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8월 횡령ㆍ배임 혐의의 김승연 한화 회장이 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서기호 의원실에서 낸 ‘대규모 기업집단의 사외이사 분석’ 보고서는 이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가 주목한 점은 LG가 선임한 소송대리인이다. LG는 법무법인 태평양을 선임했다.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노 아무개 태평양 변호사는 지난해 (주)LG의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현재 법조계에서는 LG의 승리를 유력하게 예측하고 있다. 해당 사건의 소송 가액은 4억 원 규모. 얼핏 보면 작은 덩치 같지만, 소송 가액은 수백 배로 불어날 가능성이 높다. 태평양에는 ‘노른자위 소송’인 셈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외이사가 소속된 법무법인이 회사 소송을 대리하는 경우는 또 있다. 김앤장 등에서 기업자문 및 지적재산권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현재 법무법인 광장에 있는 최 아무개 씨의 경우다. 최 씨는 올해 SK케미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SK케미칼은 지난 2012년 8월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로부터 알츠하이머 의약품 특허 관련 소송을 당한 바 있다. SK케미칼은 소송 대리인으로 최 씨가 있는 광장을 선임했다. 해당 소송은 지난 5월 SK케미칼이 1심 승소한 상태다.
법무법인 율촌에 자주 자문을 구하는 롯데쇼핑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롯데쇼핑은 지난해 3212억 원 규모의 해외교환사채를 발행하며 법률자문사로 율촌을 선임했다. 또 올해 초 LIG손해보험 인수를 추진하며 관련 자문사 중 하나로도 율촌을 선정했다. 현재 롯데쇼핑의 사외이사 중에는 율촌에서 송무그룹 형사팀장으로 재직 중인 김 아무개 씨가 있다. 김 씨는 대검찰청 감찰부장과 부산지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등을 역임한 검찰 고위직 출신 인사다.
이렇듯 사외이사가 속한 법무법인을 기업이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하는 일은 현행 상법상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 사외이사가 철저하게 지켜야 할 ‘독립성’이 훼손되거나 기업 간의 ‘이해 상충’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보고서는 “향후 추가적인 자문 또는 소송대리를 위해 회사의 경영진 또는 지배주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심리가 작용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외이사가 속한 법무법인이 기업 간 소송뿐 아니라 기업의 지배주주나 재벌 일가의 소송을 대리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재판이 마무리되고 포상(?) 성격으로 추후 사외이사 자리에 선임되는 경우가 많아 주목된다.
대표적인 것이 한화의 경우다.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은 지난 2010년 비자금 조성, 차명계좌 등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기소돼 현재까지 형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김 회장은 항소심에서 징역형을 선고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돼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법무법인 율촌은 김 회장의 항소심과 대법원 상고(법무법인 화우와 공동 대리), 파기환송심을 전담했다. 현재 한화그룹의 사외이사 중에는 율촌의 파트너 변호사인 강 아무개 씨가 있다.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기획재정부 고문 변호사 등을 거쳐 올해 한화 사외이사로 선임된 강 씨는 율촌의 조세쟁송 팀장을 맡고 있기도 한다. 특히 강 씨는 김 회장의 항소심과 상고심 당시 직접 변호인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지배주주의 형사 소송을 직접 담당한 변호인은 회사와 우호적이고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밖에 없음에도 그를 재판 종료 시점에 주요 계열사의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사외이사로서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산업개발 역시 마찬가지다. 현대산업개발 정몽규 회장은 비자금 조성 및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지난 2006년 기소됐다. 당시 재판에서 정 회장의 변호를 맡은 이는 박 아무개 변호사였다. 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인 박 씨는 지난 2005년부터 김앤장에 재직했고, 2010년에는 현대산업개발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두산은 지배주주 일가 소송을 맡았던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두 명이 모두 사외이사가 됐다. 두산은 지난 2005년 박용성 회장과 박용오 전 회장 등 지배주주 일가 사이에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며 비자금 횡령 등으로 형사재판을 받은 바 있다. 당시 소송 대리인은 김앤장이었다. 이후 김앤장 소속이었던 신 아무개 변호사는 지난 2010년 두산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지난해에는 김앤장 소속 송 아무개 씨가 두산 사외이사로 선임됐는데, 송 씨는 전직 검찰 최고위 인사다. 현재 삼성전자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기도 하다. 삼성의 경우 김앤장이 전환사채 발행 재판 당시 변호를 했는데, 이후 김앤장 소속 송 아무개 씨가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SK의 경우 SK분식회계 사건 1심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우일과 2심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율촌 소속 변호사가 계열사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한편 사외이사가 속한 법무법인이 기업의 용역·자문을 담당하거나, 해당 기업과 법률분쟁 중에 있는 상대방의 소송을 대리하는 경우도 사외이사와 기업의 ‘이해관계’가 얽힌 경우로 꼽힌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사외이사가 소송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자신이 속한 회사에 유출을 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기밀 유지’ 문제가 대두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밖에 특정 로펌 소속 법조인을 연속적으로 사외이사로 선임하는 경우, 동일인이 계열사를 돌아가면서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경우, 동일인이 한 회사에 장기 선임되는 경우 등도 이해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두산은 지난 2005년 이후 김앤장 소속 변호사 1명을 계속해서 사외이사로 선임해왔으며, 현재 두산 계열사의 법조계 사외이사 5명 중 2명은 김앤장 소속 변호사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