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어’는 최초 세포에서 시작해 DNA를 섭취한 후 동물, 부족 등 모든 종으로 진화과정을 게임으로 보여준다. | ||
‘스포어’는 세계 3대 게임 개발자로 불리는 윌 라이트가 7년간 개발한 역작이다. 최초로 이 게임에 대한 개념이 발표됐을 때 게임업계에서는 획기적인 발상에 대한 놀라움은 둘째 치고 과연 기술적으로 개발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을 정도다. 그러나 ‘스포어’는 개발 착수 7년 만인 지난달 전 세계에 동시에 발매돼 업계 관계자들의 입을 다물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스포어’가 출시되자 기독교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진화론을 다루고 있는 ‘스포어’가 기독교의 ‘창조론’에 정면으로 배치돼 게임을 즐기는 아이들의 신앙 생활에 자칫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급기야 ‘스포어’를 반대하는 ‘안티 스포어’ 사이트(antispore.com)가 개설됐다. 이곳 안티 사이트에는 개발자인 윌 라이트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부터 ‘스포어’가 어떻게 아이들에게 진화론을 주입시키는지에 대한 설명이 조목조목 돼 있다.
이곳 안티사이트를 개설한 사람은 ‘스포어’에 등장하는 자유도 높은 생명 창조 시스템에 대해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그것이 결코 게임이라 할지라도 해서는 안되는 행위라고 못 박았다. 또한 게임 곳곳에 등장하는 특정 장면들이 아이들에게 매우 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곳 안티 사이트에는 수만 명의 방문자가 다녀갔고 3000여 개의 게시물을 통해 활발한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방문자들은 ‘게임은 게임일 뿐’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스포어’가 비록 진화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것이 반드시 창조론이나 기독교에 대한 도전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히려 진화론을 옹호하는 네티즌들은 ‘스포어’가 전반적으로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생물의 진화과정에 대해 보여준다면서 교육용으로도 손색이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스포어는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국내 기독교 단체들도 아직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애당초 국내 기독교 단체들이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는 진화론에 대해 이렇다 할 논쟁을 벌이지 않는 것도 이러한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오히려 게임 유저들은 ‘스포어’가 당초 기대했던 것보다 진화되는 양상의 폭이나 이를 묘사하는 정도가 약한 것을 아쉬워할 정도다. 초창기 완성 이전에 공개된 ‘스포어’에는 등장하는 크리쳐(유저들에 의해 창조된 생물)들의 짝짓기 모습이 보다 리얼하게 묘사돼 있었다. 또한 강한 크리쳐가 진화를 위해 약한 크리쳐를 잡아먹는 모습에 피가 동원될 정도로 세세하게 묘사돼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제감 있는 묘사가 기존 보수단체들의 입김에 의해 지나치게 순화된 것 아니냐는 것이 유저들의 지적이다.
창조론과 기독교 교리를 침해했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포어’는 보름 만에 전 세계적으로 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와 동시에 발매돼 역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불법복제 등으로 인해 열악한 PC게임 시장 상황 속에서도 연일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1만 장 판매를 목전에 두고 있다.
최근 창조론이 지적설계론이라는 이름으로 과학적인 이론을 접목시켜 진화론을 공격하는가 하면, 특정 종교단체에서는 외계인 창조설을 주장하기도 하는 등 인류 기원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스포어’는 이러한 논란을 넘어 게임 그 자체의 완성도만으로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