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남 이사장. | ||
동명목재는 부산지역에서 동명그룹으로 성장한 회사로 당시 신군부에 헌납당한 재산은 현재 시세로 따지면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동명목재 전 사장인 강정남 동명문화학원 이사장은 지난 97년 재산을 되찾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지만 2심, 3심에서 잇따라 패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진실화해위의 조사결과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최소한 재심 청구는 가능해진 상황. 과연 동명목재는 천문학적 재산을 돌려 받을 수 있을까. “재산을 되찾으면 사회에 헌납하겠다”는 강 이사장의 약속과 맞물려 이 문제는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동명목재는 1970년대 세계 최대 규모의 합판 제조업체로 명성이 자자한 회사였다. 1960년대 국내 10대 기업에 포함되기도 했으며 그 시절 한국 수출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였다. 동명목재는 합판 회사에 머무르지 않고 동명산업, 동명중공업, 동명식품 등을 설립해 동명목재그룹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거대 기업이 하루 아침에 파산하고 만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합수부)가 당시 동명목재 사주인 강석진 회장과 그의 아들 강정남 씨 등을 반사회적인 기업인으로 지목해 재산을 강제로 내놓게 했기 때문이다.
10·26 사태 이후 신군부는 초법적인 방법으로 사회정화활동을 벌였다. 사회정화를 내건 삼청교육대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통폐합, 개인재산 몰수 등의 조치도 이때 단행됐다. ‘동명목재 사건’ 역시 국보위가 악덕기업주의 재산 몰수라는 명분으로 자행된 일이다.
▲ 고 강석진 회장. | ||
진실화해위는 “계엄사 합수부 부산지부(501보안부대) 수사관들이 1980년 6월 15일경부터 사주 일가와 회사 임원들을 연행해 15일 내지 2개월간 불법 구금하고 폭행 및 전기고문 등의 위협을 통해 재산포기 위임각서 작성을 강요했다”고 밝혔다. 특히 강 회장의 아들인 강정남 사장에게는 “재산 포기각서에 날인하지 않으면 아버지도 위험하다”고 협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진실화해위에서 증언한 한 수사관에 따르면 당시 수사관들은 ‘강석진 회장 일가의 재산환수를 수사의 목표로 정하고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한 달 안에 수사를 끝내라’는 지침을 받았다고 한다. 게다가 1980년 11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최종 결재한 ‘동명목재처리종결보고’에는 ‘처리된 모든 사항에 관해 향후 법률적 차원에서 쟁의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이 명시돼 있다고 한다. 결국 동명목재 사주들의 법적권리인 구제절차까지 원천적으로 봉쇄해놓은 셈이다.
강석진 회장은 1984년 암으로 사망했다. 당시 그는 “악덕기업인이라는 누명을 벗게 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강 회장의 아들 강정남 전 사장은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미국에 건너가 10년 동안 생활하다 돌아와 현재는 동명문화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다.
▲ 1970년대 번창했던 동명목재 공장 전경. | ||
진실화해위는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 동명목재 사주들을 악덕 기업인으로 매도하고 재산권을 침해한 점에 대해 피해자들과 그 가족에게 사과할 것을 국가에 권고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피해자 가족들이 1조 원에 달하는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여부다. 진실화해위의 권고는 법적인 구속력은 없지만 증거조사를 토대로 밝혀낸 결과이기 때문에 의의가 크다.
이번 권고에 따라 강 이사장 일가는 재심청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006년부터 지금까지 진실화해위의 재심권고 사건 목록은 모두 24건. 이 중 9건은 재심개시결정을 받았으며 4건은 재심을 한 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다. 나머지 사건들도 거의 대부분 현재 재심 청구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법조계 관계자에 따르면 “동명목재 사건 역시 재심청구가 예상되며 재판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고 전했다. 강정남 이사장은 이미 “재산을 돌려 받으면 모두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또한 그것은 부친의 유언이기도 해 귀추가 주목된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