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장교와 부사관들이 군 병원에 입원할 경우 나이롱환자를 걸러내기 위한 기본적인 조사도 쉽지 않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지난 9월 <주간조선>은 “공수부대 현역과 예비역 장교 및 부사관 수백 명이 전문 브로커들과 짜고 최소 200억 원 이상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받아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며 “경찰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군인은 9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고 보도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은 맞다”면서 “다만 금융감독원에서 아직 수사와 관련한 자료를 받지 못한 상황이다. 좀 더 지켜봐야 한다”라고 답했다.
아직 경찰의 수사 진행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지만, 군이 보험사기 사건과 연루됐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일요신문>은 어렵게 군 장교 출신 보험회사 간부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해당 간부는 7년간 장교로 복무하다 전역 직후 대형 보험사에 입사했다. 그는 한마디로 “군은 보험사기에 있어서 완벽한 사각지대”라며 “이미 군 내부에서 보험금 부당수령은 암암리에 존재했다”고 단언했다. 충격적인 증언이었다.
“보험사기의 핵심은 결국 ‘커넥션’이다. 군은 어찌 보면 그러한 면에서 최적의 환경이다. 가운데서 군 출신 브로커가 다리를 놓기도 하지만, 직접 군 출신 보험회사 관계자가 제안을 하고 진행한다. 어차피 인사평정 및 진급과 전혀 무관한 이들로서 이러한 군 선배들의 제안이 오가면 손쉽게 유혹에 빠지게 된다.”
특전사 요원들이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특전무술을 선보이고 있는 모습. 일요신문 DB
부당수령을 노리는 군인 대부분은 전역을 1년 앞둔 단기 장교와 부사관들이다. 군 복무자 상당수는 오랜 기간 군 생활을 통해 관절과 골격계 등 가벼운 외과 질환 하나쯤은 몸에 지니고 있다. 진단 자체가 쉽다는 말이다. 이를 잘만 이용하면, 그들 입장에서 전역을 앞두고 쏠쏠한 경제적 이득을 챙길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 예비 전역자들이 이러한 부당수령금을 두고 워낙 관례화가 돼서 일종의 ‘퇴직금’으로 치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실제 피해자라 할 수 있는 보험회사 입장에서 이를 감지하고 조사에 나설 수는 없었을까. 보험회사는 일반적으로 가입자들의 부당수령 기미가 포착될 경우 내부의 조사팀 혹은 외부의 손해사정 회사를 가동시켜, 조사에 임하게 된다. 물론 그 조사의 전제조건은 보험금 수령을 신청한 가입자들의 사전 동의에 따른다. 혐의가 있는 가입자들 역시 보험금 수령을 위해선 이 동의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반적인 경우, 의심이 가는 가입자들의 진단 및 입원 병원의 진료기록과 보험 가입일 및 타 보험사 가입 여부를 중심으로 조사를 시작한다. 보험사 입장에서 금융전산망 통합 조회를 통한 복수 보험 가입 여부는 비교적 손쉽게 처리할 수 있지만, 진료기록 조회는 다소 까다롭다. 부당수령에 협조하거나 가담한 병원들의 경우, 보험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거나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보험사들은 이럴 경우 두 번째 수단을 강구한다. 단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가입자 진료기록이다. 기본적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기록은 가입자 개인 이외에 아무도 볼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보험사들이 부당수령에 대한 상당한 의심이 있어 경찰 등 수사기관에 의뢰할 경우,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한정적으로 수사기관을 통해 가입자의 진료기록을 공개한다.
성남시 분당구에 위치한 국군의무사령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임준선 기자
‘가입자-병원-보험회사 내부 관계자’ 등 단단한 커넥션을 구축하거나 아예 건강보험료 청구를 생략하는 편법(이러한 편법 역시 많은 사례가 축적됨에 따라 보험사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다)이 가동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부당수령행위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걸러지게 된다. 하지만 현역 장교와 부사관들이 일반 병원이 아닌 군 병원에 입원할 경우 앞서의 과정은 거의 불가능하다. 장교 출신 보험사 간부의 설명은 이렇다.
“보험사 입장에서 군 보험사기가 의심되는 경우를 목격해도 실제 조사에 나서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핵심은 군 병원의 폐쇄성이다. 솔직히 부당수령을 염두에 둔 군 복무자가 군 병원에 입원해버리면, 보험사 입장에서 조사가 거의 불가능하다. 일반 병원이라면 급습이라도 해서 이른바 나이롱환자를 걸러내겠지만, 위병소 철통 경비가 동반되는 군 병원은 이러한 기본적인 조사도 어렵다. 가입자의 동의를 얻는다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군 병원 역시 내부 보안이 생명인 군 기관의 하나다. 내부 자료를 쉽게 내줄 리가 없다.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은 기관 특유의 관료적 성격도 한몫한다. 또 군의관 역시 전역을 포함해 인사이동이 잦기 때문에 시기를 놓치면 조사 자체가 어렵다.”
차선책도 강구하기 쉽지 않다. 일반병원의 진료기록은 앞서 말했듯 국민건강보험공단에도 남아있다. 이 때문에 수사기관에 의뢰할 경우 범죄 행각의 단서를 찾을 수 있겠지만, 군 병원의 진료기록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는 완전히 별개 사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관계자는 “군 병원의 경우, 기본적으로 환자들의 진료비 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군 병원이 우리 공단에 진료비를 청구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당연히 군 병원의 진료 기록은 우리 공단에는 전혀 남지 않는다”고 밝혔다. 보험사는 철저하게 가입자가 군 병원서 발급받은 서류만을 자료로 삼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심지어 이런 사례가 있었다. 계약 약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입원비 청구는 3개월이 한정이다. 원칙적으로 부당수령을 목적으로 하더라도 3개월분 입원비가 맥시멈(최대치)이다. 하지만 내가 목격한 한 장교는 ‘돌려막기’를 하더라. 예를 들어 허리 디스크 질환으로 3개월을 채운 뒤, 발목 관절 질환을 명목으로 3개월을 추가로 입원했다. 여기에 또 3개월을 어깨 관절 질환으로 입원했다. 일반적으로 보험사들의 입원비 지급과 관련한 기간 약정은 한 가지 질환에 한해서다. 이 규정상 허점을 교묘하게 악용해 복수의 환부 혹은 질환으로 돌려막기를 한 것이다. 일반 병원에선 위험부담 탓에 어렵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군 병원에선 가능한 일이다. 이는 느슨한 시스템과 더불어 군 병원 내부 관계자의 직간접적인 협조 덕에 가능하다.”
결국 이렇게 사각지대로 남아있는 군 보험사기의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선 군 병원의 수사가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 보험 업계 내부의 시선이다. 하지만 수사기관 입장에서도 이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어찌됐건 이는 정부 내부 감찰의 성격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군은 가장 폐쇄적이고 특수한 성격의 기관이다.
앞서의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이번 수사 대상은 (군의관 출신 의사가 운영 중인) 일반 병원과 혐의자”라며 “아직 군 병원 내부는 수사 대상이 아니다”고 단정했다. 아직 경찰의 수사는 좀 더 지켜봐야하는 단계지만, 반쪽자리 수사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이유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