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라크 파병 논란으로 인해 열린우리당이 분당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열린우리당 17대 국회 첫 의원총회. | ||
특히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당내 논란은 식을 줄을 모른다. 오히려 ‘김선일씨 피살 사건’ 이후 당권파 및 친노 성향의원들과 소장개혁 성향 의원들 간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 대통령 팬클럽인 ‘노사모’도 이라크 파병문제로 심한 홍역을 앓고 있으며, 친노성향의 인터넷 매체들도 찬반으로 양분돼 치열한 공방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여당 안팎에서는 자칫 지난해 민주당 분당사태 이후 ‘제2의 분당’으로 치닫는 게 아니냐는 성급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 7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최근 노무현 대통령에게 제출한 ‘한·미 관계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 전문을 이례적으로 실었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 파병국가 가운데 우리나라의 대미수출의존도가 세계 2위”라고 소개하면서 “한미관계의 악화가 지속되면 우리 금융시장 및 실물경제에 중대한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는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말해 한미관계가 악화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라크 추가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점으로 우회적으로 역설한 것이다. 그만큼 청와대가 이라크 파병 반대 여론에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거슬러올라가 지난 2월13일, 16대 국회는 이라크 추가 파병안을 통과시켰다. 그런데 총선 정국과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파병문제는 세인들의 관심에서 다소 밀려났다. 그러다가 17대 국회에 입성한 여성 의원들 중심으로 이라크 파병 재검토 논의가 다시 불붙었다. 열린우리당 김선미 김희선 유승희 장향숙 의원 등 9명을 포함한 여야 15명이 지난 5월 말 ‘이라크 파병 재검토’를 촉구했던 것. 이어 열린우리당 김원웅 송영길 이화영 정청래 등 10명을 포함한 여야 20여 명의 의원들이 ‘파병결정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고 나섰다.
이라크 파병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영(令)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급기야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57명은 이라크 추가 파병 결정 재검토를 위한 서명작업에 돌입했다.
이처럼 여당이 청와대와 불협화음을 보이자, 당 지도부는 내부 단속에 들어갔다. 천정배 원내대표는 “밖으로 이견을 내비치지 말고 당내 토론을 통해 의견을 모아야 한다”며 “신중치 못하게 발언하는 것을 삼가 달라”고 자제를 촉구했다.
▲ 지난 6월26일 인천공항에 도착한 고 김선일씨의 유해. | ||
그러자 청와대가 ‘보이지 않는 태클’을 걸었다. 더 이상 당내 논란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도였다. 당시 서명작업에 동참했던 열린우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런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이라크 파병을 재검토하자는 데 동의해 서명을 했다. 그런데 얼마후 청와대에서 전화가 왔다. ‘파병 약속은 국제 신의문제니까 자제해달라’는 당부였다.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은 다음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제하고 있다. 앞에 나서기도 힘들다”는 얘기였다.
당 지도부도 “추가 파병문제는 이미 국회 동의를 거친 사안이기 때문에 결의안을 제출하더라도 정치적 의사 표시에 불과하다”며 소장파 의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대통령 정치특보’였던 문희상 의원은 초·재선의원들과 만나 “이라크 파병문제는 국회에서 이미 통과된 것이며, 국가 정책인 만큼 여당으로서의 자세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노심’(盧心)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청와대와 당 지도부의 설득 때문이었을까. 이후 이라크 추가 파병 재검토 문제를 둘러싼 당내 논란은 ‘현실론’ 쪽으로 가닥을 잡아갔다. 파병 재검토를 주장했던 소장파 의원들 사이에서 신중론이 확산되는 듯했다. 지난달 18일엔 정부가 이라크 추가파병 지역(에르빌)과 일정(8월초부터), 부대 규모(3천명) 등을 최종 확정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했던 돌발변수가 터졌다. 바로 가나무역 직원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단체로부터 피살된 것이다. 잠잠해지는 듯했던 열린우리당이 또다시 술렁거렸다. 김원웅 송영길 유승희 의원 등 18명은 이라크 추가파병 중단을 다시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달 23일 새벽 김선일씨가 피살된 것으로 확인되자, 같은 날 정오 열린우리당 소속의원 27명을 포함한 여야 의원 50명은 ‘국군부대의 이라크 추가파병 중단 및 재검토 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당 내 파병 논란이 재점화된 것이다.
결의안을 직접 제출한 김원웅 의원은 “제1의 김선일, 제2의 김선일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잘못된 길은 바로 되돌아가야 한다. 한국 정서에도 맞지 않다. 국민들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며 파병중단을 주장했다.
‘김선일 사건’을 계기로 불붙은 이라크 파병 논란은 비단 열린우리당 내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지지세력에서도 내분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노 대통령의 대표적인 팬클럽인 ‘노사모’ 회원들은 파병 찬반을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노사모의 한 회원은 홈페이지에 올린 ‘노 대통령, 우리를 설득해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나는 파병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국민을 설득하는 진지한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다. 대통령이란 자리의 권위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고 성토했다. 아이디 ‘엠티송(mtsong)’을 사용하는 한 회원은 ‘파병반대를 외치며’라는 글에서 “10년 만에 담배를 샀다”며 “진정으로 노무현을 사랑한다면 지금 매를 들 때다. 우리에겐 노무현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다. 만일 파병을 강행하면 대통령 퇴진운동에 매진할 것이다. 국회로 광화문으로 쫓아다니며 탄핵무효를 외쳤던 입에서 노무현 탄핵을 외치지 않길 빈다”고 피력했다.
▲ 지난 6월23일 김선일씨 피살과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위해 입장하는 노무현 대통령. | ||
여기에 노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친노성향의 인터넷 매체들도 파병문제를 둘러싸고 갈라섰다. 노 대통령에 대해 우호적인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는 ‘파병철회 국민청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노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강행 방침에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이에 이라크 파병 방침을 지지하는 인터넷 웹진 <서프라이즈>가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가 부인의 인사청탁 스캔들로 대표직을 물러남에 따라 현재는 ‘휴전상태’. <서프라이즈>가 신임 대표를 선임하면 또다시 포문을 열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당 내외 논란이 자칫 분당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열린우리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당내 논란은 장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장담했다. 이 당직자는 “우리 군인이 만일 이라크에서 사망하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면 대대적인 ‘반전운동’이 일어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당내에서 파병 재검토를 주장했던 의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고, 그로 인해 분당사태로까지 연결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야당의 한 중진의원은 “현정부의 국정 혼란이 앞으로도 계속되면, 내년 4월 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여당은 참패할 수밖에 없다. 이는 지난 6·5 재보선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되지 않았느냐”며 “여당이 연말까지도 지금처럼 갈팡질팡 하는 모습을 보이면 지지자들도 하나 둘 등을 돌릴 것이고, 어쩔 수 없이 ‘절’(열린우리당)을 떠나는 ‘중’(의원)도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요즘 여의도 정가에선 “열린우리당에는 1백52개의 정당이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되고 있다. 소속의원 1백52명의 정치적 개성이 강하다는 것을 비아냥대는 말이다. 그런데 당사자인 여당 관계자들도 자신들의 ‘접착성’이 강하지 않다는 점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이런 까닭에 열린우리당이라는 ‘손오공’이 분신술을 통해 ‘제2의 손오공’을 낳게 될 지 좀더 두고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