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사외이사가 가장 많은 기업집단은 SK그룹(왼쪽)이며, 사외이사가 가장 많이 재직 중인 로펌은 김앤장(오른쪽)인 것으로 드러났다. 맨왼쪽 원안은 63개 기업집단의 사외이사 현황을 전수조사한 정의당 서기호 의원. 일요신문DB
이 중에서도 법조인 출신의 사외이사를 살펴볼 때 판·검사 출신 사외이사가 약 72%를 차지하면서 변호사 경력만 있는 사외이사의 비율을 압도하는 것으로 조사돼 대기업들이 검찰 및 법원에 대한 직·간접적인 영향력 행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조계 출신 사외이사들이 해당 기업의 이사회에서 반대표를 던진 경우는 지난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2076건의 안건 중 단 6건(0.29%)의 안건에 불과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63개 대기업 소속 사외이사 786명을 전수 조사해 ‘대규모 기업집단의 사외이사 분석’이라는 제목의 국정감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보다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4월 1일 기준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63개 집단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 지정한 바 있다. 서 의원의 보고서 분석 대상 기업집단은 공정위가 발표한 기업집단 숫자와 일치하며 이는 곧 국내 재벌 집단 63개 전부를 조사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대기업 사외이사 중 교수 등 학계 출신이 258명(32.82%), 관료출신이 192명(24.43%), 기업인이 165명(20.99%), 법조인 116명(14.76%)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이들 직업군 중 관료 출신 사외이사(193명)와 판·검사 경력이 있는 법조인 사외이사(83명)를 합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로 구분하면 총 275명(35.03%)으로 나타났다.
법조계 사외이사가 많은 기업집단은 SK그룹이 9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뒤를 이어 동국제강(8), 삼성·두산(7), 현대자동차·한진(6), LG·CJ(5), 롯데·한화(4) 순이었다. 특히 CJ그룹 계열사의 법조계 사외이사 5명은 모두 고려대 법대 출신으로 이재현 그룹 회장의 동창으로 채워졌다.
법조계 사외이사 비중이 높은 기업집단은 동국제강이 42.11%로 가장 높았고, 현대중공업(40.00%), 한진(35.29%), 현대산업개발(33.33%), 대림(28.57%), 두산(28.00%), OCI(26.67%), 대우건설(25.00%), 영풍(23.08%), 효성(21.43%)이 뒤를 이었다.
분석 대상 법조계 사외이사의 주요 근무 로펌을 분석해 보면, 국내 주요 대형 로펌에 재직 중인 사외이사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14명으로 가장 많았고, 태평양(8명), 광장(7명), 율촌(6명) 등 다른 대형 로펌들이 뒤를 이었다. 보고서는 이 같은 대형 로펌이 주요 재벌 계열사의 소송 및 자문의 상당수를 수임하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법조계 사외이사의 이해상충 위험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사외이사가 직접 해당 회사나 계열사, 그룹 오너 일가의 소송을 대리하는 것은 물론, 사외이사가 소속된 대형 로펌이 회사의 소송을 대리하거나, 회사와 소송 중인 상대방을 대리할 때에도 이해상충의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 분석 대상 중 이미 회사나 그룹 오너의 소송을 직접 대리하고 있거나 자문을 제공한 경력이 있음에도 선임된 사외이사가 존재했다.
보고서는 사회통념상 사외이사의 실질적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외이사와 회사, 지배주주, 경영진의 관련성을 ‘이해관계’로 규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이해관계가 있는 법조계 사외이사를 선별한 결과 총 16명이었으며 이중 14명은 모두 학연으로 얽혀 있었다. 학연관계 법조계 사외이사 14명 중 11명이 지배주주 및 그 일가와 고교동문, 3명이 대학 동기 또는 1년 선후배 사이였다.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법조계 사외이사 2명의 경우는 ‘소송대리’로 인한 이해관계가 있었다.
서기호 의원은 “사외이사 제도가 기업에게는 검찰과 법원에 대한 로비 통로로, 법조계에는 전관예우의 창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사외이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독립적 사외이사 선임을 위한 절차를 개선하는 것과 더불어 법조계 전반의 윤리의식 제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