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캐커뮤’를 즐기는 이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 캐릭터대로 행세를 한다. 또한 이 캐릭터의 모습을 그리거나 글로써 상대방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키고 반대로 상대를 인식한다. 새로운 인터넷 풍속 ‘자캐커뮤’ 속으로 들어가봤다.
캐커뮤’는 일종의 인터넷 커뮤니티다. 네이버 다음 이글루스 등과 같은 포털의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주로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자캐커뮤’는 철저하게 회원제로 운영되며, 가입하기 위해서는 운영자들이 제시한 기준에 맞게 지원양식을 작성해야 한다. 양식을 제출한다고 해서 아무나 가입되는 것도 아니다. 운영 스태프들의 심사를 통해서 합격통지가 온 이후에야 커뮤니티에서 정식으로 활동할 수 있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은 각기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가령 현대사회를 배경으로 초능력자들의 모임을 다룬 ‘자캐커뮤’는 자신의 캐릭터가 어떤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자신의 캐릭터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커뮤니티에 올려 다른 회원들에게 인식시켜야 되고 그와 관련된 설정들을 손수 창작해야 한다.
또한 어떤 ‘자캐커뮤’는 전세계적으로 극비리에 계획된 특수부대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이곳 회원들은 이곳에서는 스스로를 암살자나 군인 등으로 설정하고 그에 걸맞은 능력 성향 성격 등을 설정해서 다른 회원들에게 알려야 한다. 대부분 이러한 자캐커뮤는 게임이나 만화 등에서나 등장할 법한 판타지한 설정들을 가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한번 이러한 설정이 이뤄지면 그곳 커뮤니티 내에서는 철저하게 그 캐릭터로 살아가야 한다. 글을 올리거나 다른 회원과 이야기를 할 때도 서로 설정된 이름을 부르고 그 캐릭터에 걸맞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
특히 공개적인 게시물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고 한다. 만약 이 룰을 어기고 그곳에서 현실세계에서의 자신을 드러낼 경우 그 회원은 운영진의 논의를 걸쳐 강제탈퇴 조치를 당한다.
이러한 커뮤니티들은 즐기는 방식에서도 저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데, 이는 미리 회원을 모집할 때 구체적으로 공지한다. 주로 그림을 그리는 활동을 하는 ‘자캐커뮤’가 있는가 하면 철저히 글을 통해 활동을 하는 커뮤니티도 있다.
혹은 이 둘을 모두 허용하는 커뮤니티도 있다. 때문에 이러한 ‘자캐커뮤’는 그 형태에 따라 ‘소설커뮤(일명 소커)’나 웹 그림 저작 툴을 기반으로 한 ‘비툴커뮤’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리기도 한다.
엄밀히 따지면 ‘자캐커뮤’는 아니지만 가상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팬클럽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곳도 있다.
‘맨즈투데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는 PC게임 ‘심즈’의 게임 캐릭터를 사랑하는 유저들을 주축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5명의 꽃미남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실제로는 이들을 담당하는 작가가 한 명씩 존재한다.
작가의 역할은 캐릭터의 모습이나 근황을 창작해서 유저들에게 알려주고 팬들을 관리하는 것. 특히 이들 캐릭터는 저마다 블로그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유저들과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실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이들은 서로 저마다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회원들 역시 실제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팬레터를 보내거나 선물을 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가상 캐릭터는 주로 남성인 만큼 작가나 이를 즐기는 회원들은 대부분 10~20대 여성들이다. 그러나 그중에는 30대 이상 여성들도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이들을 소재로 한 만화책이 실제로 출간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이러한 가상 역할 수행 커뮤니티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각종 포털에서 ‘자캐커뮤’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이곳에 대한 관심을 증명하듯 수 많은 게시물이 올라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자캐커뮤’를 즐겨왔다는 최소영 씨(23)는 “이곳에는 만화나 게임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독특한 매력이 있다”며 “처음에는 그림 그리는 재미로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이러한 커뮤니티 활동 자체에 푹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보들레헴’이라는 네이버 아이디를 쓰는 한 네티즌 역시 “오랫동안 활발히 운영되는 커뮤니티의 경우 회원들이 만든 창작물만으로도 여간한 게임이나 만화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방대한 양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사실 이러한 역할 수행 놀이는 서양에서는 이미 수십년 전부터 각광받아 왔다. TRPG(Table Roll Playing Game)라고 불리는 놀이는 주사위와 같은 간단한 도구만을 가지고 사람들이 테이블에 모여 상황을 설정해놓고 함께 말로써 판타지 세계의 모험을 떠나는 방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놀이를 보다 원활하게 하기 위해 설정집이 따로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TRPG 설정집인 ‘던전 앤 드래곤(D&D)’의 경우 백과사전 3권 분량의 책으로 출판돼 고가에 팔리고 있기도 하다.
때문에 이러한 ‘자캐커뮤’를 처음 접한 네티즌들은 새로운 인터넷 놀이문화로서 매우 흥미롭다는 반응이다. 그러나 몇몇 ‘자캐 커뮤니티’들의 경우 무인도나 교도소와 같은 지나치게 기괴한 설정으로 자칫 나이 어린 회원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특히 현실과 가상세계를 혼동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역할 놀이의 상황 설정은 좀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설령 설정이 문제없다고 하더라도 가상세계에 빠진다는 것은 반드시 현실세계에 긍정적인 영향만 준다고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모 ‘자캐커뮤’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난 적도 있다. 오프라인 모임에서 어느 회원이 자신의 역할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다른 회원들에게 거친 말투와 욕설을 한 것이 시비가 붙어 폭력사태로 발전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