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YTN 등 방송가는 물론 여러 공기업 수장을 임명하며 낙하산 인사 논란에 휩싸인 이명박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가장 치열한 전장은 YTN과 KBS다. 방송국 사장이 임명된 지 각각 두 달과 한 달여가 되었지만 전투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파국으로 치달을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또 수많은 공기업, 정부기관 산하단체에서도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낙하산 논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을 찾아 사상 최대의 낙하산 부대와 일대 격전을 벌이고 있는 전장의 속보를 전한다.
YTN의 구본홍 사장은 70여 일째 출근을 못하고 있다. 낙하산 인사를 막겠다는 회사 노조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었다. 구 사장은 9월 8일 출근했으나 노조원들의 항의로 회사 17층의 사장실, 15층의 라디오국, 5층의 대외협력국으로 쫓겨나다시피 옮겨 다닌 일도 있었다. 결국 노조원들의 강력한 반발로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본사를 떠났다.
YTN은 낙하산 논란이 전방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라 할 수 있다. 9월 17일 생방송 <뉴스의 현장> 시간에 피켓을 들고 잠입해 기습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방송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방송사 대표가 두 달 넘게 출근하지 못하는 것 역시 초유의 일. 그만큼 YTN의 낙하산 논란은 그야말로 ‘진짜 전쟁’을 방불케하고 있다.
노조 측의 반발에 사측은 징계와 고소로 맞서고 있다. 회사는 대표의 출근 저지를 한 12명의 직원을 남대문경찰서에 고소를 했고 이들은 9월 25일 첫 번째 조사를 받았다. 또 인사위원회를 통해서도 ‘인사 거부와 출근 저지, 업무 방해’ 등의 이유로 노조원들의 징계를 논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이 인사위원회 출석 요구서를 해당 직원의 자택으로 보내 물의를 빚고 있기도 하다. 사측은 “출석 요구서가 당사자들에게 확실히 전달되게 하기 위한 방법의 일환이었을 뿐”이라고 했지만 노조 측은 “사채업자의 수법으로 노조원들에게 보복을 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9월 17일 사원행동 소속 직원들의 대대적인 인사 이동이 이루어진 날, 노조 간부들이 전북 선유도에서 ‘정연주 사장 퇴진, 낙하산 사장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해단식을 치렀다. 그러자 노조 게시판은 “노조원을 지키지도 않고 해단식을 치르는 게 말이 되느냐”는 내용으로 성토하는 사원들의 글이 가득했다.
KBS 사측의 무기는 인사 이동과 프로그램 폐지 혹은 개편이다. 지난 17일 밤 사원 95명에 대해 인사 발령을 냈는데, 이 중 47명이 사원행동에 참여한 사람들이었다. 반면 노조 집행부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아 ‘보복성 인사’라는 의혹을 낳고 있다.
특히 사원행동의 양승동 공동대표가 TV제작본부에서 심의실로, 이강택 PD는
또 그동안 현 정부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던 프로그램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시사투나잇>은 폐지로 가닥이 잡히고 있고 <미디어포커스>와 <시사기획 쌈>은 시간대를 옮기거나 내용과 타이틀을 바꾸라는 지시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직원들은 사측의 인사발령을 “보복 인사의 백과사전”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또 KBS PD 153명은 성명서를 내고 “이번 인사는 오로지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이병순 사장의 감정적 배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강력한 저항을 예고하고 있다.
낙하산 논란은 방송가에서만 펼쳐지고 있는 게 아니다. 공기업과 정부 산하단체에서도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이들의 특징은 내부보다 외부의 반발이 심하다는 점.
▲ 이병순 KBS 사장이 이 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위)과 KBS 사원들의 시위 장면. | ||
하지만 외부의 비판과는 달리 공기업 낙하산 논란은 내부에서는 그리 활발하지 않다. 한국농촌공사 노조는 “낙하산 논란은 있지만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촌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평하며 반대의 입장은 취하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마사회도 마찬가지. 3선 의원인 김광원 회장의 임명 과정에서 별다른 마찰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공기업 노조의 행동에 대해 일각에서는 “힘 있는 인사가 오면 민영화나 규제 등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깔려 있는 것 같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낙하산 논란은 물론 위법 논란까지 휩싸인 인물도 있다. 9월 10일 임명된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 인권위원인 김양원 목사가 그 주인공. 그는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했다 탈락했으며 같은 달 2일까지 한나라당 당원 신분이었다.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법 제9조에 “정당의 당원이나 공직선거 후보로 등록했던 사람은 인권위원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 노은하 부대변인은 김 목사의 임명에 대해 “정부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국가인권위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정장식 중앙공무원교육원장은 특히 불교계에서 문제 삼고 있는 인물이다. 정 원장은 포항시장 재임 당시 ‘개신교 성시화운동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또 그는 한나라당 경북도지사 공천에서 탈락한 적도 있다. 불교계에서는 “종교편향 문제를 일으켰던 정 전 시장을 중앙공무원교육원장으로 낙하산 임명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주요 공기업과 정부 산하 단체장은 물론 이 조직의 감사, 이사들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 확정되지 않은 인사에서도 낙하산 후보들이 ‘투하’를 준비하고 있다. 정권마다 낙하산 인사는 하지 않겠다던 대선공약은 까마득히 잊고 집권초만 되면 어김없이 터져나오는 낙하산 논란, 언제까지 이런 후진적이고 소모적인 갈등겪어야 하느냐는 국민들의 한숨소리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