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씨와 김 씨 사이에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김 씨가 민 대표 형제를 고소한 사연과 함께 일명 ‘재벌가 며느리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봤다.
김 아무개 씨(38)에 따르면 A 씨(여·42)와 처음 만난 때는 지난 2000년 11월이다. 당시 K버거의 체인점 개설 문의차 김 씨의 사무실을 방문한 A 씨는 “남편이 영동에서 알아주는 부자다”라며 “K버거 체인점을 내 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고 김 씨는 이를 거절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A 씨는 강남의 한 유명백화점 김 아무개 전 대표이사의 부인이었다고 한다. 김 씨가 체인점을 거절한 이후에도 A 씨는 하루가 멀다 하고 김 씨를 찾아왔고 자주 만나면서 둘의 사이는 가까워졌다고 한다. 김 씨는 “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다닌 걸 알게 된 A 씨가 자신이 키우고 있는 전처소생의 딸 유학을 도와달라고 해 둘이 같이 미국에 들락날락했고 이 과정에서 정을 통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김 씨가 기자에게 건넨 자료 중에는 그가 A 씨와 ‘깊은 관계’였음을 보여 주는 것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김 씨가 A 씨로부터 받았다는 편지. 미국의 한 호텔에 자신이 묵을 당시 A 씨가 보내왔다는 편지에는 ‘여보’ ‘나의 향기’ ‘당신의 체취’ 등등 보통의 관계라면 결코 쓸 수 없는 표현들이 곳곳에 들어있었다. 그러나 A 씨의 가족들은 김 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소송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 꾸며낸 말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어느 쪽의 말이 진실인지 아직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김 씨는 “A 씨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면서 그의 오빠, 동생과도 친형제처럼 지내게 됐다”고 말했고 A 씨 측 사람들도 “사업 차원에서 김 씨와 상당히 깊은 친분을 유지한 것은 맞다”고 밝혔다.
이들의 관계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이들 사이에 돈 문제가 개입되기 시작하면서다. 김 씨는 지난 2004년 A 씨의 오빠인 B 씨에게서 “(백화점 대표이사인) 매형이 D 펄프회사를 인수할 예정인데 홍콩에서 하고 있는 원자재 수입 일을 당신에게 맡기고 싶으니 일을 추진해달라”는 부탁을 받았고, 김 씨는 이를 계기로 대표이사 자리를 A 씨의 동생이자 지금의 K버거 대표이사인 민 아무개 씨에게 넘겨줬다고 한다.
김 씨는 이 과정에서 K버거 지분의 70%도 A 씨 가족들에게 양도했다고 밝혔다. 2003년 K버거 삼성동 타워팰리스점과 2004년 방배점을 개설할 당시에 민 대표이사와 민 대표의 형 B 씨가 각각 4억 원씩을 투자했기 때문에 김 씨는 이 돈을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개인적 친분도 있어 생각보다 많은 지분을 덜컥 넘겨줘 버렸다는 것. 김 씨는 “B 씨에게 30%, 민 씨에게 10%, 그리고 A 씨의 모친 명의로 30%의 지분을 넘겨줬다”며 “A 씨가 당시 ‘곧 이혼할 예정이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많으면 재산분할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어머니 명의로 지분을 달라’고 요청해 이를 들어줬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홍콩 사업건은 무산됐고 김 씨는 2006년 2월 귀국했다. 김 씨는 다른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당시 갖고 있던 K버거 지분 30%를 정리하려고 했다. 김 씨는 민 대표의 형 B 씨에게 “나머지 지분을 30억 원에 넘기겠다”며 “대신 당신의 매형인 김 씨를 보증인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B 씨는 “매형을 설득해서 그 값을 쳐주도록 하겠다”며 흔쾌히 받아들였고 김 씨는 그 자리에서 계약서도 쓰지 않은 채 인감을 넘겨줬다고 한다.
하지만 그 뒤 1년간 김 씨가 B 씨에게서 받은 돈은 약 5억 4100만 원에 불과했다. 김 씨는 B 씨를 간신히 만나고서야 나머지 돈이 입금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다고 한다. B 씨가 “주식매도 계약서도 없고, 인감도 나한테 있는데 30억 원은 갑자기 무슨 소리냐”며 “나는 지불할 돈을 다 줬다. 법대로 하자”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지난 2008년 3월부터 계약서 한 장 없는 김 씨의 법정 싸움이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A 씨와의 부적절한 관계까지 폭로하는 강수를 들고 나오게 됐다는 것이 김씨의 이야기다. 김 씨는 “B 씨가 분명히 자신의 매형인 김 전 대표에게 주식을 팔아준다고 약속했고 그 과정에서 담보로 하든지 매도를 하든지 하라고 했기 때문에 지분을 넘길 수 있었던 것”이라며 “김 전 대표는 내 주식과 관련된 일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말했지만 이를 믿을 수는 없었다”며 제3자인 김 전 대표이사를 함께 고발한 이유를 밝혔다.
한편 김 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B 씨 측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고 있다. B 씨는 애초에 자신이 김 씨에게 치른 대금이 당시 주가에 비쳐보면 적정한 금액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B 씨가 제출한 민사소송 답변서에는 “2006년 5월 원고(김 씨)의 주식은 액면가 5000원에도 매도하기 쉽지 않았지만 상당부분 매수해 줬다”고 적혀 있다.
반면 김 씨는 “대금을 받고 난 6개월 후인 2006년 11월 서울Z파트너스가 K버거 주식을 주당 3만 3000원에 사들였다. 외식업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단 6개월 만에 주식의 가치를 6배 이상 올리기는 어렵다”라며 “이것만 보더라도 내가 지니고 있던 주식의 당시 가치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현재 K버거의 대표이사인 민 대표에 대해서도 사기죄로 검찰에 고발을 고려하고 있다. 민 대표가 자신이 K버거의 창업주라고 주장하고 다녔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 김 씨에 따르면 민 대표는 김 씨와 누나 A 씨의 인연 덕분에 2003년 K버거 방배점의 점장으로 입사했고 그 뒤 김 씨가 대표이사 자리를 넘겨주면서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그런데 민 대표가 자신이 직접 K버거를 창업했다고 대외적으로 선전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07년 3월에 보도된 모 언론사 기사에도 잘 나와있다. 이 기사엔 민 대표가 “1998년 IMF가 한창일 때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압구정에 K버거 1호점을 창업했다”고 말한 것으로 돼있다. 그 뒤 있었던 다른 언론 기사에도 똑같은 멘트가 들어있다.
하지만 민 대표는 “언론 인터뷰 때 김 씨와 함께 창업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지만 기사화 과정에서 빠진 것이다. ‘내가 혼자 창업했다’고 말한 적은 없다”며 “우리 쪽에서도 이 문제 때문에 김 씨를 사기·절도·명예훼손으로 고발하고 출국금지까지 신청한 상태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에 대해 “그들은 내게 돈 대신 압구정동 한 건물의 임대권을 넘겨준 적이 있었다. 그곳에 남아있던 물건들에 대해 그들이 ‘알아서 하라’고 말해 치웠던 것인데 나를 절도죄로 고발했다”고 해명했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