준 후보는 월드컵 이후 30%대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기록했으나, 국민통합21 창당을 앞두고 20%대로 지지율이 하락했다. 또한 대선 출마 선언 이후 수차례 의원 영입을 시도했으나, 아직까지 단 한 명의 의원도 영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기를 넘긴 노무현 후보와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는 정몽준 후보는 향후 지지율 반등에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노무현 후보는 ‘노풍’이 한창이던 시점에 지지를 보냈다가 민주당 내분사태로 흩어진 과거 지지세력의 결집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반해 정몽준 후보는 ‘참신성’에 기대를 건 지지층이 ‘당선 가능성’이라는 실리적 판단으로 이어가느냐에 따라 지지율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유리한 협상 불리하게 마무리
노무현-정몽준 후보간 ‘단일화 합의’는 상당부분 정몽준 후보의 양보로 가능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 후보측에서 당초 단일화 협상안으로 제시했던 대의원 50%, 일반 국민 50% 여론조사 방식을 양보했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서고 의원 영입에 실패한 상황에서 그나마 자신에게 유리한 협상안을 스스로 포기한 정몽준 후보를 두고 ‘이미 이번 대선을 접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대두되고 있다. 정 후보가 대선 출마 직후 현대중공업 주식을 신탁하겠다던 당초 약속을 아직까지 지키고 있지 않은 것도 이같은 관측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관련기사 6면).
정치권 일각에서는 ‘정 후보가 후보 단일화에 전격 합의한 것은 차차기를 노린 장기 포석이다’며 ‘승산이 적은 대선 완주보다는 국민 이미지 제고를 통해 롱런하는 방안을 선택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 발등에 불 떨어진 한나라당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합의로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다. 무엇보다 1강2중이라는 황금분할 구도가 깨졌기 때문이다. 이 후보는 1강2중 구도로 대선구도가 재편되면서 사상 처음으로 마의 35%대 지지율을 돌파했고, 간혹 40%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구도가 양강구도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후보는 ‘여유있는 1위’에서 ‘쫓기는 1위’로 처지가 뒤바뀔 운명에 처해있다. 또한,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가 어느 정도로 나타나느냐에 따라서는 대선 결과에도 적지않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노풍’이 한창이던 5월을 전후해 노무현 후보는 50%대 이상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나라당이 오래전부터 ‘이회창 대세론’을 바탕으로 견고한 전국조직을 확대 개편해 놓았다는 점에서 급격하게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은 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 이제부터가 진짜다
싱겁게 끝날수도 있었던 16대 대통령 선거는 막판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합의로 원점으로 돌아온 측면이 강하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세론’에 기초, 부전승으로 결승에 올라 있다면, 노무현-정몽준 후보는 결승 진출을 위한 마지막 토너먼트에 돌입한 셈이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세론’에 기초한 현재의 지지율을 본선에서 얼마만큼 지켜내느냐, 그리고 노무현-정몽준 후보간 결승 진출을 위한 단일화 과정에서 얼마만큼 부작용을 줄이느냐, 그리고 후보 단일화가 얼마만큼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느냐가 대선 승패를 가를 분수령이 될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